말에서 느껴지는 체온

36.5도의 언어

by 모라의 보험세계

"저야 항상 감사하죠."


처음 들어 본 말. 나를 대할 때 액수만 말하는 계산기처럼 대하는 사람이 태반인 이 세계에서 뜻하지 않은 말을 들었다. 항상 감사하다고? 나에게?


곰곰히 생각에 잠긴다. 내가 뭘 해주었더라.. 20대 후반인 이 여성고객에게 나는 보험료 대납도 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말과 동일한 내용으로 대했고, 특별히 더 친철하게 한 기억도 없는데..


사연이 많은 고객이었다.



1. 힘들어요


서울에서 2,30평 아파트 월세를 살 수 있는 금액을 매월 보험료로 내고 있었다. 가족들의 보험을 맡은 담당자는 한 회사에 소속된 전속설계사였는데, 부모님과 인연이 있는 것 같았다. 내 유튜브를 보고 나에게 연락을 준 이유는, 이 큰 지출덩어리가 과연 금액 대비 효율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가족들의 보험증권을 모두 받으니 열개가 훌쩍 넘어가는데, 눈이 뱅글뱅글 돌 정도로 비슷한 상품이 중복적으로 나왔다.


"정리하고 싶어요.."


통화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피로감이 조금 느껴졌다.


한 회사의 갱신형 상품들로 가득 찬 가족 모두의 보험증권을 정리하며 큰 숨을 내쉬었다.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2. 다행이에요


부모님은 최근 병원 방문이력이 있어 바로 보험변경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문의주신 어른이 여성고객은 큰 제약없이 원하는 회사의 어린이상품으로 변경할 수 있었다.


손해보험사들의 보장성 보험들은 모두 가입 전 심사를 거치고 승인이 되어야 청약을 할 수 있는데, 특히나 까다롭기로 소문난 저렴한 회사라 나는 조마조마하였다.


보험을 바꿀 때 제일 걱정되고, 우려되고, 제약이 생기는 것이 고개의 최근 병원력과 보상청구력인데 다행스럽게도 이 둘이 모두 있었음에도 스무스하게 통과가 되어, 나도모르게 와! 하고 소리친 순간이 지금도 기억난다. 전화너머로 들려오는 여성고객의 상기된 목소리를 듣는 것도 너무나 기쁜 일이었다.


"다행이에요 와 감사합니다"



3. 또 다른 관문


좋은 결과로 마무리된 줄 알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실손의료비를 현재의 착한 실손으로 전환하려고 하니, 기존 설계사분이 큰 목소리를 낸 모양이었다.


담당 설계사는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게 없고, 오히려 다른 보험들을 해지해버려서 매우 기분나쁜 티를 팍팍 낸 터였고, 고객은 실손의료비 전환을 해야하는데 담당자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대하니 방법이 없고, 울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나에게 이관도 안된다는 상황… 정말 어쩔 수 없이 강력한 수를 안내할 수 밖에 없었다. 민원제기와 지점 직행하여 총무를 통해 요청하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말했다.


"상큼한목소리님, 제가 이관을 받으면 해드릴 수 있을텐데 안되니 너무 아쉽네요. 제가 도와드리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팀장님, 저야 항상 감사하죠!"


"…!!!"


전화를 끊고 며칠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가는데도 귀에서 맴도는 말. 숫자가 가득하고 나에게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가격을 따져서 웃는 얼굴과 정색 얼굴을 번갈아가며 쓰는 이 세상에서, 솜사탕으로 얼굴을 맞은 느낌이랄까?


상큼한목소리님이 실사 진심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엄청난 온풍을 맞았다. 앞에 마주앉아 눈을 보며 얘기하는 것보다 더한 36.5도의 체온이랄까..


길고 긴 요청사항을 전화기 너머에서 말로 줄줄줄 흘리며 명령조로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이렇게 한마디에 온기를 담아 주는 사람도 있다. 이런 고객을 만나면 나는 한층 더 발전하고 성장하고 친절해진다.


언택트 시대를 코로나가 급격하게 앞당긴 것은 사실이지만, 언택트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자신에게 집중해주고 말을 들어주고 인간적으로 대해 줄 담당자를 찾는다. 이건 찐이다.


상큼한목소리님 덕분에 나도 다른 고객들에게 주는 말에 내 체온을 담아 주게 된다. 상큼한목소리님 저는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감사할거에요 저야말로 고맙습니다!


저야 늘 감사하죠라는 말_모라팀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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