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의 보험으로 인연이 되어 부모님보험까지 가입한 오랜 고객이 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연락을 주시니 드문드문 통화를 하곤 한다. 항상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두 아들의 엄마인 고객.
어제는 부모님 보험금 청구관련으로 통화를 했는데, 고객의 하루가 정말 바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아이들 케어와 재택근무, 편찮으신 부모님을 위해 병원과 보험사 보상담당자와 지속적인 연락, 그리고 또 아프신 다른 부모님 간병까지 하고 있다. 중간중간 보험관련 궁금한 것을 내게 전화하여 메모까지..! 수퍼우먼이다.
투병중인 부모님 병명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오히려 고객은 그 동안 많은 눈물이 지나가서 이제는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듯했다.
먼 지역에서 수도권까지 진료를 위해 오가는 일정도 진행형이다.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고개가 저어진다. 부끄러운 내 낯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고객은 꼭 그런다.
설계사님이 있어서 든든해요...
무슨 말씀을요, 전 아직 해드린게 없는데요..
내 서재, 내 사무실, 내 실적, 내 계획 등등 나만의 것이 내 뜻대로 안된다고 툴툴거렸던 시간이 참 철없이 느껴진다. 온 가족을 케어하는 수퍼우먼고객은 짧은 전화 통화로도 나에게 이런 반성과 새로운 에너지를 주곤 하는데 말이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기억하고 생각하고 챙겨줄 사람.
내 상담일정, 내 업무스케쥴은 고객과의 약속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갑자기 연결된 사람때문에 내 스케쥴이 꼬이면 연락을 기다리는 고객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다.
내 일정이 있어 양해를 구해도 계속 할 말을 하는 사람과 마주하면 내 기는 급속도로 빨려 사라진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눈을 감고, 함께 사는 우리사회를 떠올려도 잘 안된다. 내 인간애도 한계는 있다.
긴 대화 속 핵심을 정리하고 나면 허탈해지기도 한다. 세 문장을 넘지 않기 때문.
무조건 싸야한다.
싼데 많이 가입하고 싶다.
보장금액 단계별 가격을 모두 알고 싶다.
여러 사람을 마주해본 그 간의 경험치로는 이렇게 노력을 해줄 필요가 없다. 고마움의 표시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입한 사람도 없었다. 미루니까.
돈이 아까워 미루다가 나중에 병에 걸린 다음 연락을 준 사람이 있었다. 그 때 알려줬던 보험 가입 지금 되냐고... 하... 차단각이다.
싼 곳은 당연히 가장 많이 가입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보장금액 단계별 가격을 물어보는 것은 가입할 수 없음에도 내 시간을 더 들여달라는 이야기인데,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책임감에 그래도 시간을 들여 보험회사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비교 및 추천상품 자료를 보냈다. 역시나 아무런 말이 없다.
고객리스트에 적었던 이름과 연락처를 슥슥 지웠다.
나중에 전화해서 아픈데 가입안되냐고 묻는 사람, 다른 데 엄하게 가입하고 보험금 청구 때 막히면 전화하는 사람 등등 별별 사람 중 하나가 아니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