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칼같이 새벽에 일어나시던 시어머님은 이제 오전 기상시간이 좀 달라졌다. 어떤 때는 9시까지 누워계실 때도 있다고 한다.
오전 10시에 시어머님의 두 아들내외가 시댁 문 앞에 모였다. 15분정도인가 서서 계속 문을 두드렸다.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안에서 걸쇠까지 잠그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님은 깊은 우울과 싸우고 계시다. 싸워도 도돌이표처럼 원점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지치고 슬픈 감정이 매우매우 크다. 그런 무너지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우울을 더 증폭시켰다.
오지 말라고 했잖아...
날 내버려 둬...
오늘은 아무도 보고싶지 않아...
희미한 목소리를 문 건너편으로 들으며 자식들은 돌아가며 문을 두드렸다. 열어주세요, 얼굴만 보고 갈게요, 이렇게 그냥 어떻게 돌아가요 어머니 하면서 말이다.
형님께서 노력해주신 결과로 겨우 문이 열렸다. 그리고나서도 10분이상 어머님은 마루바닥에 누워 흐느끼셨다. 싫은데 왜 자꾸 그러냐고..
버티기는 모든 일의 성공 열쇠같다. 보기싫다고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근 시어머님댁 마루에 두 아들내외가 모여앉아 버티며 어머님을 위한 방편을 논의했다. 20분 정도가 흐르자 마음이 누그러진 어머님이 직접 나와서 대화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023년 새해 떡국을 함께 먹을 수 있었다.
점점 기분좋은 분위기로 화기애애한 식사자리를 마무리하고, 슬슬 떠날 때가 되자 어머님은 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두 아늘내외는 각자의 처가댁으로 향했다. 어머님께 무엇이 필요한지 알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 뿐.
어머님은 혼자다. 외로운 우울과 싸우는 중이다. 그리고 자신이 아닌 다른 치매인격체와도 싸우고 있다.
친정.
20년지기 친구였던 고령의 반려묘를 잃은 후 엄마와 아빠는 스트레스성 어지러움과 메쓰거움 등으로 잠시 병원에 다녔다.
텃밭일을 사랑하는 엄마, 읽고 쓰고 공부하는 것을 사랑하는 아빠는 다행히 일상으로 금방 복귀했고 각자의 삶에 큰 불만없이 지내고 계시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보험 가입해드리겠다고 청약서에 싸인하시라고 하면, 보험료 부담 주는 게 싫어 손사래도 치고 다음부터는 이런거 갖고 오지 말라고 하던 두 분이었다.
거동이 어려워지고 우울과 치매가 온 사돈어르신(시어머님)의 상황을 듣고 우리 부모님은 어떤 마음이 드셨을까.
부족한 보장을 더하려 아빠의 보험 청약서를 가져갔다. 싸인 해달라고 하니, 두말없이 바로 하신다. 보험료가 어쩌고 부담주는 거 아니냐 등등의 말은 쏘옥 들어갔다.
한달에 몇만원 보험료는 진짜 부담이 아니다. 보험도 없고 대안도 없이 아프고 힘들고 우울해지는 것이 정말 큰 부담이다. 그런 걸 이제 깨달으셨기에 바로 서명하셨을 것이다.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자살, 그리고 치매.
우리나라 사망원인 상위 리스트에서 봤던 것들이 이제 너무나 가까이 다가와 내 가족들, 지인들에게도 하나씩 그늘이 드리워진다.
'보험 따위' 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보험이라도' 하게 된다. 뭐든 준비해야한다. 혼자의 삶과 생의 후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