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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인격체와 내가아는 인격체의 차이

by 모라의 보험세계

1. 치매인격체


어머님은 팔순이 넘으셨고 치매증상이 있다. 치매는 병명이 아니라 증상이라고 했다. 실제 진단명은 알츠하이머.


추석날 오손도손 좋은 시간을 나누고 온 뒤 하루 지났을까...아침 7시쯤부터 남편의 전화기가 계속 울렸다.


어머님이 추워서 오돌오돌 떨며 한숨도 못 주무셨다고 한다. 그리고 극도의 흥분상태라고.


내가 다시 전화했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소리를 내시며 추워서 죽겠다고 하셨다. 119를 불러달라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는데도 추워서 얼어죽을 지경이라고 하셨다. 독감이나 코로나면 큰일이니 걱정이었다.


하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다. 딸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이거 119를 부를 신체적 상황이 아닌 것 같다.. ㅠㅠ


세상에서 가장 어머님을 극진히 모시는 어머님의 딸들이 내 시누이형님들이신데...


치매인격체의 등장이었다..


119는 내가 알아보겠다고만 하고, 남편이 나갈 채비를 했다.


"어머니, 제가 준비하고 빨리 가면 1시간 정도 걸릴거에요"


"빨리 오라고! 당장 오라고! 내가 죽는다니까! 내가 죽기를 바라는거야?!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 아유 죽겠네"


휴대폰 밖으로 쩌렁쩌렁하게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실제로 더 심한 말씀을 하셨지만 검열로 좀 순화해서 쓴 문장이다.


자신이 죽는다고 했는데 119도 안오고 아무도 안와서 모두 자신이 죽기를 바라는 거라고 소리소리를 치셨다. 거짓말 하는 거냐고... ㅠㅠ


체온계까지 챙긴 남편이 엑셀을 밟아 달려가고 종일 같이 있어드리고, 함께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오니 하루가 다 갔다.


실제로 죽을 것 같이 추웠던 것은 아니고, 속이 안좋아 며칠 잘 못챙겨 먹은 것 같은데 자식들이 아무도 아는 체도 안하고 오지도 않아서 죽으려고 했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치매인격체의 생각과 행동은 모든 것이 강한 결핍에서 우러나온다. 욕구불만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하다. 결핍이 강한 분노로 바로 튄다.


집에 돌아온 후 남편이 안부전화를 다시 드렸다.


"응~ 양치질하고 인쟈 잘려구~그려"


원래 인격체로 돌아와있었다.


생겼다 없어지는 그림자처럼 치매인격체도 나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2. 내가 아는 인격체


치매인격체가 잠시 나왔다 사라진 후 며칠 뒤, 정기적으로 어머님을 뵙는 주말이 되었다.


정말 오랫만에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어머님 말씀에 근처 평점 좋은 곳으로 가서 다같이 짬뽕, 짜장면, 탕수육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근처 숲길을 산책했다.


발을 지지대에 끼우고 거꾸로 물구나무를 할 수 있는 운동기구가 있는데, 이걸 하고 나면 허리가 시원하고 쭈욱 펴지는 기분이라고 한다.


아들래미가 온 김에 5분정도 물구나무 기구를 하시더니 기분이 하늘까지 좋아지셨다.


"아구 허리가 펴졌어! 내가 내 허리 펴진게 느껴져!"


정말 꼿꼿한 허리로 걸음걸이 보폭도 더 커졌다. 한번 더 한다. 효과가 정말 좋다.


"이렇게 자꾸 걷고 움직여야 하는데..."


어머님도 아시는 것이다. 산책이라는 걷는 행동이 지금 어머님을 괴롭히는 발, 허리의 통증에 얼마나 좋은지 알고 계신다. 그런데 혼자 계시면 생각하는대로 잘 안된다. 그걸 아신다.


원래 내가 아는 어머님 인격체는 어떻게 해야 통증을 덜고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는지 알고 계신다. 실천이 안되고 속상해지면 치매인격체가 때를 놓치지 않고 뛰쳐나오려 한다. 이것도 이미 알고 계실지도.


누군가와 대화하며 걷는 것이 어르신들께는 가장 좋지만, 모든 것이 충족되는 삶은 없다 ㅠㅠㅠ


1시간 넘게 천천히 산책하고 돌아오니 어머님 기분이 정말 업그레이드되었다. 며칠 전 잘 못챙겨드셨다고 하던 것과 정반대로 그래놀라, 한과, 샤인머스켓(우리가 사다 드린 건데 정말 꿀맛!), 사과대추 등등 나나 남편보다 더 많이 맛있게 드셨다. 그리고 계속 권하셨다.


"새아가 이거 맛있어 먹어봐, 왜 안먹어 맛있는데"


4명의 자식들이 식품이 떨어지지 않도록 늘 꽉꽉 채워넣는 어머님 부엌. 어머님께서 스스로 잘 챙겨드시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3. 장기요양등급


어머님은 아주 느리게라도 스스로 옷입고 씻는 행동이 가능하셔서 등급은 가장 낮은 등급이지만, 앞으로 더 움직임이 힘들어지셨을 때 등급이 쉽게 바뀔지는 미지수이다.


3등급과 4등급 사이를 오가던 분도 시설에 계시다가 결국 다시 자택으로 오셨었다. 시설에 입소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고 했다. 등급변경을 위한 공단의 절차도 그랬고, 서류도 그에 맞춰 잘 준비해야 되었다. 여기에서 특수관계자의 조언이 긴밀하게 필요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평범한 길 말고, 빠르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아는 사람의 조언이라고만 해두자. 누구나 다 가능한 것은 아니니까.


일단 현실에서 정신이 멀리 가 있는 어르신이 아니면 집이 아닌 요양시설을 좋아하는 분은 거의 없다. 버림의 장소로 여기는 분들도 있다. 요양시설로 인도하려는 가족들과 당사자인 어르신의 의견충돌도 있다.


얼마전 상담고객님은 서류가 잘 준비되면 장기요양등급이 낮아도 시설 입소는 문제없다고 하셨다. 지역별로 편차가 좀 있는 것 같았다. 지름길을 아시는 분을 만난 행운^^


어머님이 추후 조금 더 어려운 상황이 되면 나와 남편, 다른 가족들도 시설을 고려하게 될 것 같은데 이 때 우리는 또 얼마나 힘든 결정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까.


어머님의 외로움은 치매인격체의 불씨를 당긴다. 점점 커진다. 그런데 우리가 외로움을 해소시켜 드릴만한 시간이 부족하다. 각자의 경제생활과 휴식이 있어야 하기에.


장기요양등급별 국가정책도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고령인구가 급속도로 늘고 있고 출생률이 최저인데 언제까지 이런 지원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민연금도 투자 결과가 좋지 않은데 말이다. 뭐든 고갈에 대한 리스크가 커진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면서 사람의 수명과 질병에 대해 나도 모르게 지식을 꽉꽉 채워넣는 중인데, 장기요양등급은 그 중 가장 삶의 질을 따지게 되는 복잡다단한 단계라고 생각된다.


보험, 부동산, 연금 등등 그 어떤 것으로 노후를 준비한다해도 이것만은 아무도 쉽게 해결할 수 없다. 바로.. 외로움. (아, 돈으로 말상대를 산다면 모를까)


외로움이 친구가 되었을 때 어떻게 살지 미리 생각하기!


센터수업으로 직접 오리고 만드신 작품들. 가위질조차 어려운 분들이 많다고 한다.


어머님 화이팅! 치매인격체여 멀리 떠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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