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자가격리 중 도통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있었다. 170센티미터의 내가 똑바로 누웠을 때 여백이 거의 없는 창고같은 방이었다. 창문으로 보이는 밤하늘도 내가 덮은 솜이불도 모두 까맣고 고요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으면서 머리 속은 알수없는 것들로 꽉 차 있었는데, 까맣고 무거운 것이 검은 밤하늘과 똑같았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넷플릭스였고, 우연히 한 영화를 만났다.
새벽 4시가 넘어가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게 한, 올해 들어 제일 몰입해서 본 영화 ‘로드 투 퍼디션’
영화의 핵심은 한 단어로 부성애. 단어 자체는 감흥도 없고 그렇게 흥미가 생기지 않지만, 이런 단어를 2시간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사람들은 천재라고 생각된다. 주인공인 톰 행크스와 폴 뉴먼, 주드 로와 다니엘 크레이그는 배역에 찰떡이었다.
톰 행크스와 폴 뉴먼의 슬픈 눈빛이 지금 기사화된 고 손정민군의 아버지와 오버랩된다.
물론 영화와 정민군 아버지의 상황은 결코 같지 않다. 다만, 아들에 대한 마음은 똑같이 전달되어 온다.
하나밖에 남지 않는 유일한 어린 아들, 위험한 상황에서 내가 꼭 지켜줘야하는 아들을 보는 톰 행크스의 눈,
트러블 메이커이면서 반성도 없이 일을 더 크게 만드는 아들을 대하는 폴 뉴먼의 눈,
평온하고 사랑이 가득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하늘로 가게 된 외동아들을 위해 움직이는 정민군 아버지의 눈.
이들의 눈에는 ‘지킨다, 지켜낸다’ 라는 방패가 있다. 적극적인 방어를 위한 어마어마하게 크고 굳센 창도 쥐고 상대를 겨누고 있다. 톰 행크스는 총, 폴 뉴먼은 부하들이 있었고, 정민군의 아버지에게는 침착하게 풀어가는 정돈된 글과 말, 호소가 있다.
어린 아들을 하늘로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일 것이다. 그만큼 정민군이 사라지게 된 원인과 진실은 꼭 알아야만 한다. 아버지는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정민군과 가족 전체를 지켜내려 하고 있다.
요 며칠 읽던 책도 잘 펼치지 못했다. 신경이 모두 한강에 가 있었다.
남편과 가끔 산책하던 그 길, 토끼굴, 계단 모두 눈에 선하다. 그 곳에서 혼자서 실족사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지만 고개가 절래절래, 머리 속이 하얘진다. 방구석 코난들이라는 댓글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나조차도 추측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내내 휴대폰으로 기사만 읽고 또 읽고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정민군의 사라진 시간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이해되지 않아서 였다.
아버지의 블로그에 몇번 댓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나는 맛집 후기도 쓴 적이 없지만...정민군의 상황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상대에 대응하여 팩트가 밝혀질 때까지 아버지는 지금과 같은 눈을 하고 계실테지.
장례식장 인터뷰 중 아버님이 한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과 지키려는 사람은 승부가 안 되거든요”
그 때 파도같은 감정이 막 일어났다. 그리고 ‘로드 투 퍼디션’ 의 톰 행크스를 생각했다.
잃을 것이 없는 톰 행크스와 지키려는 폴 뉴먼은 둘 다 아버지로는 좋은 아빠이다.
그런데, 서로에게는 결코… 타협될 수 없는 큰 사건이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아들의 잘못은 엄청난 불을 지피게 되었다.
정민군의 아버지와 상대(A는 이제 정민군의 친구라고 지칭하기가 어려운 시점이 되었다)의 아버지는 각자 아들들에게는 좋은 아빠이며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불타는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영화에서는 지키려는 사람은 결국 잘못한 만큼의 대가를 받았다. 다른 사람을 파괴하면서까지 내 것만 지키려고 하면… 결국 파멸이 되돌아온다는 스토리는 모든 사람들이 안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럴 것이라고 충분히 예견이 되었지만 어떻게 헤쳐가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영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너무나 시원하게 해줬다. 눈을 뗄 수 없었으니까.
현실은...어떻게 될까?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정민군의 부모님들이 납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분들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큰 상처와 그 결말을 떠안고 계신다. 쉽게 진실을 파묻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고 여기고 싶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모두가 편히 잠들 수 있는 밤을 맞이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