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인간

by 모라의 보험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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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와 같은 사람




2주가 넘는 지독한 무더위에 쉼표를 찍어주는 보슬비가 내린다. 구름낀 하늘과 직사광선이 없는 선선한 공기가 이리도 반가울 줄이야.




분무기를 얼굴에 뿌리듯 보슬비가 촉촉하게 맨얼굴과 팔을 스치고 내려간다. 간만에 걸어서 출근하기로 마음을 먹고 심호흡을 했다.




땅냄새와 수분이 가득한 공기가 코를 타고 들어와 온몸에 퍼지는 게 뭔가 그린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다.




“Thank you trees, thank you greens, thank you ground, thank you.. Rains, thank you all”




비에 젖은 나무냄새가 향긋하다. 초록색 풀내음도 비를 타면 더 산뜻해진다. 땅에서 올라오는 자연의 냄새가 사실 비에 의해 땅속의 박테리아들이 섞인 냄새라고 들었지만, 내 몸에 좋은 박테리아에게 감사를! 그러고보니 이 모든 기분좋은 것들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비다. 비가 제일 고맙다.




비가 나무를, 풀을, 땅을 적시고 그들의 좋은 향기를 퍼지게 해준다. 열기를 식혀주고, 세상을 다른 모습으로 보고 느끼게 해준다. 매일 그러면 곤란하지만 때때로 주기적으로 이런 쉼표를 건네주는 고마운 비다.




“비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이따금 필요할 때, 가끔 마주하게 될 때, 열기를 식혀주고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따금이라는 주기로 만날 때마다 고마움으로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좋은 기운과 도움을 주는 사람이어야겠지.




마스크를 내리고 심호흡을 할 때 내 코와 폐속으로 들어온 나무의 향기를 기억해두어야지. 그리고 나와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피톤치드같은 존재, 단비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단비가 되기 위해 단 하나의 빗방울을 맺고 품는 오늘을 만들어야겠다.






[2] 물방울 사람




예전에 인사를 나누고 좋은 얼굴로 대하던 동료들과 오랫만에 연락을 주고 받았다. 오늘 하루만에 두 명의 지인 설계사들이 각기 다른 보금자리로 이동하여 새로운 곳에서 근무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금융소비자법의 시행(2021.3.25~)으로 온라인 영업방향이 적잖이 타격을 입기도 했고, 새로운 고객을 만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도 큰 이유였을 거라 생각한다.




이직 전 든든한 둥지가 되어주던 물에서 하나의 작은 물방울이 똑 분리되어 나오는것도 쉽지 않았을텐데, 또 자신과 맞는 물길을 찾아 퐁당 합세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것 자체로 모험이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또 다른 동료도 이미 여러명의 팀원을 이끄는 리더인데, 팀 전체를 위해 새로운 방향으로 모색 중이라 한다. 방향이 잡히면 물을 갈아탈 수도 있다는 의미.




다들 하나의 작은 물방울들이다. 나도 포함해서 말이다.




큰 물에 작은 내가 퐁! 하고 들어가도 전체 크기는 변함이 없고, 티도 나지 않는다. 큰 물은 내가 오던 말던 영향이 그다지 없다. 하지만 나는 이전의 물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도 엄청난 힘을 들여야 했는데, 막상 새롭게 들어간 물이 기대와 다르다면 낙담을 하게 된다.




다시 나가기는 크나큰 에너지 소모이자 리스크가 될 뿐이다.




훗날 또 다시 새로운 물을 찾을 때에 오롯이 하나의 물방울로써 크고 맑고 탄력있는 운동력을 유지하려면 스스로의 정화작용을 잘 해야한다.




지금 내 몸을 맡긴 물줄기는 다행스럽게도 혼탁하진 않다. 다만 나라는 물방울과 큰 물줄기의 성분이 좀 다른 것 같다. 마치 민물과 바닷물의 소금맛처럼.




한 해가 흐르고, 한 살이 더 많아질수록 나와 다른 세계와의 경험도 하나씩 늘어간다. 다른 것을 보며 내 모습을 어떻게 발전시킬지가 내 인생의 물줄기를 만들어주겠지 생각해본다.




우리 모두는 물방울 인간들이다. 어딜가도 만나고 다시 떨어지고를 반복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세계와 섞이면서 나를 지키는 게 가장 어렵다는 걸 깨달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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