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주말 금, 토, 일요일까지 3일간을 고통속에서 보내었다.
위경련.
금요일 저녁, 사무실 책상에서 김밥을 입에 쑤셔넣었던 것, 집에 와서 오밤중에 맥주 한 모금과 팝콘을 다시 입에 쑤셔넣어버린 것, 그리고 바로 침대에 누워버렸던 사실부터가 시작이었다. 다음날 토요일 아침 상쾌하고 여유로운 아침을 먹으며 진한 커피를 한 사발 들이켰다. 그리고 두 시간 후부터 나는 위가 요동치며 몸부림치는 걸 견뎌줘야했다.
좀 쉬고, 좀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나에겐 보약과도 같은 따뜻한 숙성매실차를 홀짝이고는 잠을 청했는데, 낮잠부터 밤잠까지 주말동안의 모든 잠을 설쳤다. 지속되는 통증은 불안을 가중시켰는데, 더구나 내가 익히 알던 위통이나 신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쥐어짜는 듯한, 이러다 위가 꼬이다 끊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까지 드는 불길하고 기분나쁜 아픔이었다.
도통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시간은 이미 흘러 병원은 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응급실을 갈 정도는아니다. 잘못된 점을 찾기 시작했다. 나인가 음식인가. 둘 다 인가.
그래,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허겁지겁 밥을 먹고, 전혀 운동을 해주지 않은 것도 잘못했다. 퇴근하고 열두시가 넘어가는 시각에 맥주와 팝콘을 잔뜩 위에 넣어버린 것도 잘못했다. 그리고 바로 침대에 벌러덩 누워 티비를 보다 잠든 것은 그 무엇보다 큰 잘못이 아닐 수 없다. 다 위를 혹사시킨 내 잘못이다.
아무리 뉘우쳐도 고통은 그대로이다. 위암 수술한 친구가 생각난다. 너무나 놀라 서로 전화기를 두고 숨죽여 눈물을 흘렸었다. 다행히 수술 후 빠른 호전으로 잘 지내고 있지만, 적정량에서 한입이라도 과식을 하면 비교할 수 없는 위통으로 응급실행이 된다고 한다. 그렇게 좋아하던 회와 싱싱한 날것의 해산물, 와인, 달달한 맥주와 애정하던 스타벅스 커피를 더이상 맛볼 수 없게 되었지만, 건강하게 일상으로 돌아온 것만 해도 감사할 뿐이다. 혹시 나도 그런 계단을 올라서게 된 건 아닐까? 고개를 저어도 안 떨어지는 생각.
식도암 2기 진단을 받았던 고객님도 기억에서 소환한다. (아픈 와중에 낫는 생각은 못하고 더 아픈 상황만 생각하게 된다) 가입 후 일년 정도 지났으려나.. 남은 납입기간의 보험료는 면제가 되었다. 그리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가입 전 병원도 거의 안가셨을만큼 건강하셨고, 진단 후에도 항암치료를 잘 받으신다고 하여 이겨내실 거라 생각했었는데 반년 정도 뒤 사망하셨다 하여 한동안 회사 사무실에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 하는 일기를 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런 통증이라면 나도 비슷한 단계는 아닐런지…고개를 세게 저어도 머리에 붙어버린다.
처음 느껴보는 긴 고통을 느끼니 별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6개월 전 무려 백만원이나 내고 건강검진 올스캔을 받았었는데.. 그때 위 내시경 결과 표제성위염 외에는 이상이 없어 은근히 내 위가 튼튼하구나 하는 우스운 생각을 했던 때가 떠오른다. 위염이 있는데 튼튼하다니 참 우습다. 혹이 있는데 제거술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 장상피화생으로 위 내벽이 변한 사람의 이야기, 위염약을 달고 사는 사람의 이야기들을 너무나 많이 듣는 직업이다보니 이렇게 아무 증상없이 가벼운 염증소견만 있다면 상대적으로 괜찮다, 건강하다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염증은 사라질거라고 당연히 생각하니까.
내가 얼마나 아둔한 생각을 하였는지! 꼭 이렇게 아프니 지난 날의 나를 반성한다.
하루에 열두시간 자는 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는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잠을 고통속에서 보내었다. 황금같은 주말 모두. 입에서 나도 모르게 끄응 소리가 나온다는 말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진짜사실이다. 끄응 끄응 계속 나온다.
잠을 자도 자는 게 아니고, 이리 누워도 저리 누워도 어떤 자세로 있어도 쥐어짜오는 통증에 막판에는 결국 자극적인 소설까지 쓰게 되었다. 이러다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으니 말이다. 실손의료비는 있고, 암진단비는 합쳐서 몇천이었지? 아 혹시 경계성종양이나 상피내암일지도 몰라, 그럼 유사암진단비만 받을텐데…휴, 몇 년전 추가로 암보험 가입할 때 좀 넉넉하게 했어야했다, 기껏 1천만원 하면서 왜케 보험료를 아까워했던가 후회가 막심하다.
아프다고 느낄 때 드는 생각들을 주욱 나열해보니 사람이라면 다 비슷한 걱정과 후회를 할 거란 생각이 든다.
시원하게 통증을 잊을 해결책을 찾고 싶고 크게 아프지 않을거라 안심하고 싶다.
정해인, 구교환 주연의 D.P.(Deserter Pursuit) 6부작을 눈깜짝할 사이 완파하였다. 일요일 저녁에 우연히 넷플릭스를 켠 후 나와 남편은 결코 끌 수가 없었다. 그래도 6부작으로 짧게 끝나서 다행이다. (16부작이었다면 나는 고통에 울면서도 마지막회까지 달렸을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피칠갑이 난무했다. 실제와 비슷하게 잔인한 장면들이 나오고 또 나오고 계속 나왔다. 나는 호러매니아라서 잠시 고통을 잊을 만큼 몰두하였다.
간디처럼 착한 캐릭터인 봉디쌤이 고통을 견지디 못해 폭주하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파할 때는 모른 체 하다가 문제가 생기자 뒤늦게 수습하려는 사람들의 본모습도 낱낱히 보게 된다.
좀 쌩뚱맞은 연결선을 타고 팝업된 생각이지만, 아픔이 사라지지 않으니 결국 마지막에는 보험을 살펴보는 나를 보듯, 고통의 홍수에 휘말렸던 고객들도 떠올려본다.
그 중 생각나는 사람. 수년 전, 두통이 심해 검사를 했는데 뇌의 혈관에 피가 차오른 것을 발견한 30대초반 고객이 보험가입문의를 준 적이 있었다. 뇌혈관질환 수술비가 간절했으리라. 다행히 실손의료비는 보유 중이었다.
검사한 날로부터 3개월이 지나면 간편심사보험 가입에 문제는 없는 상황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가입진행 해드리고 내 급여가 올라가는 감사함을 느끼면 되었다.
그러나 나는 고객을 도와줄 수 없었다. 가입진행을 맡을수가 없었다. 죄송하지만 다른 대리점이나 설계사를 통하여 문의해보시라 안내하였다.
가입을 정상적으로 하였어도, 가입 후 몇달도 안되어 바로 보험금청구를 할 확률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는 나는 움직일 수가 없다.
고객과 설계사인 나의 잘못이 없어도, 가입 후 바로 큰 보험금청구가 발생될 경우, 그 손해액에 따라서 나에게 패널티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가입 고객의 수보다 보상청구가 더 많았던 대선배님은 보험사의 로그인이 막혔었다.
즉, 해당보험사에서 설계사에게 일정기간 영업정지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를 몇 번 간접 경험한 나는 고객에게 정말 미안했지만 도저히 내 살을 깎을 수가 없었다.
아픈 고객, 위법행위 없이 가능한 보험가입, 그 둘을 연결할 수도 있음에도 외면하였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죄송하다고 계속 말씀드렸던 것 같다.
그것 또한 방관이었을까.
방관자도 나름의 이유(변명일지라도)와 괴로움이 있다.
외면했던 그 고객은 뇌동맥류를 알게 되었으니 미래 갑작스러운 더 큰 사고는 대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다행. 나는 좀 굶고 소식하며 커피를 끊으니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것 또한 다행. 문제를 알았을 때 바로 대처하는 건 그게 무엇이든 다행.
그러나, 법 없이도 살만한 봉디쌤이 그렇게 된 것은 안다행. 조금 슬펐다. 문제를 너무 늦게 알았다. 동전의 양쪽 면처럼 방관이 앞면이라면 뒷면은 위험이 아닐까. 그 동전을 계속 던져봤자 모른 척 아니면 위험함이니 새 동전을 집어야하는데…
“나 이제 봉디쌤 못하겠지?” - D.P.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