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은 보는 사람의 취향을 재빨리 파악하여 관련 영상들을 끊임없이 대령한다.
동물 영상에 자주 좋아요를 누른 나에게, 흰돌고래인 벨루가 영상이 팝업되었다.
조련사가 하는 행동을 따라하기도 하고,
조련사의 얼굴에 뽀뽀하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나중에는 조련사를 태우다시피 하여 재빨리 헤엄쳐나가는데, 조련사는 물위를 나는 듯 손을 펼치고 환하게 미소짓는다. 왜냐하면 많은 관중들이 와 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집중하고 있으니까.
영리하다고 소문한 돌고래가 사람과도 친근한 동물이라는 건 알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행위를 사람의 요청에 따라 딱딱 맞게 행동하려면 그만큼의 훈련이 있었을텐데, 과연 그게 평화로웠을까.
조련사의 학대로 죽어간 벨루가나 돌고래에 대한 기사들은 꽤 있다.
조련사를 엄마, 아빠로 알고 태어난 친구들이 아니라면, 어디에선가 잡혀와서 조련사를 만나 엄한 체벌 하에 훈련받았을것이다.
그저 짠한 마음에 댓글을 남겼다.
"저거(조련사 말대로 움직이는 것) 못해도 되니 바다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봤으면.."
나는 돌고래가 원래 가지고 있던 자유에 대해 생각했고, 사람에게 붙잡혀 좁은 물에서만 평생을 보내는 것이 심리적으로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내 글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고 여러 사람들의 '안전' 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바다에는 천적이 많으니, 오히려 사람과 있는 것이 더 안전할거라는 의견이 있었다. 내 생각에 안전은 물리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이 있는데, 천적을 피할 수 있는 물리적인 안전은 있겠으나, 행복도를 따지는 심리적인 안전은 글쎄.. 잘 모르겠다. 잡혀온 돌고래들에게는 행복을 기대할 수 없을테니까.
나처럼 생각한 사람이 댓글을 첨부했다. 나도 좁은 공간을 싫어하는데 돌고래는 말할 나위도 없겠지..
다음에는 내 글을 스스로 확장하여 해석한 다음 꼬투리를 잡는 유형이 있었는데,
불쌍하면 풀어주라는 말이냐? 부터 시작하여 천적에게 잡혀먹히라는 말이냐로 끝나는 어이없는 글이었다.
동물원에서 태어난 돌고래인지 아무도 알수없는데 묻지도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공격태세.
이 사람의 안전에 대한 생각은 무조건 물리적인 것이 우선인 것이다.
안전이라는 단어는 신체 외적인 것을 많이 떠올리니 그럴 수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대를 거쳐 동물원에 있었다고 어떻게 장담합니까요?
그런 가운데, 생각도 개념도 없는 글 등장. 두둥!
데일 카네기의 책 앞머리에 비난은 상대에게 깨우침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방이 스스로를 합리화하거나 방어적이 될 수 있다고 쓰여있다.
공격적인 말은 입에서도 글에서도 금물이다. 적어도 나는.
말에 공격이 없어도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는 최고 무식한 공격방법이 바로 반말! 예쁘게 받아치자.
내 기분을 표현한 한 줄 글이 이제 심지어는 '무책임' 하다고 확장해석하는 사람까지 등장하였다.
돌려보낸다고 누가 얘기했던가..!
돌려보내면 다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좁은 수족관에서 자살한 벨루가 기사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동물원에서 태어난 돌고래들이라면 동물원이 더 안전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먼거리, 깊은 바다를 헤엄치는 본능을 가진 친구들이다. 그와 흡사한 환경을 만들어줘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련사들은 구경온 사람들에게 돌고래들이 예쁜 짓만 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이지, 돌고래의 환경을 만들어주지는 않으니 여러가지 방법과 고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인데..
측은지심 한줄 표현에 사람들의 익명 본성을 마주하고 씁쓸했다.
사람으로 태어나 다행이다. 그런데 그렇게 달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