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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류 Jun 20. 2023

시력

노안을 애써 버티고 있다

흐릿하다


점점 시야가 흐릿해진다.

폰을 보거나 책을 볼 때면 글자가 퍼져 보이고 흐릿하다.

점점 목을 뒤로 쭉 빼고 일정 거리를  둔 다음 봐야 초첨이 맞춰진다.

이것이 흔히들 말하는 노안인가 보다.


노안이 왔나 보다. 그래... 당연하겠지. 나이가 몇 갠데... 올 때가 왔지.


우리 신체 구석구석은 세월의 힘에 언제까지나 저항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 최대한 버티고 버틸 수 있을 만큼의 힘과 노력을 쏟은 후 두 손 번쩍 백기를 들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인 것을...

그나마 눈동자는 겉모양에선 노쇠됨잘 알 수 없으니, 애써 아닌 척 모른 척  "나는 아직 젊소~!"라고 가슴 펴고 버티고 있으나 , 일상생활 속에서 이렇게나 자연스럽게 노안의 행동이 여실히 곳곳에서 나의 나이 듦을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마지막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 폰의 글자 크기도 안 키우고 그대로 쓰다 보니 오타도 엄청나게 찍어대고 있고,  잘 보이는 척도 해보기도 한다.


이런 나를 보고 주변 지인 선생님께서 합리적인 조언을 하나 해주셨다.


그냥 받아들여라


그냥 받아들이라더라. 안 보이는 걸 억지로 보게 되면 눈의 피로도도 높아지고 눈을 찌푸리다 보면 미간과 눈가에 주름이 더 생길 건데, 얼굴에 주름이 지는 것보다 차라리 안경을 쓰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얼굴에 주름은 또 못 참는 '천생 여자' 지라, 버티고 버티다 결국 작년에 안과를 갔다. 답은 이미 정해진 결과였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검사를 하고 나서, 의사는 나를 전문가적인 눈빛으로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다.

  

"아직 돋보기 낄 정도는 아닌데, 보통 40대부터 노안이 시작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보호안경 독서할 때 끼는 독서 안경이라고 생각하시고 그냥 안경 하나 맞추세요"라면서 에둘러 얘길 해준다. 그냥 노안이니 돋보기 껴란 소리지 뭐.

독서안경, 보호안경이란 이름으로 겉포장은 하지만, 결국 내용물은 돋보기인 것을...

물론 보기보다는 어감은 훨씬 세련되고 젊어 보이긴 했다.  


회사 업무 볼 땐 보호 안경인 듯  , 돋보기인 듯.

집에서 책을 볼 땐 독서 안경인 듯 , 돋보기인 듯.


처음엔 조금 어질어질하면서 눈이 조금 커 보이는 내 얼굴이 어색하기만 했지만 글자는 확실히 또렷이 보여 세상 선명하니 이것 또한  신세계로다.


몇 달이 지나고 어느 순간 적응이 되어갔다.

이제는 저녁마다 집에선 꼭 안경을 쓰고 책을 보게 된다.


모든 일은 시간이 해결된다는 말엔

"적응되고 익숙해진다"의 뜻 포함된 게 아닐까 싶다.


안경을 꺼낸다. 슥슥 먼지를 닦아본다.

세상 뚜렷함에 미간의 주름도 함께 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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