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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류 Dec 27. 2023

당신은 솔크이신가요

소소한 크리스마스 일상

 올해 크리스마스, 당신은 솔크이신가요?


최근 유튜를 보다 요즘 MZ 세대 아이들의 말을 또 하나 습득했다.


"올해 크리스마스, 당신은 솔크이신가요?" 


솔크? 오타인가? 무슨 말이지?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고 그 영상을 반복 재생을 했다. 다시 보고 들어도 분명 '솔크'였고, 자막도 '솔크'라는 단어로 쓰였다. 오타라고 생각을 했는데 계속 보다 보니 영상 속 내용으로 그 뜻을 파악할 수 있었다.


솔. 크 = 솔로 크리스마스

즉, 크리스마스에 혼자 보내는 사람, 애인이 없는 솔로들의 크리스마스를 뜻하는 듯했다.

세상에 누가 처음 이런 단어를 조합해서 만들어냈을까?

젊은 친구들의 톡톡 튀는 언어 조합 감각에, 시대에 뒤처지는 '나이 든 꼰대 아줌마' 소리가 듣기 싫은 터라, 새로 습득한  MZ들의 단어를 바로 내 머릿속 저장고에 입력해 두었다.


그럼 나는 솔크인가?

애인의 유무를 굳이 따진다면 나는 당연히 솔크이다, 아니 솔크여야만 하지. 그러나 가족과 친구들과 이웃과 함께 했기에 "함께 크리스마스"였다고 할 수 있었다.


종교를 가진 자이든 아닌 사람이든, 전 세계 어디에서나 누구나 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즐긴다.

크리스마스는 단지 달력상의 "빨간 날"인 휴일인 의미로 보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사랑과 평화와 온기가 가득 묻어 있는 날로,  그날만큼은 왠지 연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 친구들이나 이웃과 함께 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날로 그려져 있다. 가족, 연인, 친구, 이웃들과 함께, 다양한 장소와 다양한 방법으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이날 하루만큼은 1년 중 가장 따뜻하고 행복한 날로 기억되길 바라는 날이다. 이 특별한 날이 주는 따뜻한 의미는 SNS를 통해서, 길거리를 지나다니면서도, 때론 이웃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도 전달이 되는 듯하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사진과 영상들, 길거리의 캐럴들, 반짝 거리는 크리스마스트리들은 보고만 있어도 행복함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크리스마스를 누구와 보내는지,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나 "약속"을 만들어야만 할 것 같으니  "솔크"라는 단어가 생긴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조금 짓궂고 미안한 단어이기도 하겠다.


MERRY CHRISTMAS


2023년 12월 25일   의 소소한 크리스마스 일상


우선 아침 일찍 성당엘 갔다. 성탄 미사를 드리는 건 당연하거니와,  주일학교 봉사가 있었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  분주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크리스마스가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크고 기쁜 날인지 말로 설명을 다 못할 정도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은 그저 달력의 "빨간 날"인 휴일로 여기지만 우리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겐 크리스마스, 성탄절은 집이 아닌 성당이나 교회에서 하루 종일 보내더라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닌 날인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당연히 성탄절은 집이 아닌 성당에 있는 게 마땅한 사람인 것이다.


그렇게 아침부터 "출근"도장을 찍은 성당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점심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하던 봉사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가니 늦은 오후.

훌쩍 커버린 두 아들들은 각자 친구들과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위해 이미 외출을 한 상태였고

집에는 홀로 남은 "나일론 신자" 남편뿐이었다.  혼자 거실 소파에서 TV와 함께, 말 그대로 "솔크"를 보내고 있었던 남편을 본 순간 괜한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사실 내가 "미안해할"일까지는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양심이라고나 할까. 그 순간 미안한 마음에, 그리고 날이 날인터라 내가 먼저 남편에게 데이트 아닌 데이트 신청을 해버렸다.  사실 너무 피곤하여 낮잠이라도 자고 싶었고, 화요일에 있는 수업에 대한 과제 준비도 해야 했었는데도 "솔크"를 보내고 있던 남편에게 "함께"를 선물해주고 싶었었나 보다.


"여보, 저녁 간단히 먹고 저기 OOO에 트리 축제 한다는데 보러 갈까? 커피라도 한 잔 하고 오자"

TV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며, 어쩜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이 "뭐... 그러던지..."라고 돌아왔다.

고단한 몸이었지만,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간단히 이른 저녁을 먹은 후 외출을 했다.


도로는 늦은 오후였지만 여전히 꽉 막혔다. 내가 가자고 했던 OOO 트리 축제는 이미 SNS를 통해 유명세를 타고 있었던 터라,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한참을 거북이처럼 가고 있었는데, 앗 뭔가 느낌이 안 좋았다. 트리 축제를 하고 있는 곳을 내가 착각을 해서 차선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이 막히는 도로에서 차선 변경도 불가능했고, 돌아갈 수도 없어서, 그냥  "착각"했던 그곳으로 가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설마, 거기도 유명한 호텔 커피숍인데 크리스마스트리 하나 없을까, 구경거리는 있겠지 하는 생각에 막히는 도로를 지나 도착을 했다. 그런데 의외로 생각했던 것보다 구경거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죄다 그 "OOO 트리 축제"에 가버린 듯,  그 호텔 마당엔 생각보다 아무것도 없었다. 약간 실망감에 김이 샜다고나 할까?


"그냥 나가까?"  내가 먼저 말했다.  

남편도 생각보다 아무것도 없고, 굳이 여기서 커피를 마셔야 하나 싶었던 마음이었는지, 수긍을 하며 바로 빠져나와버렸다.  나오는 도롯가에서 보니 여전히 반대편 차선은 그 트리축제를 구경하러 가는 차들로 꽉 막혀있었다.  아마 트리보다는 사람 구경만 하고 오겠구나 하는, 약간의 "얄미운 심보" 마저 생겼다.


그래도 뭔가 아쉬운 마음에 "그럼 바닷가라도 가볼까?" 또 다른 의견을 제시했지만 "에이~맨날 보는 바닷가인데... 춥다... 그냥 집에 가자 " 란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드라이브 한 셈 치고 집에 가자는 것이었다.

결국 크리스마스의 저녁을 그렇게 꽉 막히는 도로에서 "함께" 드라이브를 한 것이 되어버렸다.

만약 연인 사이었다면, 이럴 때 "그냥 집에 가자" 란 순간 그 둘의 사랑을 의심해 볼 만한 상황이지만,

우리 부부는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 수긍을 하며 발길을 돌리는 모습이 정말 여느 평범한 중년 부부의

일상 그대로임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솔크"였던 남편에게 잠시라도 드라이브를 하면서 "함께 크리스마스"의 시간을 보낸 것에 의미를 두며, 집에 오는 길에 나의 미안한 마음도 조금 덜어 두게 되었다.


이렇게 올해 나의 크리스마스는 평범하면서도 소소하지만 "솔크"에게 "함께"를 선물해 준 날로 기억 자장소에 보관을 하였다.  


내년엔 뭔가 다른 계획을 세워 봐야겠다.

꽉 막힌 도로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아닌 조금 더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로 저장이 될 수 있길 바라며...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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