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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류 Feb 14. 2023

기억의 오류

큰 아이가 엊그제 친구들이랑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식당에 안경을 두고 왔다.


뒷날  안경이 식당에 그대로  있는지 확인 전화를 했다.


" 어제 저녁에 아들이 거기에 안경을 두고 온 거 같은데,  혹시 검은색 테 안경 보셨나요? 

  한번 확인 부탁드립니다. " 


식당 직원은 수화기를 막고 누군가에게 물어본 후 답을 하길,  

분실물들 중에 유일하게 안경이 있긴 한데

검은색이 아니고 금테 안경이라고 했다.


"금테 안경이요? " 

 "네. 금테 안경 한 개뿐이네요 " 


금테라고? 

금테 안경이 우리 아이거라고?

순간 기억을 다시 했다. 

그럴 리가 없다.

분명 검은테의 안경이었다. 

몇 달 전 분명  아이와 함께 안경점에 가서 직접 골라서 맞췄던 안경인데,

검은테가 아닌 금테일 리가 없다.


식당 직윈에게 다시 한번 검은테 안경을 찾아 달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금테 안경뿐이란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아들에게 연락했다


"너 안경테  무슨 색이었어? 검은 테 아니야?!"

"아니, 금테!"


금테? 금테가 맞다고? 


그 순간 문득 떠오른 안경점에서의 기억.

나는 아이 얼굴에 검은테가 어울리니 검은테를 권했지만, 

아들은 본인이 하고 싶었던 금테 안경을 선택하여 맞췄던 것이었다. 


다시 식당에 전화해서 안경 사진을 전달받았고, 아들에게 재확인하니 맞다고 했다. 

사진을 보니, 금테 안경에 안경다리 끝만 검은색 테로 되어 있는 안경이었다. 


부분적인 검은색만 보고 검은테 안경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나. 

그리고 내가 예쁘다고 생각했던 그 검은테의 안경이

내 머릿속엔 "아들의 안경"으로 계속 남아 있었던 나. 


기억의 오류였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데로 기억하고 있거나

부분적인 것만 기억만 하고 있거나. 

아님 세월도 이기지 못하는 기억력 감퇴 거나.


전자든 후자든 간에

나의 기억력 능력치는 더 이상 최적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조금씩 그 능력치의 눈금선이 줄어들고 있음은 분명했다.


시간은 왜 기억력마저도 가져가 버리는 걸까.


우스개 소리로  ' 어제 있었던 일도 기억 못 하는데...'라는 말이

이젠 현실로 조금씩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저녁 퇴근길에, 식당에 들러 아들의 안경을 찾아왔다.

안경을 찾고 식당을 나서니,  그 기억력에 대한 서글픔은 또 싹 가시고

안경을 되찾은 기쁨이 그 서운한 자리에 대신 채워졌다. 


서글픔의 기억마저도 "빨리 사라져" 버리는 건,  

이 또한 나의 기억의 오류인 것일까.




P.S. 내검은테라고 계속 우겼으면 얼마나  진상 엄마처럼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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