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아~ 거실 TV가 안 나온다. 고장이 났나 보다."
엄마의 전화다.
"어~엄마... 퇴근길에 들러볼게."
저녁 퇴근길 친정집에 먼저 들려 거실로 가 TV를 켜본다.
전원은 들어오지만 TV 화면에 '신호가 없음'이란 메시지가 뜨면서 채널 화면이 안 보인다.
리모컨의 외부 입력 버튼을 몇 번 누르니 케이블 TV 화면 출력으로 바뀌어 TV 화면이 정상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 TV가 고장 난 게 아니고, 엄마가 리모컨 버튼을 아마 잘못 눌렀었나 봐. 아무거나 누르지 말고, 그냥 전원 버튼만 누르고 켰다가 끄고 그래... 알았지? 엄마가 아무거나 누르니깐 그런 거야 고장 난 게 아니고..."
"그래 알았어~"
그러고 얼마 뒤 또 전화가 온다.
"ㅇㅇ아~ 이번엔 안방 TV가 안 나온다. 잠시 들릴 수 있나? 아니면 사람을 부를까? "
"아... 엄마... 내가 저녁에 갈게"
또 같은 현상이다. 리모컨 버튼이 또 다르게 눌러져 있다.
연로한 엄마의 눈은 어둡고, 주름진 손의 마디마디는 두터워져 어눌해진 지 오래다.
그러니 작은 리모컨의 버튼들이 한꺼번에 두세 개씩 눌러지기 일쑤니,
이래 저래 또 TV 출력이 바뀌어 버려 마치 고장 난 TV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연로하신 엄마의 유일한 유흥거리요, 말동무요, 친구인 TV 가 한순간 안 나와버리면
엄마는 세상 쓸쓸히 텅 빈 집에 얼마나 무료하실까 생각을 하니 ,
어떤 날은 학교 갔다 잠시 집에 있는 중학생 아들 녀석에게 전화를 해서, 할머니 집에 잠시 들러서 TV 나오게 리모컨 조작을 좀 하고 오너라 심부름시킨 적도 여러 번이었다.
수년동안 반복되는 "엄마의 TV 고장"은 진정한 고장이 아닌 단지 리모컨 조작 오류란 걸 익히 터득하고 있었다.
그러던 얼마 전, 정말이지 모든 게 먹통이 된 날이 있었다.
아무리 리모컨 버튼을 눌러도 화면이 바뀌지 않았고, 케이블 TV의 셋톱박스를 껐다 켜도, 전원 줄을 바꿔 끼워봐도 더 이상 전원 버튼도 안 눌러졌고, 정말이지 말 그대로 진짜 "고장"이 나 버린 듯했다. 이 고장은 더 이상 "자식"이 고쳐줄 수 있는 오류가 아니기에, 케이블 업체에 고장 신고를 했고 셋톱박스 연식이 너무 오래돼서 바꿀 때가 된 것 같다고 수리 기사님이 최신 장치를 설치 하러 오셨었다.
기계를 바꾸고 "최신" 리모컨 조작 방법을 기사님이 설명해 주셨지만, 연로한 엄마의 눈과 귀엔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봐도 새끼손가락의 손톱보다 작은 버튼들이 빼곡히 있는 리모컨에, 어떤 기능을 하는지도 모를 버튼들이 나 조차도 어려운데 연로한 엄마에겐 얼마나 더 낯선 장치가 아닐까 생각을 했다.
문득, 휴대폰은 효도폰이란 게 있는데, 왜 TV는 효도 TV가 없을까.
그 옛날 단순 했던 TV처럼, 어르신들이 조작하기 편리한, 단지 전원 버튼만 있고, 채널과 볼륨 조정 키만 있는 리모컨이나 그런 기능만 있는 TV는 왜 없을까.
리모컨이라도 큰 버튼으로, 쓸데없는 버튼은 다 숨겨 버리고, 어르신들 조작 편한 버튼만 있게 만든 리모컨을
함께 주면 얼마나 좋을까.
초록창에 "효도 TV"를 검색해 본다.
역시나 그런 상품은 없었다. 버튼이 큰 리모컨은 있지만
과연 현재 TV에 맞을까 의구심이 들며 인터넷 창을 닫았다.
그래... TV 리모컨 오작동을 핑계로, 엄마 얼굴 한번 더 보고, 엄마 말동무 해주며 심심치 않게 하려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의 "효심"을 엄마집 TV 한편에 쌓아두며 오늘도 엄마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