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TV를 잘 보지 않게 되었다.
거실의 덩그런 TV는 남편의 전유물이 된 지 오래되었고,
TV에서 흘러나오는 연예인들의 헛웃음소리가 언제부턴가 귀에 거슬리고
나와는 다른 세상의 즐거움 같은 느낌이라 멀게만 느껴졌다.
드라마도 마찬가지.
화려한 남녀 주인공들의 뻔한 사랑 이야기에, 말 그대로 "판타지"세상 속 사람들의
그림이었다.
"저게 나와 무슨 상관일까" 란 관조적 자세로 보다 보니 더욱 거리감만 더해졌고,
상대적으로 나의 감정은 더 메말라 가는 기분이었다.
몇 년 전 코로나 시기의 "집콕"생활만 많이 했던 그 시절 구독을 시작했던 넷플릭스도
한참을 보다가, 언제부터인지 다른 가족들의 유휴 시간을 위한 즐길거리가 되었고
나에겐 그저 스마트폰 앱 중 하나일 뿐.
다만, 내가 필요한 영화나 드라마가 있으면 찾아보게 되는,
그저 잘 쓰진 않지만 삭제하지 않는 스마트 폰의 앱의 하나였다.
그러면서 점점 퇴근 후 나는 방에 들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SNS를 하거나 가끔 유튜브 정도 찾아보는 시간이 늘어갔다.
그래도 최소한 세상사 돌아가는 건 알고 살아야 하기에, SNS의 소식으로 세상의 목소리는 끊지 않고 듣고 있긴 하다.
그러다 최근 SNS를 통해 알게 된 드라마가 있다. <이 사랑 통역 되나요>
너도 나도 보며 하루 종일 기사가 뜨고, 남녀 주인공들의 사진들과 짧은 영상들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조회가 되었고, 멋진 배경과 공감되는 대사들이 내 눈을 이끌어서 나도 모르게
1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넷플릭스로 로그인을 했다.
그리고 종일 노트북에서 보이는 주호진과 차무희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참 예쁜 남녀 주인공들. 세상에 저렇게 생긴 사람들이 살고 있다니.
그러면서 점점 나는 그들 마음에 나를 이입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내용은 스포일러로 언급하지 않겠다)
이 나이에도 사랑을 또 하고픈 걸까
내게 스며들어온 감정들.
절절한 밀당의 감정, 서로 어긋난 생각들, 그로 인한 오해,
이별의 아픔 그리고 재회, 반복되는 우연의 만남, 그리고 사랑의 확인.
결국은 해피엔딩.
참 예쁘기도 하구나.
그리고 저리도 절절하고 애절하고 치열하게도 사랑할 수가 있구나.
한때 나에게도, 너에게도 저런 감정의 시간이 있었을까.
있었지.
있었겠지.
사랑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많은 감정소모를 했었었지.
그러니 이렇게 결혼도 했을 테니...
결혼을 하면서, 더 이상은 그 많은 감정 소모에 나를 맡기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했지만,
그로 인해 점점 메말라 가는 감정은 오히려 "이 나이에도 나도 사랑을 하고픈 걸까" 란
질문으로 나를 들어가게까지 한다.
이 나이에도, 사랑을 또 하고플까?
이미 어엿한 유부녀,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내 인생에서 더 이상의 사랑은 없다가 정답인 것인데,
만약에 사랑이 찾아온다면, 소싯적 달달하고 사랑스러운 연애 감정이 또 생길 수 있을까.
반백의 나이에,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무엇을 갈구하고 있는 것일까,
나를 무엇이 그토록 절절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일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알지만, 절절한 감정을 느끼는 건 자유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도 유죄라면, 드라마를 보면서 감정 이입을 하는 우리 모두 유죄겠지.
드라마 한 편으로 메말랐다고 생각했던 마음에 흩뿌려지는 먼지 같은 감정이
갈라진 틈새로 굳어진 흙이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한 번쯤은,
나도 다시 사랑이란 걸 해보고 싶단 생각을 잠시 해본다. 생각만.
그 생각의 끝은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검색하면서 "가상의 세계"로 나를 이끌어 보내준다.
이런 나를 보는 남편은 '주책맞은 여편네'라 하겠지만,
생각은 자유 아닌가. 상상의 무한의 끝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법.
그렇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