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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류 Mar 02. 2023

태극기가 없다

삼일절

태극기가 없다.


분명 창고에 넣어둔 태극기함에 태극기가 없다.

빈 통 안에는 태극기 봉만 덩그러니 있었다.

1년에 끽해야 국경절과 기념일에 4-5번 정도 게양하는

 태극기다 보니 이게 언제 어찌 사라져 버렸는지 조차도

기억 속이 비어있다.


작년이던가? 광복절 때이던가 개천절 때였던가...

바람이 세게 불던 날, 아파트 베란다에 어렵사리 매달려

있던 게 어느 순간  휘 날아 버리고,

1층으로 내려가 봉은 찾았지만,

가벼운 태극기는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었다.


그 뒤로 "태극기 새로 사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다가

먼지 쌓인 창고로 그냥 다시 보내어진 듯하다.


그러고 오늘 삼일절

경건히 매달고자 꺼냈건만

덩그런 봉만이 남아 있는 게 참으로 민망하다.


이번엔 꼭 사야지라고 결심하고

다시 제자리에 두는데, 이대로 창고 문을 닫았다가는

오늘 같은 민망함이 또 생기리라.


폰을 켜고 , 검색창에 바로 태극기를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배송료가 3천 원이 붙는다.

그래도 결재를 했다.


올해 광복절엔 더는 민망할 일이 없기를 바라며.



오늘 삼일절, 세종시 어느 아파트에 입주민이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걸어두어

주민들과 마찰을 빚었다는 기사를 봤다.

참 안타까웠다.

그래도, 오늘은 삼일절인데.

뭐에 비뚤어진 마음이 저런 행동을 낳게 했을까.

그래도 이 땅에 삶으로, 미우나 고우나 내가 자라나고  묻힐 이 땅인데,

이 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기사 사진 속에, 일장기 주변으로 게양된 태극기가 1집뿐이었던 사진도 눈에 들어왔다.

나처럼, 우리 집처럼, 어느 날 바람에 날아가 사라져 ,

새로 산다는 걸 깜빡해버린 버린 집들인 거겠지...


그럴 거야...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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