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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류 Mar 06. 2023

오렌지의 선택

나는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한다.

나는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한다


요즘 오렌지가 한창이다.

(언제부턴지 수입산 오렌지가"제철 과일"이 된 지 오래다)


마트 과일 코너에  수북이 쌓인 오렌지들이

오고 가는 고객들의 손을 이끈다.


[미국산 오렌지 10개에 8900원]


요즘 물가에 비해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오렌지 코너에 둘러 쌓인 사람들 틈을 비집고

한두 개 골라 담는 대열에 합류했다.

살림 고수처럼 느껴지는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골라 담는 선택된 오렌지들을 곁눈질해 가며 따라

골라 보지만,  나는 당최 어떤 기준으로 담는지,

 뭐가 맛있는 건지 잘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이것저것 보는 시늉만 하다가 손이 가는 대로 봉지에 한 두 개씩  담았다.


그때 나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이 오렌지들은 내가 선택해 주길 바랄까

아님 그 선택을 피해 끝까지 진열대에서 살아남길 바랄까.


비록 오렌지란 열매는 그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1차로 생명의 끈이 떨어진 알맹이 열매지만,

아직은 시들지 않은, 껍질의 사이사이로 생명의 들숨과 날숨이  드나드는 하나의 "생명체"이지 않은가.


오렌지, 너란 과일의 숙명이란

어차피 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인간이든 산짐승에게든 "먹혀줘야"그 생의 참됨을

살았다 할 수 있겠으나,

간혹 그 작은 열매조차도 타의에 의함이 아닌

자연적으로 "먹히지 않고" 시간이 지나 그 숨이 다해 시들어 버려지길 바라는 오렌지도 있지 않을까 말이다.


이 수백 개의 오렌지 더미에서 나에게 "선택"당한

10개의 오렌지는 "기꺼이" 또는 "어쩔 수 없이"

비닐백에 담긴다.  

그들의 운명은 내 손이 가는 순간 정해지는 것이지.


집에 와서 봉지를 열고 맛을 보고자,

그 10개 중 첫 번째로 어떤 오렌지를 꺼낼지 또 고민을 한다.

10개 중 어떤 게 제일 맛있을까.

과연 이 오렌지들은 빨리 내가 "먹어주길" 바랄까,

아님 조금 더 오렌지의 생을 누리길 바랄까.


한 개를 고르고 흐르는 물에 씻어 껍질을 깐다.

한 조각 떼어내서 입에 넣어본다.

참 달고 맛났다.


오렌지의 선택.

저 바다 건너 미국에서 수십만 그루의 오렌지 나무 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수십만 개의 오렌지들,

그중 수만 개가 대한민국으로 왔고,

그중 수천 개가 작디작은 우리 동네 마트에 도착했고,

그 수천 개의 오렌지 중 먼저 수백 개들이 진열대 놓였고,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 중, 하필 나에게 선택당한 10개의 오렌지 중, 그중 또 첫 번째로 내가 "먹어준" 오렌지.


내가 참 맛나게 먹어줬으니

뿌듯한 너의 오렌지 인생 참되게 마감했다고,

영광이라고 상상해 본다.


나는 이렇게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한다.

이렇게. 엉뚱하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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