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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쑤 Aug 10. 2024

열매가 되는 말의 씨앗


“김 부장, 그전까진 아무 생각 없이 살았었구나!”



얼마 전 친한 지인과 독서에 대해 얘기하게 됐다. 그분은 내가 예상외로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걸 알고 궁금해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스무 살이 되어서야 독서에 흥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내가 처음 독서에 흥미를 갖게 된 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자전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 유형의 책을 많이 읽게 된 것이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과거의 경험에 관해 얘기했다. 실제로 지금도 나의 독서 유형은 철저하게 나의 흥미 위주이다. 그런 내 얘기를 듣던 지인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김 부장, 그전까진 아무 생각없이 살았었구나!” 


순간 ‘띵~’하는 소리와 함께 머릿속이 하얘졌다. 말문이 막히면서 무슨 말을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그런 와중에 나도 모르게 변명 같은 이야기를 두서없이 떠들어댔다. 그리고 그 이후에 무슨 얘기가 오고 갔는지 더  이상 기억이 나질 않는다.  



택시를 탔다. 집으로 가는 택시안에서 지인과 대화를 나누던 상황을 복기해보았다. 어쩌다 그런 사소한 얘기까지 하게 된 건지. 어떤 대화의 흐름에서 그 얘기로 흘러간 건지. 그 대화가 어떻게 그 말고 연결이 된 건지. 혼란스러웠다. 머리를 아무리 흔들어봐도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충격을 받긴 했는데 이게 슬픈 건지, 화가 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그 말이 진짜 내가 충격을 받을 정도의 말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모르겠다. 내가 너무 오바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들었던 말이 머리에 박혀 떠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나에게 그런 얘기를 했던 이유는 뭘까. 어떻게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었나. 만약 내가 본인보다 나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만약 내가 본인보다 나이가 많았다면? 만약 내가 본인보다 직급이 높았다면? 만약 내가 본인보다 좋은 대학을 나왔다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당연히 내가 본인보다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거나 좋은 대학을 나왔다면 감히 그런 말을 나에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직급이나 나이는 그렇다 치고, 내가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해서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결론이 성립되기 시작했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는 건 학창시절에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창시절에 공부를 않았다는 건 남들에게 아무 생각없이 살았던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즉, 내가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게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나에게 아무 생각없이 산 사람이라는 얘기를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가슴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얘기나 듣고 있어야 한다는 현실이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큰마음의 상처가 되었다.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갔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다. 하루가 길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툭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다행히 가족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상처받은 마음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반복되는 같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나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이 떠올랐다. 나에게 함부로 말한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받은 상처를 꼭 되갚아 주리라 다짐했다. 



그동안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내가 받은 상처의 원인 제공자였다. 그 사람의 말이 아니었다면 나는 상처받을 일이 없었을 거라 여겼다. 착각한 거였다. 정작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였다. 


누군가가 나에게 큰 의미 없는 말의 씨앗을 던져준다. 그러면 나는 그 씨앗을 내 마음 밭에 심는다. 씨앗이 잘 자라도록 물도 주고 햇빛도 준다.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 여러 개의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는 상처일 때도 있고 분노일 때도 있다. 


반복되는 과정이었다. 큰 상처와 분노를 얻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주 작은 씨앗 한 개뿐이었다. 씨앗은 나의 부정적인 생각들로 무럭무럭 자랐다. 그리고 오래 걸리지 않아 나무가 됐고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맺혔다. 


나는 상대가 무심코 던져 주는 말의 씨앗을 흘려보내지 못했다. 그걸 내 마음 밭에 심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상대의 발을 흘려들을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흘려들으려고 노력할수록 오히려 더 생각이 났다.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번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면 나 스스로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와 같았다. 


내가 나에게 주는 상처는 남에게 받는 상처보다 더 깊고 아프다. 내가 가장 약한 부분에 정확하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결국 나는 내가 받고 싶은 부위에 상처를 낸다. 그래서 더 많이 아프고, 회복하는 데도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결국 나는 항상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화를 품고 있는 사람이 됐다. 부정적인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에게 화가 났다. 알면서도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나를 자책했다. 사람들과 아예 말을 하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됐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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