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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쑤 Aug 19. 2024

나는 왜 상대의 말을 흘려듣지 못하는 걸까?


업무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짜증 나는 기분이 나를 덮쳐왔다. 직원들과 웃으며 함께 간식을 먹은 뒤였다. 날씨도 좋고 오랜만에 업무시간에 모두가 함께한 간식 시간이었다. 


가끔 나는 팀장으로서 팀원들을 챙겨주고 싶을 때가 있다. 윗사람 노릇을 하고 싶은 걸까. 간식을 챙겨주고 직원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해하곤 한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간식을 주문하고 배달 온 간식을 세팅했다. 떡볶이, 순대, 튀김, 어묵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직원들이 하나둘 모였다. 준비하면서 신이 난 나는 생색을 내듯 직원들에게 말했다. “빨리 앉아서 먹어요. 음료는 마시고 싶은 거 각자 따르면 돼요.” 그때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부하 직원이 내 뒤를 이어 말했다. “빨리 앉아서 먹어요. 나는 괜찮으니까 식기 전에 먹어야지.”


나는 과장님도 앉아서 드시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나보다 더 윗사람처럼 말하는 그 과장님의 말이 왠지 모르게 거슬렸다. 한마디가 거슬리고 나니 그다음 말도 계속 거슬리기 시작했다. 신나게 간식을 준비했지만 정작 간식을 먹는 동안 대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윗사람 행세하듯 하는 말이 약간 거슬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사람들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 ‘과장님’의 말만 내 귀에 들렸다. 내 귀에 들리는 과장님의 말은 말의 내용과 상관없이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런 패턴을 무수히 반복해 왔다. 상대가 스쳐 지나가듯이 하는 말을 흘려듣지 못했다. 처음엔 약간의 거슬림에서 시작했다. 그 약간의 거슬림은 분노의 씨앗이 되어 내 안에서 점점 커졌다. 


끝도 없는 분노를 느꼈다. 상대의 말을 곱씹어 생각했다. 화가 나는 원인을 상대에게서 찾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내가 화가 나는 게 당연하다고 나 자신을 합리화했다. 거기에서 멈추는 법을 몰랐다.


내 안에서 생각이 계속 이어졌다. 생각이 생각을 몰고 왔다. 나는 감정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의 말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내 내면의 소리는 점점 커졌다. 나는 점점 화가 났다. 이러한 생각 패턴이 내 오래된 습관이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나는 내가 화를 내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화를 내고 있었다. 내가 화난 감정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화가 난 원인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화가 나를 집어삼키도록 방치했다. 


주위 사람들은 나를 밝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지만, 분노로 들끓는 마음으로 지낸 시간이 더 길었다. 화는 화를 몰고 왔고, 외부에서 원인을 찾으며 살았다. 내 안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커지면 그 생각을 멈추게 하는 방법을 몰랐다. 생각에 끌려다니며 살았다. 그럴수록 내 안의 화는 점점 커져갔다. 나를 소모하며 살았다. 


나를 화나게 만든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는 자꾸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이는 패턴을 인지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웃으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정작 내 안은 부정적인 생각들로 커져 버린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모든 것은 상대방의 말 때문이라고 여겼다. 화의 원인을 외부로 돌릴수록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나 스스로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춰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듯 핸드폰을 부여잡고 누군가를 찾았다. 누군가를 만나 열변을 토하고 나면 갈증이 해소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헤어지는 순간 갈증은 또다시 시작됐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패턴에 갇혔다. 열심히 달려도 벗어나지 못한 채 에너지가 소모됐다. 그러다 깨달았다. 다른 사람 때문에 화가 난다고 생각했던 나 역시 누군가에겐 화의 원인 제공자라는 것을. 내 안의 화를 통제하지 못하고 원인을 밖에서 찾았을 땐 그걸 몰랐다. 


나는 남의 얘기를 잘 들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경청의 중요성을 상기하며 열심히 들으려 노력했다.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의 힘을 알기에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스스로 약간의 자부심도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남의 말을 열심히 들을수록 나 역시 상대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 때로는 선 넘는 조언으로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반대편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지 못했다. 


나는 누군가 지나가듯 한 말을 흘려듣지 못해 분노의 씨앗을 만들었다. 반면, 누군가의 말을 흘려듣지 못해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 사람 역시 나의 말로 인해 분노로 활활 타올랐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화의 원인을 찾고 싶어서 바깥으로 헤맸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공감받고 싶어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다. 그건 외부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토록 찾았던 화의 원인은 이미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지 못하고 밖에서만 찾았을 때 화가 나는 패턴을 끊을 수가 없었다. 


내가 화의 불씨를 키우지 않는 방법은 알려고만 하면 찾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내가 화를 내며 반복했던 패턴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나는 왜 상대의 말을 흘려듣지 못하는 걸까? 그건 화가 나는 원인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내 내면을 마주하고 화가 났음을 인지할 때 조금씩 바뀔 수 있었다. 나는 고전 필사를 하며 나의 내면과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화의 원인 제공자라는 것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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