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었다. 한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갖는 선과 악, 인간의 본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그의 작품에서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란 게 여러 번이다.
개인적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과 이해와 지혜를 책에서 얻고자 할 때 고전문학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난 그렇게 또 책을 통해 그 시대 톨스토이와 만났다.
삶과 죽음은 나의 화두이기도 하다. 내가 가장 불안했던 시절로 돌아가 보면 어쩌면 그 불안이라는 게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의 반증이 아니었을까. 지금의 나는 죽음을 너무도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어서인지 지금의 내 삶과 앞으로의 삶이 두렵지 않다. 내 미래를 과도하게 예측하지도 예견하지도 앞서 가지도 않는 이유다.
그래서인지 부쩍 시간에 대해 곱씹어 보곤 한다. 일부러 의도해서 떠올리기엔 복잡하고 과학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주는 아니고, 단지 시간은 흐르는 걸까. 정도의 내 상념과 통찰을 통해 내 나름대로 가늠해보는 수준이다.
내 삶은, 내 시간은 어디로 흐르고 있을까. 잘 가고 있는 걸까. 인간이 태어나고 죽기까지의 과정으로만 본다면 일차원적으로만 본다면 시간은 분명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까지 일직선상으로 한 방향으로 흐른다. 가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흐른다. 간다. 흘러간다. 떠난다. 기다려주지 않는다. 없다. 등등 시간이라는 명사에 붙는 표현들도 이렇게 다양할진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것이 관념적인 측면에서의 시간 개념이라는 생각이다.
삶의 경험이 켭켭이 쌓이고 겹쳐져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이 되어보니, 어쩌면 시간은 내가 가는 길, 방향과도 같은 의미일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이 든다. 이유인즉슨, 나는 아주 자주, 나는 내 길을 잘 가고 있는 걸까.라는 말을 시간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거지. 잘 가고 있는 건가.라는 말과 바꿔 사용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시간은 어디로 흐르고 있을까 =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말과 내겐 같은 의미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간에 대한, 내가 지나온 길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내 성격인가 보다. 하지만 과거와 확실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엔 그 후회가 나를 그리고 내 일상을 잠식하도록 내버려 뒀지만 지금은 그 후회를 나 스스로 요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그 뼈저린 회한과 안타까움을 내 삶의 에너지와 원동력으로 사용한다는 것. 그럼으로써 내 삶을 재정의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내가 내 길을 잘 가고 있는지는 조금 더 두고 볼 참이다. 그 길이 무엇이든지 간에 조급해할 필요도 서두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다. 길은 얼마든지 내가 흙을 밟고 땅을 밟아 만들어가면 될 일이다.
외국에 살 때도 유독 내 발과 다리를 끔찍이도 아껴주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매일매일 날 새로운 곳으로 새로운 길로 안내해주었기 때문인데 그 끔찍한 사랑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특히 파리 살 때는 단 한 번도 같은 길로 다니지 않았다. 늘 다니던 길로 가다가도 반드시 옆길로 새는 일, 내겐 너무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매일 새로운 골목길을 마주하는 일, 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은 건물들과 색다른 시선을 내 눈에 담으며 유유히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언제나 내 종착지는 우리 집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한참을 돌아가기도 샛길로 빠져도 결국 하나의 길을 만나게 된다는 것. 연결된다는 것. 이 조차도 일상에서 느낀 경험이고 지혜였고 진리였다.
어쩌면 서른 중반의 딱 이 시점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칭할 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은 절대 안 변한다고 하는데, 철저히 주관적으로, 개인적으로는 삼십 대 초반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이가 들어서이기 때문은 아니며, 철저히 경험에서 나온 그 무언가.라는 생각이다.
"그땐 또 다 그럴 이유가 있었겠지. 지금 이렇게 완전히 다른 나. 를 만나게 하려고 그랬나 봐!^^" 내가 가진 그 모든 경험이 소중하고 이 경험이 날 세상에 하나뿐인 값진 아이로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까지. 내 시선이 달라지면서 세상의 낮과 밤이 이리도 아름다워 보인 적이 있던가. 하곤 냄새와 공기를 힘껏 들이마신다.
시간은 어디에. 나는 어디에. 나는 나의 길을 잘 가고 있는가. 나를 둘러싼 것에 대해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이 작업은 날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일상에서 너무도 자연스러운 내 생각과 의식의 흐름 속에서 진행된다.
내 나름대로 조심스레 중간평가를 하자면, 내 시간은 상냥하고 깜찍하고 유쾌한 방향으로 샛길로도 빠졌다가 옆길로도 샜다가 뒷골목으로도 빠졌다가 하기를 반복하며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다.
유쾌하고 그렇다고 가볍지 않으면서도 우아하고 품위 있게 살고 싶은 내 소망은 오늘도 이렇게 내가 내 길을 잘 가고 있는지, 내 시간은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깜빡하지 않도록 살피고 갔다.
주인공 이반의 죽음을 마주하다 또다시 삶을 통찰할 기회를 얻었다. 톨스토이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늘 그렇듯 내 생각을 쉬도록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깨어있게 하고 끊임없이 생각하게 해주는 것. 내가 고전문학가들과 고전 철학자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