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소하게

by miu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서 조금은 오버해서 마치 봄이 성큼 다가온 듯한 느낌과 공기 냄새가 잠깐 났다. 역시나 오늘 평균기온이 조금 높다고 하니 순간 초봄을 느꼈나 보다. 무튼 기분이 갑작스레 살랑였고 얼른 봄이 왔으면 하고 바래보았다. 날씨와 바람과 공기의 내음새로 사람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편이다. 가벼운 러닝화를 신고 숲을 거닐고 싶기도 옷의 차림새도 가벼워졌으면 했다. 겨울도 이만하면 충분히 즐겼음은 물론이다. 삶은 아름다워. 살만해.라는 생각까지.


개인적으로 지난 2년 간 내 삶은 그리고 내 삶의 철학은 드라마틱하게 변해왔다고 생각하는데 결론적으로 보자면 내 인생 통틀어 마음적으로는 심적으로는 지금이 제일 평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20대 중후반엔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하느라 나름의 갖은 씨름으로 불안해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살았고 30대 초반 역시 일적으로도 변화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마음이 불안하고 우울했던 것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아름다운 낭만의 도시 파리에 있었을 때 조차도 스페인 톨레도 성벽 위에서 조차도 내 마음은 오히려 혼란스럽고 괴롭고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듯한, 마음이 어두웠던 적이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가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지나 보니 내 나름대로의 수많은 크고 작은 경험들이 날 값진 아이로 만들어줬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게. 내 안의 자아에게 집중하게 됐다.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는 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확실히 편해졌다. 내 삶 전체 흐름도, 인간관계도, 일도 모두 다 한결 가벼워지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졌다.


삶의 질적인 변화도 컸다. 여기서 말하는 질적 변화라 함은 예전보다 더 많이 소유하게 되었다는 물질적 여유는 아니며 삶의 질적인 변화라는 것도 결국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의 질적 변화란 내 라이프스타일에 있어서의 질서가 생겼다는 게 적확할 것 같다.


옷은 필요한 것만 남겨두고 모조리 정리했다. 소소한 물건들까지도 잡다한 것들은 모조리 꺼내 주위에 주거나 과감히 버렸다. 부엌살림은 또 어떠한가. 애정 하는 빈티지스러운 컵과 접시들 몇 개 들만 남겼으며 수저 등등 조리기구들도 마찬가지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부엌을 보고 있자면 내 마음까지도 말끔해지는 기분이다.


사실 개인적인 취향은 70, 80년대 빈티지 스타일을 참 좋아하는데 커리어 우먼 시절엔 이 모두를 포기하고 세련된 옷만을 골라 입었던 터였다. 지금은 세련된 스타일의 옷이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았으며 빈티지스러운 옷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좀 촌스러운 듯해도 난 뭐든 옛날 감성, 빈티지, 역사, 가구 이런 것들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성미가 있다.


시간이 지나서라도 언젠가는 본인이 좋아하는 취향이나, 어떤 경향을 결국엔 따라가게 되어있다는 생각이다. 결국 본인의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 아니겠는가. 싶다. 나이는 삼십 대 중후반을 향해 달려가는데 내 옷 취향은 패션 70, 80으로 회귀하는 듯한 아이러니, 다소 촌스러움, 이 모든 게 지금은 좋으며 날 기분 좋게 해 준다.


소소하지만 내 취향껏 나의 모든 것을 다시 재배치 혹은 정열, 질서를 만들어 나간다는 건 내 삶의 질을 확연하게 높여주었는데 이와 함께 내 정신상태와 마음의 주파수 역시 안정권에 접어든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볼 수 있겠다. 가장 큰 깨달음은 생각보다 또 생각보다 인간이 사는데 엄청난 것이 혹은 많은 것이 그리 필요치 않구나. 였다.


많던 그릇을 5개 내외로 줄여도, 평소 자주 입는 옷들로만 5개 정도만 꺼내놓아 입어도, 먹는 것에 그리 많은 돈을 소비하지 않아도, 있는 운동화 여러 개를 돌려가며 신어도 굳이 신상을 사지 않아도, 타던 차를 팔아도 등등... 내 인생엔 내 건강엔, 내 일상엔 전혀 치명적이거나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떠한 지장도 없다.


그러면서 청소를 하다 문득 룰루랄라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참, 희한해. 생각보다 사람이 사는덴 그리 많은 게 필요 없단 말이지... 오히려 조금은 의도적으로 일상을 불편하게 놔두니까 나쁘지 않은데? 음... 잘 살고 있군. 기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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