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온도

by miu

추위를 유난히도 타는 성미인데 추위도 적응이 되는 것인지 지금은 추위에 그리 유난하지 않다. 이제는 심지어 찬바람이 얼굴에 쏴아하고 닿는 그 느낌마저 상쾌하고 겨울이 좋아졌다. 어떨 땐 집 밖으로 나오는 순간 마스크팩을 얹어 놓듯 기분 좋은 찬바람이 내 얼굴 전체를 완전히 감싸는 듯한 느낌을 즐기게 됐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파리 살던 때, 추위에 완전히 적응된 게 틀림없다. 후덜덜한 월세에 아끼고 아끼던 때. 난방비까지 더하면 이건 아니다 싶어, 난방을 아주 쪼끔 쪼금 조심스레 틀었다 껐다를 반복했다. 게다가 파리의 집들은 왜 이리 추운지, 우리나라처럼 후끈하게 올라오는 것에 비하면 영 시원찮았다. 오히려 보온물주머니를 침대 이불속 안으로 두어 개 넣어놓는 것이 훨씬 따뜻했다. 그야말로 침대 속은 후끈하나 상체와 얼굴은 그야말로 냉기로 가득했다. 그렇게 축축하고 우울한 파리의 겨울을 용케도 났다.


그때 실내 평균온도가 16도 17도 정도였는데 파리 친구에게 물어보니, 프랑스에서는 아이를 키울 때도 그렇고 집안을 평균 18도 그 정도로 유지하고 웬만해선 뜨겁게 지내지 않는다고 다. 한국에서의 삶이 그리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집안의 따뜻한 온기가 사뭇 그립고 감사한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자연스레 따뜻한 티와 커피를 달고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또 그렇게 살았을 때의 나름의 낭만이 있었달까. 다시 그렇게 살라고 한다면 못 살 것 같지만 내겐 또 하나의 경험이었다. 어느 것 하나 아무것도 아닌 경험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기에 크든 작든 슬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멀쩡하게 살고 있는 지금 이 모든 나의 경험은 소중하다는 생각까지도.


그때의 영향 탓인지 요즘 내 집 온도는 17-8도 이상을 절대 넘지 않는다. 파리 살 때처럼 후덜덜한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아끼려고 난방을 틀지 않는 것은 아니고 그저 몸이 그때의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이 된 탓인지 도통 추위를 크게 느끼지 못해서이다. 오히려 일하러 나갈 때면 집안 환기를 위해 창문을 자주 열어 놓고 나간다. 조금은 쌀쌀한 조금은 서늘한 공기가 내게 이리도 잘 맞는 거였던가. 싶을 정도로 이제는 뜨뜻한 혹은 후끈한 공기보다 적당한 온도의 그렇지만 거기에서 조금은 낮은 정도의 온도를 선호하게 됐다.


물론 온수매트를 깔고 살기에 가능할 수 있긴 하다. 지금도 푹신한 소파 위 온수 매트 하나 깔고선 이불 하나 덮고 노트북은 내 무릎에 놓고 타닥타닥 키보드를 켜고 있음은 물론인데 전혀 춥지 않다. 확실히 추위에 대한 민감도와 반응도가 달라졌다는 생각이다. 이상하리만치 춥다고 느끼지 않음으로 난방을 오랜 시간 켤 일이 없고 또 이로 인해 난방비도 확 아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이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적당한.이라는 단어 선택에 꽂히게 되었는데, 적당한 온도, 적당한 거리, 등등 내 삶도 그리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정도의 적당한 삶의 온도를 지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살아보니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그러려면 얼마나 내적 성장과 갖은 경험이 있어야 하는지도 깨닫게 된 바, 요즘 내 집안의 아주 적당한, 알맞은, 상쾌한 온도가 때로는 날 긴장하게 또 이렇게 깨어있게 하듯 오늘도 난, 내 온몸으로 느낀 방 안의 공기에서 시작한 내 의식의 흐름이 적당한 삶의 온도의 중요성으로 이어짐을 느끼며 마음의 휴식을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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