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팩

by miu

간만에 백팩을 멨다. 수납장에 있던 백팩을 꺼냈고 노트북을 챙긴 후 집을 나섰다. 노트북이 들어가니 그 무게감에 내 몸과 양쪽 어깨의 균형이 맞아 들어가면서 걸음걸이도 평소보다 더욱 안정감 있는 듯했다.


백팩이 주는 그 캐주얼함을 참 좋아하는데, 늘 에코백만 가지고 다니다 백팩이 다시 메고 싶어졌다. 백팩을 메면 양손이 조금은 더 자유로워진다고 해야 할까. 백팩을 메고 이동할 때면 내 생각과 정신은 한 곳으로 집중되는 듯한 느낌을 자주 경험했던 터라, 백팩을 멘다는 건 내겐 자유로움과도 같은 의미가 된다. 양손이 자유롭다는 것, 시간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큰 효과가 있다. 내가 백팩을 애정 하는 이유다.


어제는 털이 복슬복슬한, 안에는 공기를 넣은 듯한 마치 풍선같이 부풀어 오른 부피감 있는 겨울 패딩에 야무지게 백팩을 멨는데, 그 모습은 마치 스쿨룩이 된 듯한 느낌에, 마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까지 들어 백팩 메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양 손을 양 백팩 줄에 꽉 잡으면서 더욱더 깜찍한 자세를 했더니 내 표정은 귀여운 척, 깜찍한 척 별 걸 다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손발이 오그라 드는 기분까지 경험했다.


원래 자주 메던 짙은 카키색 백팩은 하도 많이 메고 다니다 보니 낡아 못쓰게 돼 버렸다. 올여름 상금 언니가 오래전 스페인 여행에서 산 백팩을 메고 나왔는데 예쁘다는 한 마디에 냉큼 내게 주었다. 또 넙죽 냉큼 받아온 나는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잘 쓰고 있다.


백팩을 애정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꼼꼼하게 하나하나 신경 써서 가방에 담는 스타일은 아니기에, 그때그때 백팩이라는 곳에 화장품 파우치며, 지갑이며, 필통이며, 노트며, 도시락이며, 간식이며, 책이며, 머리끈이며, 핸드크림이며, 선크림이며, 핸드폰 충전기며, 우산이며, 티슈며... 온갖 것들을 다 넣어 다닐 수 있어서다. 털털한 성격과 성미를 가진 나로서는 백팩이야말로 내게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백팩을 요술가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만물상점처럼 별 것 개 다 나온다. 웃음이 나올 만큼 어떤 날은 양말이, 어떤 날은 스타킹이 나온 적도 있다. 백팩은 내겐 요물이다.


백팩 본래의 기능 외에 여기에 내가 하나 추가한 게 있다. 감정 백팩이라는 건데, 내가 느끼는 우울, 불안, 슬픔, 두려움, 상처, 짜증, 무기력함, 외로움 등과 같은 크고 작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이 백팩 안에 넣는 상상을 자주 한다. 그러고선 다시 한번 그 감정들을 그때그때 하나씩 꺼내 마주한다. 그렇게 시간을 조금 두고 마음을 의도적으로 가라앉힌 후 무거운 감정에서부터 가벼운 감정까지 꺼내고 넣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나를 괴롭혔던 감정들은 감정 백팩 안에 쏙 들어가 자취를 감춘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이 감정 백팩의 용도가 큰 도움이 될 때가 있으며 감정 컨트롤에 있어서도 용이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사람 참 안 변한다고 하는데 요즘의 나를 보면 사람이 변하긴 하는구나. 싶을 때가 있다. 백팩을 메다가도 결국엔 내 삶과 연관 짓는 거 하며, 내 물건에게서마저 삶을 생각하고 반추하고 그들을 통해 깨달음까지 얻고 있으니 말이다. 분명 내 생각과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겠지?


별의별 생각을 한다는 것. 내겐 결코 가볍지 않은 꽤 괜찮은 일인 것 같다. 의도적이거나 의식하지 않음에도 이 세상 모든 것에서 자연스레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 삶의 깊이도 그마만큼 깊어지고 짙어진다는 것, 내겐 분명 큰 장점이다.


가방을 사용하는 데 있어 한 번 멨다하면 중간에 별로 갈아타는 법이 없고 질릴 때까지 혹은 헤질 때까지 쓰는 고약한 성미를 가진 나는, 이 백팩을 또 한참 동안이나 메고 다닐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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