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겨울

by miu

뭐든 거기에 있을 때, 그곳에 있는 게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라 그것의 소중함을 곧잘 잃어버리게 된다. 파리가 내게 꼭 그랬던 것처럼. 파리의 겨울을 나름 혹독하게 보내서였는지 해마다 겨울이 되면 파리의 그 계절, 파리의 겨울이 참으로 그립다.


아침 공기, 빗소리, 잘도 돌아가고 있는 오븐과 그 오븐에서 나는 뜨끈뜨끈한 열기와 코끝을 자극하는 맛깔난 냄새, 부엌 식탁에 앉아 가만히 비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와인 한 병을 다 비웠던 나... 등 그 모든 것이 아련하리만치 그립고 또 그립다. 언제 또 그런 날이 올까.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때 조금 더 신나게 열정적으로 파리의 삶을 즐길 걸. 나라는 사람은 늘 그렇듯 나중에서야 꼭 경험하고 나서야 알게 되고 깨닫는다. 쌀쌀해진 바깥공기 앞에서 나는 파리의 겨울이 떠올랐고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일어나자마자 부엌으로 가 캡슐 커피를 내리던 나의 모습이 오늘 아침 유독 선명하게 내 눈에 들어온다. 난 꼭 각설탕을 넣었는데 그 조차도 낭만이었다. 티도 달고 살았다. 장을 볼 때 티 코너에서 이번엔 또 어떤 티를 먹어볼까.하며 고민하던 나였다. 티에는 꼭 미엘(꿀)을 넣었는데 가격은 조금 있지만 고체형으로 된 텍스처가 색다른 프랑스산 미엘은 정말 끝내줬다. 한국에도 분명 팔텐데 프랑스에서는 흔한 그 미엘이 서울에선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생각난 김에 티를 주문해야겠다. 티를 마셨을 때 느껴지는 내 몸의 온기와 고요함이 있다. 그곳에서의 감자와 바게트, 치즈와 버터... 내가 살던 동네, 카페, 도서관, 레스토랑, 센 강, 오르세, 루브르, 퐁피두, 피카소 박물관 등등 매일 같이 거닐던 그 길들이 새록새록 파닥파닥 내 오감을 건든다.


추운 그 겨울 친구와 집 앞 3구 퐁피두 바로 앞 수영장에 다녔던 기억도 생각난다. 오븐 생각이 절실하다. 파리 살 땐 오븐을 써서 하는 요리가 일상이었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내 집의 특성상 원래 오븐이 없는 집에 들어와 사는 것이기도 하고 하고 바쁜 일상에 오븐을 써서 요리한다는 일은 이곳에서는 가성비가 뚝 떨어지는 비효율적인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생활 요리인에다가 오븐으로 할 수 있는 갖은 요리들을 알기에 그러지 못하는 한국에서의 내가, 오븐을 갖고 있지 않은 내가 참 아쉽다. 마흔이 넘기 전엔 오븐을 집에 들일 참이다. 한국음식이라면 소위 환장을 하던 현지 친구들을 초대해 잡채, 야채튀김, 비빔밥을 대접했던 그날의 저녁... 지나고 보니 추억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었구나.싶다.


파리의 겨울은 춥다. 쌀쌀맞았던 이 도시의 첫인상과 꼭 닮았다. 내가 경험한 파리의 겨울은 축축하고 젖은 상태일 때가 많았는데 비도 자주 내리고 공기 또한 차다. 지금은 그 공기마저도 낭만적이었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주말 오전 일찍 일어나자마자 집의 뒷골목 불랑제리에서 드미 바게트와 크로와상을 사오던 일... 그때의 여유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곳에서의 삶과 지금 이곳에서의 삶은 도대체 무엇이 다른 걸까.


현지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고 통찰할 수 있었고 결국 우리네 삶은 어디든 다 똑같구나. 그저 살아가는 거구나.를 깨닫게 해 준 귀한 시간이기도 했다. 자기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고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며 나를 반추하기도 했다.


유독 파리 생각이 많이 나네.하는 요즘인데, 파리 언젠가 다시 찾게 되겠지. 다시 찾게 되면 그 모든 게 왠지 다르게 느껴질 것만 같다. 내가 살던 동네, 그 집, 슈퍼마켓, 공원, 센 강... 낯설게 느껴질 것 같은 이 기분은 무얼까.

오븐 로스트 치킨과 오븐에 바싹하게 구운 감자요리가 자꾸 생각나는 아침이다. 내일 새로이 이사 가는 그 집에 그 생활의 낭만을 다시 소환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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