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에 향나는 손세정제를 두어놓은지라 설거지를 마치고 욕실 세면대로 갔다가 그만 미끄러지고야 말았다. 순간 본능적으로 오른쪽 손을 네모난 세면대 윗부분을 잡았고 다행히도 더 크게 일이 나지 않았다. 정확히 오른쪽 다리의 앞부분 뼈가 있는 딱 그 중간 지점에, 세면대 아래 이어지는 부분에 찧었는데 순간 뼈가 부러진 거 아닌가.싶을 정도로 아팠고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휴. 놀란 숨을 간신히 붙잡고 심호흡 한 번 하고선 천천히 오른쪽 다리를 펴고 일어섰다. 걱정과는 달리 섰을 때 쩔뚝거림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겠구나.싶어 안도했다. 어맛 나와보니 아니나 다를까 뼈 가운데 부분이 동그랗게 흰색 반점처럼 되더니 몇 분이 되지 않아 멍이 올랐고 지금까지 볼록 부어올랐다. 경험적으로 이정도면 며칠 지나면 가라앉을 것 같다.
갑자기 이런 일이. 방심했던 탓일까. 이 조차도 내게 여유를 갖으라. 조급해하지 말라. 서두르지 말라. 천천히 가라.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걸까. 잠시 휴식이 필요했다. 소파에 앉아 멀뚱멀뚱 천장을 한참을 바라봤다. 사실 이사를 앞두고 멀쩡하다가도 불쑥 괜한 걱정과 불안이 왔다가곤 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마치 그런 내 자신에게 정신 바짝 차리라는.말을 해주려 했나.싶다. 무튼 다행이었다.
그런 차제에 오른쪽 다리는 높은 쿠션을 대어놓고 소파에 누워있는 상태로 사진첩을 들여다보았다. 책을 읽다 공감했던 말이나 위로됐던 말이나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을 메모해두는데 저장해둔 메모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놀란 내 마음을 진정시켰다.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 가운데"를 읽었을 때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내겐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책이기도 한데, "처음으로 나는 슬픔도 재산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문장에 형광펜을 쫙쫙 그으며 그 시절의 나를 위로했던 기억이 난다. 내 정신상태에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애정 하는 문장이다.
슬픔도 재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꽤나 슬픔에 사로잡혀있던 나라서 더욱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이 칠흑같이 어두웠던 때를 생각해보면 나는 내 스스로에 대한 연민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자기 연민이라는 게 때로는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연민이 내가 깨어있게 하고 의식하게 있게 한다면 그 연민은 결코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나를 가엽이 여기는 마음이 뭐 어떠한가. 그렇기에 내 안의 나를 좀 더 들여다보고 안아주고 나를 더욱 사랑해줄 수 있게 된다고 나는 경험적으로 말할 수 있다.
단, 그 연민에 빠져 내 스스로가 그 어둠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거나, 그런 상태로 나를 두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라면, 그런 종류의 연민은 강하게 경계해야한다. 그 연민으로 인해 내가 놓은 덫에 갇혀 수년간 빠져나오지 못함으로써 흘려보내 버린 시간에 대한 뼈저린 후회와 회한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돌고 돌아 이제는 그런 마음까지도 포용하고 인정하고 극복할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되었지만 아마 내 생이 다하는 날까지 이 과정은 반복될 것 같다. 내 마음공부도 마찬가지일 텐데, 내 마음을 정제하고 닦고 또 닦아가며 어제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그게 바로 인생이 아닐까 싶다. 인생 생각보다 뭐 그리 거창할까.
나이가 들었다면 들었다고 할 나이가 되었다. 나이 탓을 하기엔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정말 나이가 든 건가. 내 삶을 조금씩 조금씩 반추하다 보니, 나와 내 삶을 아주 천천히 관조하고 통찰하게 되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런 일상이 의도한 것은 더더욱 아니기에 지극히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서른 중반의 내 인생... 본래부터 확실한 게 있었나. 본래부터 확실한 건 없었다. 아무도 삶의 정답을 가르쳐 준 적도 없고 가르쳐 달라고 한 적도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애초부터 확실한 건 없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두고 뭐가 그리 확실한 게 있다고 있을 거라고 믿으며 스스로를 힘들게 했는지.
이제는 알게 되었다. 확실하건 확실하지 않건 결국 우리 모두는 우리의 인생을 되돌릴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는 것을. 기대한다고 해서 그대로 내 삶이 펼쳐지는 건 마치 무리수와 같다. 그러기에 나는 그저 내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나답게 소비하고 사용하면 될 일이라는 생각에까지 닿았다.
본래부터 확실한 건 없었다.는 결국 애초에 잘못된 선택은 없었다.로 나는 받아들인다. 이 해석에도 어디 정답이 있겠는가. "초아야, 본래 없는 정답을 애써 찾지 말자. 잘하고 있어... 가다가 길이 막혀있으면 다시 돌아가거나 다른 길을 찾으면 되고 이도 저도 사방이 막혀있으면 제자리로 돌아와 다른 루트로 다시 출발하면 되는 거야."
나는 이렇게 즉흥적인 내 글을 통해 내 생각과 감정을 쏟아내고 그 쏟아냄의 몰입감으로 내일 하루를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