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이 없었더라면

by miu

게으름 피우며 바닥에 매트를 깔고 뒹굴뒹굴하며 핸드폰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던 나, 불과 5분 전의 나의 모습이다. 스트레스 탓인 건지, 추워진 날씨 탓인 건지, 내 마음이 허기를 배고픔으로 착각해서인지 나는 오전부터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내 입속으로 넣고 있었다.


벌떡 일어났다. 내가 오전에 먹은 음식과 배부름, 늘어짐 이 모든 걸로 인해 갑자기 내 마음이 우울해지기 시작함을 느끼자마자 한 순간이었다. 알아차렸고 그렇게 나는 벌떡 일어나 매트를 재빠르게 갰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고 쿠션 두 개를 들어 올려 한 켠으로 치워놓았다.


내 마음의 안정을 주는 음악을 켰고 노트북을 켰다. 휴. 조금 살 것 같다. 알아차린 직후 아주 사소한 행위를 하고 나니 기분은 다시 말끔해졌다. 결국 내 마음의 문제이구나.


내 몸상태나 내 체형이 곧 내 마음과 내 마음가짐과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주 내 몸상태를 체크하는 편인데 한 달 새 내 몸의 균형은 확실히 깨져있었고 없던 군살이 붙기 시작했다. 몸이 무거워졌고 그 무게만큼이나 내 기분도 무거워지고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졌다. 무튼 지금 다시 의식하고 알아차렸으니 다시 또 일상을 정열 정비하면 될 일이다.


이틀 후면 나는 이사를 간다. 올해만 벌써 두 번째 이사인데,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내 영혼과 나 자체가 자유롭고 싶은 내 소망이 이사에도 어김없이 반영되나보다. 하루 이틀 쫄딱 밤을 지새울 정도로 내 나름의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 선택의 괴로움이었다. 그 괴로움도 결국 내가 만든 거였으니 사실 그 괴로움 앞에 난 할 말이 없다.


이삿날은 다가오는 화요일로 정했고 이삿짐센터 등등 모든 것은 다 준비가 되었다. 화요일에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마치면 그곳에서 다시 내 삶을 이어나가면 되는 일. 늘 그렇듯 이제는 내게 일어나는 그 모든 것에 담담해졌다. 내가 이렇게 덤덤하고 무심한 사람이었던가.싶다. 그런 차분한 성미가 이제는 내게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점. 10년 전의 내가 보았음 참으로 놀랄 일이다.


이번 나의 선택에서 가장 고려했던 건, 자유로울 것.이었다. 나는 내 스스로가 생각하는 만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점. 나는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구나.를 처절하게 인정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많이 괴로워하고 아파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자, 내 마음은 달라졌고 내 삶도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실 깨달음이란 심오한 것으로 나를 안다는 것 외에도 갖은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은가. 나의 깨달음이란 곧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나는 그렇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어떤 걸 할 때 행복한 사람이지? 어떤 걸 할 때 기분 좋은 사람이지? 난 무슨 색을 좋아하지? 난 어떤 음식을 좋아하지? 나는 어떤 옷 스타일을 좋아하지? 나는 어떤 헤어스타일을 좋아하지? 나는 어떤 공간의 느낌을 좋아하지? 등등... 수천 가지, 수만 가지 질문들을 내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꾸준히 하다 보니 전혀 다른 질문 하나하나가 모여 "나"라는 사람이 정의되었고 나의 취향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나와 내 삶,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가. 모든 것이 달라졌고 감사함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것. 그러므로 우울할 새가 어디 있나.


남의 시선은 일절 고려하지 말자. 다짐한 순간이었고 올곧게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자.다짐했다. 내가 나답게 살아가면서도 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노동의 가치 역시 소홀히 하지 말자.고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었음은 물론 그로 인해 소소히 쌓아가는 내 일상의 낭만에 나는 "행복"이라는 기분을 순간순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행복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며, 나는 행복이란 기분 좋은 상태.로 정의했다. 그러자 은근 하루에도 수십 번의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서른 중반인 나는, 이렇게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를 만나게 되었다.


이번 이사는 오롯이 다른 조건 없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100% 기울임으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래서 두려움보다는 설렘보다는 그저 여느 때처럼 덤덤하게 담담하게 낯선 곳을 맞이할 참이다.


철저하게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일 것. 자연이 가까이 있을 것. 내가 사랑하는 책들을 마음껏 빌려 볼 수 있는 도서관이 가까이 있을 것. 수영장이 가까이 있을 것. 시내에서 삼십 분 정도만 지나도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등등 내가 하면 기분 좋아지는 것들이 준비되어 있는 곳으로 가자. 마음먹었다.


고심 끝에 나는 이사를 가기로 했다. 선택의 괴로움으로 그 새벽에도 불안과 두려움에 떨었던 불과 며칠 전의 나는 누구였니. 어디로 간 건지. 결정을 하고 나니 내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이사 가면 내 체형부터 다시 정비해야겠다. 스트레스에 취약했던 탓인지 먹는 것도 건강하지 못한 것들로 내 위장을 채웠다. 미안하다 내 몸에. 근력운동도 꾸준하게 해 볼 참이며 테니스도 한 번 배워 볼 생각이다. 하다만 프랑스어 공부도 다시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이번 결정을 있게 한 건, 다른 게 아니었다. "내려놓음"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저히 그러지 못했던,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체 하고 싶고 숨고 싶었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내려놓음"을 나는 이제야 오늘에서야 하게 되었다.


때때로 "내려놓음"이 주는 큰 선물을 나는 늘 외면했고 놓치고 살았는데... 반복되는 내 삶의 어지러움에 나는 내가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내 삶도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자명한 사실에 나는 두려워했고 그 두려움을 극복한 끝에 나는 나를 내려놓았다.


허상인 나의 집착과 욕망, 욕심...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엔 내 마음을 그토록 힘들게 했구나. 괴롭게 했구나.를 깨닫게 되자.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까짓 게 참 뭐라고... 그런 것들로 네 인생을 그렇게 힘들게 했는지.하며 말이다. 그 어리석음도 나였음을 그 자리에서 인정했고 나는 나에게 용서를 구했다.


고민한 다는 건, 어떤 선택을 앞두고 있다는 건, 대게 A와 B라는 두 선택지 사이의 선택일 때가 많은데, 이번 나의 선택의 과정에서 깨달은 건, 둘 중 하나를 다 가질 수 없다는 것. 둘 중에 하나를 내려놓지 않으면 그 결정은 희미해지고 결국엔 후회를 남기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두 가지를 다 가지려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그게 바로 집착이구나. 내 욕심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두 개를 다 가지기를 바라는 내 자신이 참 이기적이구나.


이제는 그런 후회들로 시간들로 나와 내 삶을 내 일상을 내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내 스스로 내 시간들을 붙잡았다가 놓았다가 팽팽했다가 느슨했다가를 반복하며 알콩달콩 살아가고 싶었다. 나는 이런 내 다짐과 이번의 내 선택에 아낌없는 지지와 박수를 보낸다.


내려놓음이 있었기에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내려놓음이 있었기에 나는 과거 속의 내.가 아닌 미래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나.로 사는 길을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쫄지 말자. 잘 살아보자. 훨훨 나는 저 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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