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김밥을

by miu

요즘 왜 이리 자꾸 휴대폰 속 앨범을 들여다보는지. 자꾸만 자꾸만 내 지난날을 기억하고 싶고 추억하고 싶어 진다. 스산해진 날씨 탓인 건가. 계절 탓을 해보려 해도 영 앞뒤가 맞지 않아 그 이유는 아닌 것 같다.


추억할 게 있고 기억할 게 있고 그리워할 게 있다는 건 그야말로 축복이자 행복한 사람인 거 아닌가. 나는 그렇게 내 추억 소환에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빠져들어 마음껏 헤엄치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그러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드는 건 덤이다.


파리 자체가 서울의 강남구 하나와 그 크기가 비슷할 정도로 생각보다 시.치고는 프랑스의 수도 치고는 작다. 파리 이곳저곳을 한두 시간 남짓이면 이쪽저쪽 다 걸어 다닐 수 있었으니 파리는 참 촘촘하고 좁은 도시다. 나는 그렇게 파리 사는 동안의 시간 대부분을 뚜벅이로 살았다. 걷고 또 걸었으며 센강이 주는 갖은 표정을 온몸으로 느끼며 환호하며 감동하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때 당시의 오늘을, 하루하루를 난 만끽 하려 애썼다.


낭만이 흘러넘치는 파리에 살아도 내 마음이 한없이 괜스레 우울하고 초조하고 불안할 때가 많았는데, 그 끝에서 결국 내가 느낀 건, "아, 어디에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구나.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한 거구나. 인생에서 한 번은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었던 이 도시 파리에서조차 내 마음이 지옥일 때가 많다는 건, 결국 내 마음의 문제이겠지."


파리에 도착하기 전 집을 구하고 가지 않아서 정착할 집을 구할 때까지 15구 꽁방시옹(Convention)역에 1달간 살았었다. 꽁방시옹 역에서 올라오면 1분 거리 집이었는데 너무 좋았던 동네였다. 파리 현지 주민들이 대부분이었고 가깝게는 Parc, 슈퍼마켓 모노프리, 프랑프리...등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골목골목 낭만 가득한 살기 좋은 동네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집 근처 스타벅스에 이른 아침에 가면 테이크 아웃해가는 멋쟁이 마담, 무슈들이 많았다.


뚜벅이가 될 것 등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파리 중심부 가장 번잡하다고 할 수 있는 3구 arts et metier역 근처로 이사했다. 마레지구라는 특성상 작은 서점들과 상점들이 많고 낭만적인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했다. 집에서 퐁피두는 걸어서 5분-7분 거리, 센강은 빠른 걸음으로 10분이면 닿을 수 있었다. 오뗄 드 빌 시청역과 베아슈베 백화점도 집에서 10분이면 닿았다.

내가 파리 살던 때가 벌써 2-3년 전이라니. 코로나가 오기 조금 직전, 마스크를 쓰기 직전이니 참 운이 좋았다. 서른셋. 파리에 살아보자.고 마음먹었던 내 바람을 주저 없이 선택해 실행했던 나를 그런 나를 다시 알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도 늘 파리 살던 그때를 떠올리기라도 하면 말한다. 난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파리 살던 이야기를 한 편의 책으로도 쓸 수도 있을 만큼 추억이 참 많다. 그곳에서 경험한 그 모든 것에 감사하며 그때의 나의 다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규모도 크고 가장 흔한 슈퍼마켓인 모노프리에서 오후 5-6시쯤 매일 장을 보는 일이 내겐 일상이었는데 그때마다 버터, 모짜렐라 치즈를 사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빼먹지 않았다. 버터와 치즈는 내겐 사랑이니까.


파리지엔느로 살아보니.라는 제목을 달고나니, 다소 생뚱맞게 김밥이 떠올랐다. 그 시절 내가 자주 해 먹던 아니 거의 매일 같이 해 먹던 음식이 김밥이었는데, 그때 찍어놓은 김밥 사진을 보니 어맛, 그때 그랬지.하는 나를 발견했다.


파리에서의 내 김밥은 못생겼다. 모양도 들쭉날쭉 비뚤빼뚤에다 휘뚜루마뚜루 스타일에 제 멋대로 김밥이 분명했다. 요리를 좋아하고 또 나름 한다고 생각되는 내가, 사실 예쁘게 모양을 내려면 왜 못 내겠는가. 그땐 그냥 그런 투박함과 툭하는 츤데레 같은 김밥이 나는 좋았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무심하게 오이 하나 툭, 모차렐라 치즈 슈레드 한 줌 툭, 채 썰어 볶은 당근 한 줌 특, 반으로 한 번 자른 생고추 하나 툭, 모노프리에서 파는 저렴이 소시지 하나 툭. 색의 경계가 무너진 달걀 지란도 한 줌 툭. 무심함과 무던함과 덤덤함과 시크함이 살아있는 내 김밥이 나는 그리 좋았다.


현지 친구들도 내 못난이 김밥이 맛있다고 좋아해줬다. 한 번은 친구 제시카가 직장 동료들과 내 레시피를 공유하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메뉴는 지난 홈파티 때 만들었던 야채튀김. 야채튀김 역시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소박하게 투박하게 내 멋대로 만든 것이었는데, 그런 내 김밥과 야채튀김의 인기를 보며 난 생각했다. "그래, 일이든 사랑이든 요리든 힘이 너무 들어가는 것보단 힘을 쫙 빼고 여유 있게 하는 게 어쩌면 더 환상적인 결과를 가져올지도 몰라."


사진첩을 보다 그 시절 예쁘지 않아 더 예뻤던 내 김밥을 보게 되었고 그 시절 방황하던 나와 생마르탱 운하 앞 야외 테라스에서 늦은 밤 친구들과 치즈에 바게트에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마시며 행복해하던 나를 만나게 되었고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결국 내가 걸어온 길이 정답이 아닌 것이 아니었다고. 지금 이렇게 멀끔하게 멀쩡하게 잘 살아있노라고.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서른에 시작된 나의 방황은 서른 중반이 훌쩍 되어버린 지금까지 근 7년 동안 이어졌다. 그 시간이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다고.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게 되었다고.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었다고. 나는 이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난 김에 이번 주말에 초아표 무심, 츤데레 김밥을 그때 고대로 한 번 만들어 볼까. 당연 맛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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