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법

by miu

나는 유독 뒷모습 사진이 많다. 앞모습보다는 내 뒷모습의 사진을 보는 일이 날 더 설레게 혹은 짙은 감성에 젖게 한다. 색깔로 표현하자면 잿빛 혹은 타는 듯한 붉은 석양과 노을.이랄까. 무튼 나는 내 뒷모습을 통해 나를 관조하고 관찰하고 위로하는 편이다.


내가 한 때 열렬히 사랑했던 내 옛 연인의 뒷모습을 나는 곧잘 카메라에 담곤 했다. 그의 뒷모습. 그 역시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겠지. 그 시절을 회상하면 누군가를 회상하면 그와 함께 했던 그 모든 순간과 사랑의 과정들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사랑이 내게 줄 수 있는 큰 선물이지 않을까.


이사를 앞둔 나는, 짐을 차곡차곡 싸기에 앞서 잠시 숨을 고른다. 생활 요리인인 나는 점심으로 고등어 살에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어 간단하게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는 믹스 커피를 후릅 후릅 마시고 있다. 열어젖힌 창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가을 공기에 나는 유독 왜 그이가 떠올랐을까. 축축해진 가을 공기와 울긋불긋한 단풍 낙엽과 나뭇가지들 사이를 내려다보며 나는 잠시 그 시절, 사랑이 전부였던 그때로 돌아갔다.


원래 사랑에 빠지면 모든 우연이 필연처럼 느껴지는 마법에 걸리게 된다지만 나는 그 마법에 빠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타국에서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 모두 내게는 소중한 추억이자 이따금씩 꺼내보는 인생 앨범이다. 그와 사랑하면서 나는 나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도 보았고 처절한 때로는 괴물 같던 내 모습도 보았다. 사랑에 빠지면 그때부턴 거침없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쓸쓸하면서도 스산한 가을 날씨에 그를 떠올리게 되는 건 아마도 딱 이맘때 그와 함께 한 아름다운 기억들이 많아서 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할 때 두 사람이어서 서로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이고 아름답고 소중한 그 시간들의 총합인 일상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편이며 나는 그런 곳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편이다.


그녀의 누나 아나와 9살 난 조카 밀라, 내게는 한 없이 따뜻했던 그의 부모님. 그의 중학교 친구인 엘레나 부부 등 그로 인해 알게 되었던 많은 인연들이 생각나는 오후다. 그리운 건 나도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내게 잊지 못할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들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선물해준 그들이기에.


그와 함께 거닐 던 공원, 마켓, 다뉴브 강이 내려다보이는 포트리스 성벽, 내 최애 디저트와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 낭만으로 가득했던 야외 테라스에서 브런치를 함께 하던 일, 퇴근하면서는 내가 좋아하는 치즈 케이크를 사 오던 일, 그의 밤 운동을 따라나서던 일, 막스와 나 그이 셋이서 함께 산책하던 일, 그와 함께 드라이브 가던 그 길... 그 모든 것이 아련하면서도 뭉클했던 추억으로 깊이 자리 잡았다. 그런 추억을 선사해준 그에게 고맙다.


잠자기 전엔 침대 맡에서 꼭 이삼십 분은 책을 읽고 자는 습관을 가진 그이를 난 참 많이 사랑했었다. 산책하다 지나가는 인테리어 숍에서 스치듯 말했던 조명을 나 몰래 주문해 놓고 같이 찾으러 가던 일 등... 수없이 많은 장면과 시간들이 떠오른다. 오늘 날씨가 꼭 그때의 가을 날씨 같아서 더욱이 그 감성으로 흠뻑 빠져들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이를 생각하면 미소 지을 수 있는 건, 그가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이는 나보다 6살이 더 많았으니. 삼십 대 후반이던 그이도 지금은 사십 대 초반의 중년의 멋진 사람이 되었겠구나.싶다.


그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문득 생각나겠지. 일전에 읽은 강신주 작가의 글이 생각났다.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일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돌이켜 보면 나 역시 그랬다. 그를 위해 아침저녁을 손수 요리했고 빨래며 집안 정리며 그런 일이 내겐 사랑이었고 행복이었다. 내가 자주 주물러 주던 어깨 마사지 또한 내겐 사랑이었다. 늘 결론은, 사랑은 아름답다는 것. 이제는 안다. 사랑이란 상대가 굳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이해라는 것을. 사랑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것도.


좋아하는 계절을 누군가 물으면 여름이라고 답했던 내가 이제는 주저 없이 겨울이라고 말하는데, 언제부터인지 나는 차가운 계절이 좋아졌다. 차가운 계절이 오면, 그 스산한 공기들이 내 소중한 추억들과 함께 몰려온다. 그럴 때면 그 감성에 흠뻑 빠지는 게 그리도 좋다. 날 기분 좋게 한다.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는 것. 그러니까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라는 것. 사랑과 차가운 계절은 늘 그렇게 내게 교훈을 주고 떠난다.


잠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배웅해주러 가는 공항 주차장에서 내 캐리어를 끄는 그의 뒷모습. 사진을 꺼내보지 않을 수 없었고 그때 당시 온 세상이 그와 나. 우리 둘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황홀감과 낭만을 선사해준 그이가 나는 무탈하게 행복하게 잘 지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로 인해 난, 성숙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의 뒷모습에서 그 시절 열렬히 사랑하고 아파했던 그와 내가 고스란히 찍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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