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향에 취약하다. 얼마 전 생일에 록시땅 바디워시와 크림을 선물 받았다. 향이 취향저격이라 하루 종일 신이 났었다. 택배를 오매불망 기다렸고 도착하자마자 바로 사용했다.
파리 살 땐 길가에 널리고 널린 매장이 록시땅이었는데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 사지 않을 거였기에 들어가는 것조차 내겐 무의미했을 터다. 대신 모노프리에서 파는 질 좋은, 가성비는 더더욱 좋은 샴푸와 바디용품을 골라 사용했다. 프랑스에서 살면서 좋았던 점은 보통 직구로 많이 사용하는 제품을 마트에서 구매해 다양하게 써볼 수 있다는 거였다.
쨌든 유독 향에 취약하고 향으로 사람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나로서는 그동안 향을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 두었다는 것에 대해 조금은 자책 아닌 자책, 내 스스로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선물해 준 윤주 언니에게 "내가 쓰면 기분 좋아지는, 나를 위한 물건에 뭐가 그리 아깝다고 도통 사지 않았는지 언니 선물 받고 돌아보게 됐어. 이런 거야말로 내 일상에 내 삶의 질을 높여주는 물건이자 날 아껴줄 수 있는 선물이 되기도 하는 것을... 내가 참 궁상맞기도 했다면서. 향 하나에 이리 기분 좋아지는 걸! 그런 내게 이걸 다시 일깨워줘서, 선물해줘서 고마워 언니(하트)."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아무렴 그렇다한들 1년 동안의 나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디퓨저를 놓아 집안 곳곳을 향기로 채우는 일, 향이 좋은 바디로션을 샤워 후 바르는 일만은 절대 빼놓지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근 1년 사이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이었다. 윤주 언니의 선물 덕분에 예전의 향기롭던 나를 다시 소환했고 내 집을 향기로 다시 가득 채우리라.다짐했다.
얼마 전 카페에서 익숙한 향기를 맡게 됐다. 지나가는 사람이었을 터인데 향만 기억이 난다. 내 지난 사랑, 엑스가 매일 같이 사용하던 향수가 분명했다. 그 향수 하나에 옛사랑이 떠오르는 일, 아직도 여전한 걸 보니, 난 향에 굉장히 예민하며 향기로 사람을 기억하는 게 맞다. 향을 맡고 있으면 그의 촉감까지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향기와 내 감각은 그 순간 하나가 된다.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길 때면 그의 니트 속에서 촉촉이 부드럽게 스며든 채 은은하게 나던 그의 향수 냄새. 그의 향기. 다른 향수들에게서 지난 사랑들이 생각나는 건 나도 어찌할 수가 없다.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 잡았기에 오히려 미소 지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걸 좋아했던 나.는 과거가 돼 버렸다. 방을 둘러보니 남은 향수는 단 하나. 게다가 바닥이 훤히 보이는 상태이다. 후, 초아야 이건 좀 아니지 않니? 이러지 말자 응?. 하고 말았다. 아무리 사람 자체에서 향기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고는 하나 이것과 그것과는 다른 성질인 게 아닌가. 천천히 나를 다시 보살피자는 생각이 들었음은 어쩌면 당연했다.
내가 기분 좋아지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는 그리 궁상맞지도 아끼지 말자. 작은 거 하나로도 충분히 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을. 사실 이런 것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말 바삐 살았다는 것이 맞는데 그래도 이제는 중간중간 나를 좀 봐가면서 달릴 생각이다.
향 하나에 이리 기분 좋아지는 나인데, 유독 향에 향기에 취약해, 나를 향기로 유혹하는 자들 또한 많았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무뎌져 이런 상태로까지 왔다니... 이제라도 알면 되었고 깨닫게 되었음 그걸로 되었다.
요즘 내 안의 향기는 내 삶이 촘촘해질수록 천천히 퍼져나가 내 안에 스며드는 중이라는 생각이다. 더불어 내 외면의 향기 역시 진하지 않게 과하지 않게 그러나 은은하게 내 안의 향기와 조화로이 어우러져 언제 보아도 기분 좋은, 치명적인 자신만의 향기를 가진 내가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