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

by miu

유효기간이 다 됐고 미련 없이 보내주었다. 하이힐이다. 신발장엔 하이힐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근래 생각해보니 하이힐을 신었던 횟수가 년 기준 0회. 가 되면서 마치 절필 선언처럼 절신(하이힐)이라는 말을 쓸 자격이 생긴 것 같았다. 나는 신발에도 유효기간이 있음을 깨달았다.


더 이상 커리어우먼 스타일의 옷을 입을 일이 없게 되면서 이에 어울리던 직장인스럽던 가방도 높은 하이힐도 신을 이유가 없어졌다. 하이힐을 신지 않으니 되려 젊어진 기분이다. 서른 전까지만 해도 신발장엔 3cm, 5-6cm 미들힐, 9-10cm 하이힐이 가득했다. 하이힐 없이는 안되던 나였는데 지금은 그 하나조차 기념으로라도 남겨두지 않았으니 난 확실히 변했다.


사실 하이힐을 신으면 예쁘다. 키가 커지는 데다 균형을 유지하느라 몸에 긴장을 바짝 주기 때문에 몸매 라인도 확실히 살아난다. 여기에 자신감은 덤이다. 이 정도면 하이힐을 감히 수술 없는 몸매 소생의 일등공신이라 할 만하다.


하이힐을 신지 않을 거야.라는 선언이 아니라 하이힐을 신을 이유가 정말 없어졌다.라는 게 정확한데, 무엇보다 오십 킬로 족히 되는 내 무게를 24시간 지탱해주는 내 두 발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이제는 좀 너를 편하게 해 줘야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한몫했다.


예전엔 힐을 신느라 퉁퉁 부은 발도 발가락 사이 물집도 뒤꿈치의 상처와 피도 하이힐을 신으려면 감내해야 하는 것. 며칠 지나면 상처는 아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피로했다. 당시 내게 하이힐과 피로는 같은 것이었는데 하루 종일 힐을 신고 돌아다녔던 어느 날이었다. 현관에서 하이힐을 벗고 집 안으로 한 발을 내딛자마자, 오 마이갓. 나도 모르게 아, 진짜 살 것 같다.했다. 온몸의 긴장이 바짝 풀리면서 이대로 녹아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분명 장시간의 하이힐로부터 벗어난 해방감이었다. 내게 해방감이란 곧 자유인데 그 기분이 들었으니 그날 이후부터였다. 지금부터는 내 몸이 원하는 대로, 내 몸을 편하게 해주자.생각했다. 발이 편하니 쉽게 지치거나 몸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까지 피곤해지지 않았다.


하이힐은 그 자체가 무게감이 없을 수가 없는데 가벼운 러닝화나 운동화로 바꾸니 내 발에 무리도 없고 깃털만큼 가벼워 어떨 땐 신발을 신지 않은 기분이다. 발이 가벼워지니 에너지도 차올라서 왠지 모르게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에 산뜻함과 온후함마저 찾아온다. 힐을 벗은 후, 벗기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됐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나의 내면이 충만하면 내 몸과 마음을 들여다 보고 집중하면서 내 몸을 아프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요소들을 제거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나에게는 하이힐 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요즘 내 눈엔 운동화만 보인다. 착용감이 일 순위인 것은 물론이다. 하이힐이 가득했던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갔고 이제는 내 몸도 예전 같지는 않아서 몸에 착장 하는 옷이나 신발에 있어서는 더더욱 불편한 것들을 애써 선택하지 않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발이 편하니 덜 예민해진 것 같은 그리고 여유와 자유를 얻게 됐다는 생각이다. 내 생활도 내 태도 이와 같이 편해지고 자유로워지고 가벼워진 것 같아서 신발장의 나의 운동화들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확실히 옷의 스타일링도 수수하면서 깔끔하면서 쌈빡해졌다. 나름 만족스러운 요즘이다.


그렇다고 하이힐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하이힐은 정말 의미 있고 소중한 날,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에만 멋지게 소화하고 싶은 마음이다.


언젠가 그날이 온다면 가운데에 리본 하나만 달린 취향저격의 예쁜 구두를 골라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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