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은 밤, 찐친 은정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초아야, 핸드폰 번호 바꿨어. 저장해죠^^". 씨티은행 동기로 만나 찐친이 된 언니는, 이제는 딸 쌍둥이의 엄마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언니와 대화하면서 그 시절 우리가 자꾸만 생각이 나고 그리운 건 왜 일까. 코로나로 특히나 육아 중인 친구들이나 언니들을 조심스러워 만나지 않고 있는데 파리에서 돌아온 후로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족히 1년은 다 되어가는 듯하다.
그러면서 언니는 남편 직장 때문에 5월에 포항으로 이사 간다는 소식을 전했다. 한 번도 지방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너무 멀고 아무도 없어서 두렵다고 했다. 나는 언니에게 오히려 더 여유롭고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언니를 보러 포항으로 당장 달려가겠다고 전했다.
언니와 나는 퇴근 후 자주 만나 저녁을 함께 먹으며 신입행원의 서러움과 에피소드를 공유하며 공감했고 서로를 위로했었다. 주말에도 언니가 사는 분당으로 놀러 가기도 밤 9시 이후에는 반드시 집에 가야 하는 언니에게 구데렐라라는 별명까지 붙여줬다. 언니의 결혼식에선 부캐를 받았다. 기억하고 추억할 게 너무도 많은데 보지 못해서 아쉽고 많이 그립고 보고 싶다.
문득 생각이 나는 건 신입시절 지점 근무 당시, 나는 압구정 지점, 언니는 도곡중앙지점에 근무하고 있었을 때인데 행낭으로 소소한 선물과 쪽지를 종종 보내와 감동을 받은 적도 여러 번이다. 점심시간엔 둘의 중간인 고터에서 아주 잠깐 만나 후다닥 점심을 먹고 돌아가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이젠 추억이 된 지 오래고 어떨 땐 서른 이후 급격하게 흐르는 세월이 야속하다^^
내가 본점으로 발령 난 후로는 본점 연수라도 오는 날이면 점심은 꼭 나와 함께했다. 나는 요즘 자꾸 그 시절이 그립다. 시절 타령을 하는 것을 보니 나이가 들어감이 확실하다. 그 시절이라 하면,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 나이 25-30 딱 요맘때인데, 유독 그 시절이 그립고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내겐 크고 작은 행복과 사랑과 슬픔과 아픔이 있었던 여러모로 귀한 나의 소녀시절이다.
서른 중반이 된 지금의 성숙함이 그땐 분명 덜했겠지만 그래도 그 시절의 순수함과 밝음이 문득문득 내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아주 많이 차분해졌고 가라앉았고 단단해졌다. 지금도 그 시절 나와 함께 근무했던 친한 언니들은, "우리 초아, 그때는 순수하고 마음이 너무 여려서 걱정이었는데, 지금은 진짜 많이 단단해졌어. 강해졌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내가 요즘 자꾸만 그 시절 그 시절 하는 이유를 잠시 생각해보았다. 나는 지금도 변함없이 새로운 것보다는 오래된 것, 아날로그적 감성을 좋아하는데 모든 면에서 아날로그적 감성이 많이 사라진 듯해서 아쉽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건, 그때의 내 삶의 낭만이 그리워서 인 것 같다. 카톡보다도 이메일이나 편지글로 진심이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을 선호하고 좋아한다.
약속시간엔 절대 늦는 법이 없고 오히려 이삼십 분 먼저 도착해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면 그 시간에 나는 커피숍의 사각 브라운 티슈에 친구나 언니들에게 편지를 써서 건네곤 했다. 그런 작지만 소소한 잔잔한 감성과 감동을 전달하는 것, 내겐 소소하지만 작은 낭만이었다.
얼마 전에 그동안 받아온 편지들을 모아둔 박스를 열어보다, 그 속에서 그즈음 진한 사랑을 했던 옛 남자 친구가 준 편지들을 발견했고 투박한 글씨체 하며 그 시절 추억에 잠시 잠기기도, 그러면서 편지를 내려놓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그땐 그랬지.하고 말았다.
이제는 어느 것 하나 내게 소중하지 않은 추억이란 없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나를 둘러싼 그 모든 것에 감사하고 더욱더 상냥한 사람이 되고 싶고 나의 내면만은 따뜻한 감성으로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꽉꽉 채우고 싶은 내 소망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은정언니와의 대화 끝에 언니, 그때가 참 좋았어.라고 보냈다. 할 말도 너무 많고 언니 보면 반가워서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하니, 부둥켜안고 울자는 언니의 말에 내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렸고 그 시절 나와 함께 추억을 공유하고 쌓은 소중한 내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내 마음이 뭉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