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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u Nov 23. 2022

책을 읽는다는 건 내겐 자유

아침 일찍 일어나 텀블러만 들고 투벅투벅 집 앞 스타벅스에 갔다. 아침 7시 세수도 하지 않았다. 흐트러진 엉클어진 단발머리에 똑딱핀 하나를 꽂으면 조금 단정해진다. 선물 받은 음료 쿠폰을 쓰기로 했다. 달달한 커피로 정신을 맑게 차리고 싶어, 안 먹어본 새로운 메뉴로 직원의 추천을 받았다. "달달한 거 좋아하시나요?" "네 좋아해요." "그럼 흑당 블론드 바닐라 더블 샷 한 번 드셔 보세요." "네 그걸로 벤티 사이즈로 주문할게요."


직원의 추천은 옳았고 오늘의 선택이 좋았다며 흡족해했다. 겨울의 스타벅스를 참 좋아하는데, 추운 겨울 어느 날 특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추위를 잠시 녹이러 들어간 스타벅스의 조명과 온기 분위기, 흘러나오는 캐럴과 재즈 선율은 정확히 내 취향이다. 오늘 아침 스타벅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젖었던 나는, 어지러웠던 내 마음과 생각과 기분을 다시 정렬 했다.


도서관에 가기 전에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읽고 싶은 책들을 미리 검색해보고 자료실 청구기호까지 메모해가는 편인데, 도서관에 없으면 교보에서 주문해야지 했던 책이 있었다. 키키 키린의 책을 오늘 읽을 생각에 나는 행복해졌다. 행복이란게 별 건가. 이렇게 소소하게 사소하게 내가 기쁘고 즐겁고 기분 좋으면 그게 행복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어쩌면 우리는 행복을 하루에도 수십 번은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그걸 우리는 자주 아주 쉽게 놓치고 있을 뿐.


일하러 가기 전 도서관에 들러 지난주 빌린 책 5권도 반납하고 메모해 둔 책 4권을 빌릴 생각이다. 반납과 대출을 교차할 때의 그 기분도 그렇게 깔끔할 수가 없다. 1층 로비 반납 데스크에 반납하고 나면 무언가 확실하게 말끔하게 비워진 느낌에 곧장 2층 책 열람실로 향할 때면 비우고 채움.이라는 공식을 완벽하게 실현하고 있는 듯해서, 그 청량감까지도 나를 기분 좋게 한다.


파리 살던 때 집 근처(걸어서 10분이면 닿았다)조르주 퐁피두 도서관을 한 때 종종 갔었다. 명분은 어학원에서 배운 프렌치 문법과 단어를 복습하겠다. 열심히 한 번 공부해보겠다.였는데 도서관에 들어간 지 채 3시간이 되지 않아 늘 그곳을 유유히 빠져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고는 유유히 프란시스 베이컨 전시가 열리고 있는 그 옆 퐁피두 미술관으로 향했다.


책을 빼놓고 내 인생을 내 삶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책은 내게 각별하다. 책은 날 살렸고 날 일으켜 준 고마운 존재다. 책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평온해지고 덤덤해지는 것은 물론 사람에 대해서도, 삶에 대해서도, 인생에 대해서도 무심해진다. 그 밸런스란, 날 일으켜주는 힘이기도 하다. 책은 날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해주고, 이제껏 전혀 만나보지 못한 세계로 날 이끈다. 책이 주는 그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이란, 마치 광활한 우주 속 덩그러니 나 혼자 유유히 그곳을 유영하고 있는 기분, 즉 새로운 시각과 시선과 통찰을 갖게 한다.


그러니 어찌 책을 읽지 않을 수 있을까. 책을 읽는다는 건 내 자신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다. 하루에 책 반 권이나 1권은 읽는 습관을 가진 나는, 그러고 보면 내 스스로에게 매일 1개의 선물을 빠짐없이 주고 있는 셈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오롯이 날 위한 선물, 내가 나에게 주는 기프트. 1일 1 낭만이라는 말과도 바꿔 쓸 수 있겠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 요즘, 책과 함께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조금 기다려도 지루하지가 않고 오히려 도착 예정시간이 10분 정도라고 나오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10분이나 더 주어졌네."하고 흐뭇해한다. 책이 나와 함께 있으면 나는 이상하리만치 여유로운 사람이 된다.


버스를 타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편이며 위험하지 않는 선에서 길을 걷다가도 읽는 편이다. 조용하게 도서관에 앉아 읽는 것보다 조금은 자연적인 소음이 가미된 바깥 공간인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읽을 때가 더 집중되고 술술 잘 읽힌다. 버스에서 내리면 일하는 시간 시작 전까지 30분이 남는다. 다 의도된 것인데, 그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조용히 페이지를 넘긴다. 혹여 책 읽는데 정신이 팔려 출근 시간을 놓칠까 30분이 되기 5분 전에 알람을 맞춰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난 곧잘 생각한다. 책이 주는 즐거움을 알게 돼서, 책이 주는 즐거움을 이미 알아버린 나라서, 참 감사하다고. 책이 있어 외롭지 않고 고독을 고독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고독을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내가 책과 그 책을 각자의 사색과 통찰로 풀어내 새로운 우주, 세계를 선물해주는 그 시대, 이  시대 모든 작가들을 사랑하는 이유다.


책을 읽는다는 건 내겐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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