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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초아 Sep 24. 2022

나이 들어가며 좋아지는 것들

추운, 차가운 겨울이 좋아졌다는 게 과연 우연일까. 나이가 들면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겨울이 참 좋아졌다. 추위를 타는 편이라 누군가가 어느 계절을 가장 좋아하냐. 물으면 늘 봄, 여름, 가을이라고 대답했었는데 요즘엔 단연 겨울이다. 어느덧 10월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계절은 늘 그렇듯 무심한 듯 선선한, 아침저녁으로는 다소 쌀쌀해졌으며 순간 겨울이 곧 다가왔음을 느끼곤 한다.


어제는 올해 처음으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개인적으로 아메리카노 핫을 주문한다는 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나만의 확실한 징조 혹은 징후 중 하나이다. 나는 이 아메리카노 한잔에도, 아침에 잠시 슈퍼마켓을 다녀오며 느낀 다소 쌀쌀맞은 차가운 공기에도 아, 행복하다. 이공기 그 시절 추억에 잠시 젖으면서도 아, 아련하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함에, 살아있음에 참 감사하다. 고 느끼는 나를 발견한다.


문득 나이가 들어가며, 나이 들어 좋아지는 것들.이라는 말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고 나의 잔상과 상념과 사색을 글로 적고 싶어졌다. 나이 들어 좋아지는 것들... 오히려 나는 스무 살의 초아보다 서른 살의 초아보다, 서른 중반에 접어든 지금의 내가, 지금의 초아가. 만족스럽고 사랑스럽다.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늘 짝꿍처럼 붙어 다니는 외모와는 전혀 상관없는, 온전히 순전히 내적 여유와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으로 나이 들어 좋아지는 것들이 너무도 많으며 그저 그 자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감사해하는 내 태도 또한 대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짝 웃기라도 하면 실선처럼 자글자글한 눈가의 주름이 여간 신경 쓰이는 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피부관리 혹은 보톡스는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나이 들어감의 흔적을 선호하며 앞으로도 그러할진대 가끔은 내 눈가의 주름과 목의 주름과 손의 주름이 여간 예전 같지 않아서 뭐랄까. 아주 잠시 야속하달까. 아쉬울 때가 있다. 이렇게 빠르게 가는 세월일 줄 알았더라면 아주 화끈하게 아주 신나게 놀 것을, 내 인생 소풍처럼, 여행처럼 더 많이 즐겨볼 것을... 하는 마음이 든다. 분명한 건, 지금도 늦지 않았다. 는 점이다.


나는 이제, 화끈하게 내 남은 인생 살아볼텐데 나이 들어 좋아지는 것들...이라 나는 이상하리만치 삼십대 중후반의 내가 왜 이리도 여유 있고 좋은지...  마음의 여유가 확실히 생겼다. 그건 아마도 갖은 경험에서 오는 삶의 경험의 축적이 아닐까 싶다. 치열하게 나. 에 대해 고민한 흔적, 실패와 도전 등 그 모든, 갖은 인생사에서 적어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그들 고유의 분위기와 아우라가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래서인지 그런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끼고 매력을 느낀다.


지금의 나는, 이십 대, 삼십 대 초반의 그 풋풋함과 신선함은 찾아볼 수 없지만, 지금 내 나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수식어들은 아주 자주 듣고 사는 것 같다. 그 또한 그저 감사할 뿐인데, 삼십 대 중후반이 가질 수 있는 분위기들이라 하면... literally, 고유의 분위기, 지적임, 아우라, 고급스러움, 우아함, 매력적, 성숙함, 여유... 등등 꽤 많은 수식어들과 함께 일 수 있다.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자신만의 삶의 철학과 태도 또한 지닐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삶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내면의 농도가 짙은 사람일수록 나는 눈빛이 깊고 맑고 빛이 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가니, 사람을 볼 때 누구를 만나도 외모가 아닌 그 사람의 눈과 눈빛을 보게 된다. 눈빛을 통해 그 사람의 내면이 읽어진달까. 이 정도 나이가 되면 그 사람만의 고유한 분위기와 아우라는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것이 곧 그 사람 자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는 마흔이 되고 혹은 넘어서도 내 인생의 목적이랄까. 이것을 내 스스로의 내적 성장과 수행이라고 정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소풍처럼 여행처럼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음에, 이렇게 건강하게 현재를 지금을 아주 잘 살아가고 있음에, 아침 공기에 햇살에, 창가 너머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조차 그저 감사하다.


여유. 를 가장 우선에 두고 산다. 여유는 모든 면에 해당된다. 인간관계에서도 여유. 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여유. 를 놓지 않으려 노력한다.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며 내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조차 나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저 그 상황을 여유.라는 이름으로 차분하게 대응해 끄끝내 극복해내며 내 삶을, 내 상황을 그저 관조하게 되는 삶의 통찰과 여유를 얻게 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캄캄한 어둠의 터널 속에서 아주 깊게, 지루하게, 내 안의 나와 만나 치열하게 붙고 다독이며 화해해가며 얻은 선물이었다.


그 긴 어둠의 터널을 나오게 되자 어느덧 내 나이는 서른 중반이 되었고 이런 내가 되어있었다. 그러니 이 또한 마치 내 삶의 여정 속에 이미 예정되어있었다는 듯, 나는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되었고 그러자 내 마음이 편해지게 되면서 절로 매 순간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과 여유를 갖게 되었다.


분위기 있다. 고급스럽다. 아우라 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건 나는, 바로 이 여유와 감사하는 마음, 사색, 경험에서 나오는 삶의 통찰과 자신만의 철학과 가치관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요즘의 나는 이십 대 젊은이들의 외모에서의 젊음이 솔직히 고백하건대, 하나도 부럽지 않다. 그저 요즘의 젊은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멋지고 힙하다는 생각이지 그들과 비교하거나 그 젊음이 마냥 부럽다거나 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있었던 당연한 젊음이며 그 또한 한 때였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좋아지는 것들이 이리도 많아서 나는, 오히려 앞으로의 내가 더 기대가 되고 궁금하다. 어떻게 하면 나의 내면을 더 아름답게 가꿀 수 있을까. 나를 빛나는 보석처럼 다듬고 나라는 사람을 완성해 갈 수 있을까. 를 고민하며 산다. 결국 내 생에 끝에서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며 말이다.


독서는 내 삶의 힘이기도 한데, 책에서 얻는 경험 또한 나의 내면을 언제나 풍성하게 가득 채워준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지혜롭다거나 현명하거나 지적인 사람일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은 자신만의 가치관이나 철학이 있을 거라고 믿는 구석이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아우라와 깊이가 있다. 그런 기운이 확실하게 그 사람의 분위기와 아우라를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을 내어 웨이트나 요가나, 필라테스 같은 운동을 하진 않지만 출근할 때 꼭 한시간 반 쯤 일찍 나와서 회사까지 도착했을 때는 8,000보는 되도록 꾸준하게 걷고 있고 퇴근할 때도 두 정거장 전에 미리 내려 집까지 걸어간다. 그러곤 집에 도착하면 최소 18,000보는 거뜬하게 걷게 된다. 몸이 곧 정신이며 여유 또한 건강하고 가벼운 사뿐사뿐한 몸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비록 유산소 운동이지만 날씬한 몸매를 유지시켜주는 일등공신이며 내 정신을 건강하게 해주는 빼놓을 수 없는 내 삶의 일부다.


먹는 것 역시 점심은 아주 잘 챙겨 먹고 저녁은 간단하게 단백질 위주로 요기하고 의도적으로 과식을 경계한다. 내 몸에 대해 스스로 집착하지 않을 만큼, 과하지 않을 만큼, 피곤하지 않을 만큼 아주 적당한 선에서 잘 챙기고 있다.


나이 들어가며 뭐든 적당히.라는 말을 참 많이 생각하게 되었는데, 참 맞는 말 같다. 뭐든 과하지 않으면서도 부족하지도 않게.라는 말이 기가 막히게  통용되고 적용되는데 앞으로도 그 밸런스를 잘 유지하며 살아갈 참이다. 내 삶과 일상에서도, 사랑에서도, 일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이 여유. 하나면 올킬이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온전하게 내 취향껏 살아가다 보니 내 물건 하나하나에 애정이 담기지 않을 수 없고 함부로 소비하지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된다. 물건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취향껏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특유한 아우라. 역시 나는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다. 옷도, 헤어스타일도 그날그날 내 기분에 맞춰 내 취향 껏 입고 내 나름의 멋을 낼 줄 안다. 내가 만족하면 그걸로 되었다.  


이러다 곧 마흔이 눈 깜짝할 새 다가올 것만 같지만, 나는 몇 년 후 내 나이 마흔이 되었다 해도 나는 기꺼이 마흔의 나를 맞이하고 환영할 것이다. 요즘의 나라면, 이런 마음가짐이라면야 나는, 분명 아름답고 깔끔하면서도 쌈빡한, 우아하고 고급스럽고 분위기 있고 매력적이며 섹시하기까지한 중년의 내가, 나중엔 멋지고 세상 힙한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이 들어서도 고급스럽지만 섹시한 할머니라... 내가 진정 바라는 바다! 와이낫.


이런 나도 내 삶도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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