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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u Feb 02. 2023

뚜벅이의 기쁨

며칠 전부터 다이소에서 파는 천 원짜리 꿀땅콩에 맛들이고야 말았다. 요즘 내 최애 간식은 꾸덕꾸덕한 그릭 요거트에 꿀땅콩 1봉지를 몽땅 넣어 먹는 것인데, 오늘 아침에도 한그릇을 비우며, "맛있쪄, 맛있쪄, 한동안 또 이것만 먹겠군...(뭐든 하나 꽂히면 질릴 때까지 먹는 성미가 있다)무튼 행복했고 그러면 되었다.며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부터 곳곳에서 유난히 반가운 안부 연락이 오고, 덕분에 내 마음도 상큼해졌음은 물론이다. 그러다 문득 주변인들에게 내 스스로를 뚜벅이.라고 곧잘 말하곤 하는데,,, 국어사전엔 자기 자동차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 다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있다. 역시나 내가 생각하는 뚜벅이의 뜻이 일치함을 확인 후, 현재 뚜벅이인 내 일상을 고찰해보고 싶어졌다. 차가 있던 때도 있었지만 차를 팔고 운전을 완전하게 하지 않은지 1년 반이 넘어가는 듯하다.


별명이 양길동.일 만큼 난 원래 휘뚜루 마뚜루 휘리릭 어디든 걷거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잘도 왔다간다하는 성미를 가졌다. 발걸음도 빠른 편이라 걷는데, 뚜벅이로 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는 생각이다. 지하철 안에서의 사람들의 모습과 우리네 삶의 잔상을 곧잘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그러면서 내 스스로를 관조하고 반추한다. 버스 안에서조차 걸으면서조차 지하철에서조차 나는 희한하리만치 삶을 노래하고 바라보고 철학적이게 된다.


불편할 때라곤 사실 일도 없다. 아주 가끔 무거운 짐이 있을 때나 혼자 갑자기,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때 드라이브하고 싶을 때 빼고는 내게 차가 필요한 이유는 없다. 차가 없어서, 걸어 다니면서 얻게 되었던 것들이, 깨닫게 된 것들이 너무 많아서인지. 지금의 이 생활이 충분히 만족스럽다.


걷다보니, 가뜩이나 음악을 더 사랑하게 됐고, 좋아하는 책들을 버스 기다리며 지하철 기다리며 짬짬이 읽는 재미에 도착했는지 시간가는 줄 모를 때가 많다. 걷다가도 내 마음이 내키는대로 잠시 공원 벤치에 앉아 쉬어가며 20-30분 정도 책을 읽다 가곤한다. 어떤 날은 좋아하는 노래 한곡을 무한 반복하고선, 이어폰을 야물게 꽂고 무작정 한강시민공원을 달리기도 한다. 지난 가을엔 장대비가 오는 날, 퇴근 후 집에 가는 길에 달렸더니, 지금 내 얼굴에 흐르는 물이 눈물인지, 콧물인지 당최 알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나는 그것마저 재밌고 그런 내가 우스꽝스러워 외려 다소 정신 나간 사람처럼 깔깔대며 더 힘차게 달렸던 기억이 있다.


무튼 난 걷기를 사랑하는 사람임에 틀림없고, 내 발을 땅에 내딛는 그 행위만으로도 본질적이며, 철학적이며, 자연상태가 된다고 믿는다. 제주여행에서는 곧잘 맨발로 earthing. 땅을 사뿐사뿐 밟기를 곧잘 한다. 신발이 아닌 맨발로 걸어보는 일은, 생각보다 놀랍고 진짜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 있다.


걷기.하면 지금보다도 더 완전하게 완벽하게 뚜벅이가 될 수 밖에 없었던 파리 살던 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땐 골목 골목 구석구석 곳곳이 내겐 생경하면서도 새로웠고 아름다웠고 낭만적이었다. 끝없이 방황하고 있는 나를 그렇게 걷기를 통해 내던져보기도 내맡겨보기도 하면서 의도적으로 혹독하게 내 스스로를 걷기.로 내몰았던 때이기도 하다.


복잡하고 어지럽고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불안하고 아슬아슬했던 내 마음을 어떻게든 살리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말마다 찾았던 베르사유가는 길... 비바람이 몰아치던 한 겨울에도 난 그곳을 찾았었다. 일부러 메트로를 타지 않고 버스를 타고 찾아가는 길을 택한 후부터는 온통 낯선 사람들로 둘러싼 버스 안 공기를 들이마시며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날 관조하고 날 비추며 위로하고 공감하고 다독였다.


걷기. 역시 날 일으키게 했다고 할만큼 내겐 귀한 행위다. 걷기는 뭐랄까. 내 생각을 반짝반짝이게 해준달까. 사특한 생각이 들지 않게 날 감싸준달까. 걸을 때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얼어붙은 강을 응시하며 가파지는 내 숨을 고르며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새들의 지저귐에도 말을 걸기도 하고, 걷다보면 어느 것 하나 자연.이지 않은 것이 없다. 결국 우리도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날 자연과 더 가깝게 한다.


가끔 따릉이도 타는데 정신을 더욱이 말똥말똥 차리고 싶을 때, 새벽 6시쯤 따릉이를 찾아 나선다. 40분 정도 그렇게 한강시민공원을 달리고 나면 허벅지에도 약간 열이 오르면서 온몸에 땀도 좀 나면서, 정신이 재정비 될 때가 있다. 아침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그 기분이란... 말해무엇해.가 딱 맞다.


차를 없애고 나니 내 삶은 불편하기는 커녕 더욱 살뜰해지고 알뜰해지고 간소해지고 단출해졌다. 물론 차가 있으면 몸이 편하다고는 하지만,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불편함이 때로는 더 큰 행복으로 더 큰 선물이 된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리도 깨닫게 되는 것들이 많아서야... 이럴때면 확실히 나이 들어가고 있구나.싶다.


나이들어가고 있는 지금의 내가, 누가 뭐래든 나만의 방법으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내가. 깜찍하리만치 사랑스럽다. 외적인 젊음은 누구나 그렇듯 영원할 순 없지만, 내면의 젊음은 이른이 되어도 여든이 되어도 내게 달렸다.고 믿는다. 늘 생각만큼은 젊게. 영민하게. 섹시하게. 깨어있으려 노력하는 이유다.


난 오늘도 어김없이 걷고 있다. 그런 날 관조하고 멜로디, 노랫말 가사 한 마디에도 울고 웃는 감성적인 나의 모습마저도 어떨땐 아름다워 보일때가 있다. 내가 날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날 사랑해주리. 내가 날 보호하지 않으면 누가 날 보호해줄까. 내 자신에게 가장 먼저 칭찬해주고 나이스하게 대해주기 시작한 후부터는 나는 정말이지 내 자신을 찐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뚜벅이의 즐거움.을 난 앞으로도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헛둘헛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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