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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u May 14. 2022

남은 음식 포장 해오는 여자

내 삶의 가치관과 방향이 어느 정도 뚜렷해지기 시작한 후로부터 내게 생긴 변화 중 하나는 먹을거리에 대한 소중함을 진정으로 깨달았다는 점이다. 건강한 먹을거리에, 재료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과식은 가급적 피하게 됐으며 적당히 자주 먹는 게 습관이 됐다.


친구들을 만나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 날이면 어김없이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게 있으니, 그날 먹고 남은 음식이다. 특히나 수육이라든지 족발이라든지, 디저트라든지 이렇게 먹다 남은 음식들은 어김없이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들어갈진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먹다 만 것이니 거부감이라고는 일도 없이 포장을 부탁해 꼭 챙겨오는 편이다.


락앤락통에 가지런히 옮겨 담아 냉장고에 넣는다. 그 다음날 아침이나, 점심이나 저녁으로 다른 음식들과 곁들여 언제든 먹어도 훌륭한 한 끼가 된다. 그런 소소한 알뜰함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음식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는 것에 중독이 되었다는 설명도 맞겠다.   


이제는 내 주변 사람들도 익숙한 모양이다. 남은 음식 꼭 포장해 오는 나는, 남의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 않으며 음식을 챙겨오면 좋은 점들에, 외려 내 마음이 든든해지는 경험을 매번 하곤 한다. 어제 점심엔 식사 후 디저트 카페에서 먹고 남은 스콘 2개(나눠 먹으려 조각조각 잘랐는데 여튼 붙었다면 분명 2개였다)를 포장해 왔다. 늦은 밤 배가 출출해 노트북을 하며 예쁜 플라워 접시에 담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같은 날 저녁엔 신세계 지하 푸트코트에서 이름이 제주흑돼지 야채롤이었던가. 무튼 맛있어보여 긴 롤 두개가 포장되어있는 걸 냉큼 사서 친한 언니와 나눠 먹고선 거의 한 줄 좀 안되게 남아 잘 들고 왔다. 어김없이 통에 가지런히 잘 담아놓고선 오늘 아침 한강시민공원 조깅을 마친 후 아침으로 김밥처럼 썰린 그러나 이따만한 롤 2개와 생오이, 두부 반모로 아주 맛깔난 아침을 먹었다. 어제 싸온 이 롤을 세 번에 나눠 오늘 점심, 저녁까지 먹었으니, 이 얼마나 알뜰하고 좋은 일인가.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러하다. 내가 기쁘고 만족하면 되었다.


나의 이런 태도는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이제는 어느 것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음식도 그런의미에서 마찬가지다. 감사하고 소중하다. 남은 음식을 싸와 야무지게 챙겨 먹는 일은 어쩌면 소소한 작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참 순간순간 알뜰함과 살뜰함과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꼭 남은 음식이 아니더라도 내가 먹는 모든 식재료들이 어떨 땐 숨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릇도 그날 기분에 따라 예쁜 접시에 정갈하게 넘치지 않게 고이 가지런히 담아내는데, 그 모습조차 나는 좋다. 내가 차려낸 지금의 접시위의 상태가 내 마음과도 같은 것 같아서 흡족할 때가 많다. 그래서 그 맛에 예쁜 곳에 예쁘게 담아내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들 외에도 두부 한 모를 먹더라도 전에는 꼭 소금 간을 해 기름에 부쳐내거나 계란옷을 입혀 부쳐내 먹곤했는데 이제는 생두부 한모를 가지런히 잘라 그냥 먹는 것이 훨씬 더 고소하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전혀 몰랐을, 생두부 한 점을 꼭꼭 씹어 의식하고 먹어보니 씹으면 씹을 수록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는 게 아닌가. 오이 역시 마찬가지다. 생오이 조차 심심하지 않고 생오이 본연의 진짜 맛이 이랬구나.를 느끼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내가 느낀 건, 세상을 살아가는 저마다의 생활방식, 태도 등 그 모든 것은 어느 것 하나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생각이 단출하지 않은데 내 생활과 환경이 단출할 리 없다고 믿는 편이며 생각의 사특함을 경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내 생각과 마음상태가 곧 내 방의 상태이며 내가 먹는 것의 상태이며 내 몸의 상태이자 내 말투와 내 목소리와 내 얼굴 빛과 인상의 상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외면보다는 내면을 더욱더 가꾸려, 의식이 늘 깨어있으려 노력한다. 이렇게 내 삶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다보니 뭐랄까. 굉장히 단단해지고 불안과 두려움이 이전과는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결국엔 내 마음의 문제였던가.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릴만큼 내 삶은 아주 많이 변했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며, 앞으로 남은 인생 남과 비교하며 살지 말자, 나는 나대로 온전하며 소중하다. 내 삶을 살다 가자. 삶을 소풍처럼, 축제처럼 즐겨보자. 까짓 거 죽기 밖에 더 하겠어?라는 생각까지 이런 긍정의 생각들과 에너지가 가득할진대, 우울이나 불안이나 두려움이 이따금씩 파도처럼 밀려온다 한들 서너 시간 왔다 어느 새 사라져버리고 만다.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내 스스로 통제 할 수 있다는 것, 부정적인 생각일랑 이제는 쉽게 물리칠 수 있다는 것, 어둠의 터널을 지나니 어느 순간 성장해 있는 내 모습이 어떨 땐 참 대견스럽고 사랑스럽다.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인생은 알 수 없다. 끝까지 가봐야 한다.는 생각은 내 삶에 내 일상에 지친 일과 끝 펌프 시럽 3방울을 듬뿍 넣은 아이스아메리카노와 같다.


내 안의 어둠 속에 헤어나오지 못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그땐 왜 그랬을까. 무엇이 날 그렇게 만들었을까.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는 이미 지나온 그 시간들을 애써 곱씹으려 하지도 자책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때의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되었음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는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지금부터는 오롯이 온전하게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고자 한다. 한 번 뿐인 내 인생, 하루하루 순간순간 그 찰나에 집중하며, 그 찰나를 만끽할 것, 이 또한 변함없을 내 삶의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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