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혼자일 때가 가장 즐겁고 참 재밌다고 느끼게 되었다. 고로 절대 심심하지 않으며 외롭지는 더더욱 않다. 나와 놀 때, 나는 과감하게 멋들어지게 우스꽝스럽게 신나게 재밌게 소녀처럼 아기처럼 해맑게 순수하게 섹시하게 수수하게 갖은 형용사를 다 갖다 대어도 부족할 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나와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혼자 일 때 여도 외롭지 않아야, 외롭지 않을 수 있어야 사랑에 있어서도 상대에게 집착하지 않고 상대와 나를 서로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고 함께여도 더더욱 외롭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결혼해서도 성숙한 결혼생활을 잘 유지해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여전히 있다.
사랑을 할 때의 나는, 혼자일 때가 제일 재미있고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늘 심심하지 않아서 상대를 정말 사랑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 스스로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랑할 땐 그에게 집착한다거나 그에 대한 생각으로 매여 있기보다는 나.에게, 진정한 내 자아에 귀 기울이고 나로서 온전하게 바로 서있으려고 노력한다.
어젯밤 문득 내일은 아침 일찍 아주 오랜만에 남대문 시장을 다녀와야겠다고 계획을 세워놓은 터였다. 아침 일찍 기상 후 어김없이 나만의 의식, 그래 보아야 늘 같은 루틴이긴 하지만,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후 이불정리를 깔끔하게 한 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신 후 잠시 눈을 감고 명상을 하고 호흡하고...
늘 아침을 챙겨 먹어야 하는 나는, 오늘 아침엔 달걀 프라이 2개, 생오이(고추장에 찍어 먹는 걸 좋아한다)1개, 호박 구이, 가지 구이, 오렌지 반 개로 식사를 마쳤다. 식사 후 오늘은 많이 걸을 생각으로 편한 반바지에 가장 편한 운동화, 에코백을 메고 집을 나섰다. 텀블러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30분 정도 걸릴 거리를 나는 어김없이 걷기를 택했다. 그래서 9시에 나선 것인데, 한강시민공원을 따라 난 땅을 밟으며 땅 너도 살아있음을 느끼며 마음은 여유 있게 그러나 걸음만은 빠르게 남대문시장을 향해 힘차게 걸어갔다.
9시에 나선 것이 남대문 시장에 도착하니 딱 10시 50분이었다. 2시간 남짓 걸린 듯하다. 헌데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혼자 걸으면서도 오히려 잡다한 생각 없이 나는 걸으면서 계속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깨어있으려고 했던 것 같다.
남대문시장에 들른 이유는 여름에 신을 샌들을 사기 위해서였다. 지난번 남대문시장에서 25,000원에 산 샌들을 너무 편하게 신었던 기억이 있어서 다시 들른 거였다. 우선 편한 쿠션감에 내가 좋아하는 보헤미안 감성의 샌들 하나를 들어가자마자 골랐다. 이젠 이만 원대 신발을 찾기 힘들다며 사장님 왈, 39,000원짜리를 4천 원 빼서 35,000에 주겠다고 했다. 디자인이나 퀄리티로 보나 나름 저렴하게 아주 잘 샀다는 생각이다. 올여름 기똥차게 잘 신을 내 샌들을 기쁜 마음으로 데려왔다.
꼭 들르는 지하 수입식품 코너에도 들렀다. 오늘은 일제 세숫비누만 사서 돌아왔다. 잠옷도 구경하다 충동구매를 하지 않으려 무척이나 애썼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보다는 사람들이 북적북적대는 전통시장이나 남대문 시장을 좋아하고 집 앞 식자재 마트를 가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고 즐기는 나는, 오늘 역시 북적이는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삶을 관조하고 관찰하고 우리네 일상, 그 모습을 늘 그렇듯 그렇게 살뜰하게 느끼고 돌아왔다.
지하상가를 둘러보다 지난번 엄마와 남대문시장에서 커플로 맞춘 인디핑크 벙거지 모자를 지금껏 아주 잘 쓰고 있는데,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남대문시장 곳곳 잘 둘러보면 보물이 숨어있듯 값싸고 질 좋은 물건들이 즐비하다. 그런 묘미에, 혼자 요리조리 작은 낭만을 발견하는 일에 기분이 좋아지는 성미를 가졌다. 오늘 역시 그런 날이었으며 혼자 있는 시간이, 혼자 돌아다니는 시간이 나는 그 누구와 있을 때보다 온전히 자유롭다고 느낀다.
혼자 있는 시간이란, 내겐 자유다. 그렇게 한참을 둘러보다 광화문 교보까지 걸었고 교보에서 책도 좀 둘러보다가 스스로에게 오늘 일정은 이만하면 되었다.고 가는 길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고한 나에게 맛있는 저녁 밥상을 차렸고 배불리 맛있게 먹었다. 이 모든 것 하나하나가 나는 그저 좋고 내 마음은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하다. 참 신기한 일이라 생각될 만큼 요즘의 나는, 정말 그러하다.
웬만한 일에 동요되는 일이 없고 원하는 바가 이뤄지지 않아도 원하던 소식을 듣지 못했을 때에도 그 사실과 결과에 절대 집착하는 일이 없다. 아, 오케이. 더 나은 기회가 있으려고 그러는 건가 보구나! 결국 모든 것은 잘 되게 되어있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이런 태도와 알아차림의 결과가 아닌 듯싶다.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는 주말이면 친한 친구들을 만나느라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많이 보냈던 시간이 내게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고백하건대, 그러한 시간들보다는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는 일, 참 나를 발견하는 일, 알아차리는 일, 책을 읽는 일, 걷는 일 등이 내게 훨씬 의미 있고 소중하고 귀하다.
혼자여도 전혀 외롭지 않은, 심심하지 않은 나는, 어떻게 하면 내 내면을 내가 생각하는 소중한 내 삶의 가치들과 경험들로 꽉꽉 채워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시간을 보낸다. 고로 나와 노는 일이 얼마나 재미나는지 신이 나는지 즐거운지 평온한지 평안한 지 순수한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혼자서도 아주 잘 노는 여자라고 말할 수 있다면, 분명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여자임이 틀림없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