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없이 산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고로 유행을 모른다.가 맞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한창 멋 부리기 시작할 때였던 대학교 1학년 때부터도 나는 그냥 내게 맞게,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나만의 색깔을 찾으려고 했다. 내가 입었을 때 얼굴이 확 사는, 날 세련돼 보이게 하는 스타일을 추구했었다.
나는 그 흔한 밴스나 컨버스도 없다. 한 번은 매장에 들러 신어보니 내 발에는 영 편하지 않았다. 흔하기도 했고 비비드한 컬러감으로 화사한 밴스나 컨버스가 내게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지금도 가끔 젊은 친구들, 혹은 내 또래들이 신고 있는 걸 보면 참 쌈빡하니 예쁘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키나 뉴발도 내 눈에 예뻐야지 유행하는 아이템이라고 해서 덥석 사지 않는다.
현재 잘 신고 있는 러닝화도 4년 전 제주도 abc마트에서 29,000원에 득템 한 것인데, 화이트 베이스 톤에 비비드한 핑크로 나이키 로고가 박혀있다. 그걸 신고 잘도 달리고 걷는다. 내 눈에 예쁘고 내게 잘 어울리고 없어 보이지 않으면 나는 장땡이다. 최고다.라고 생각한다.
남대문 시장이나 길을 가다 어느 곳이든 내 마음에 들면, 게다가 가격까지 합리적이면 곧잘 사는 이유이다. 물건을 사는 철저한 기준은 바로 나.와 잘 어울리느냐이다. 깔끔하게 정리된 내 신발장은 꽤 단출하다. 운동화 4켤레, 여름 샌들 2켤레, 에스파드류 1켤레, 동네 나갈 때 신는 슬리퍼가 전부다. 이 마저도 나는 부족하다고 적다고 느끼지 않아 큰일이다.
옷도 빈티지에 내가 입었을 때 스스로가 힙하다고 어맛, 이것은 내꺼야! 널 데리고 갈게.하는 것들만 데려오며 타이트하게 내 몸에 핏 되는 옷들보다도 조금은 루즈한, 어쩔 땐 일부러 L사이즈를 산다. 여름 샌들도 보헤미안 풍의 자연스러운 멋이 있는 히피스러운 느낌을 좋아한다.
내 취향이 확실하다는 건 장점이 많은 것 같다. 내 취향이 확실하다는 건 내 스타일이 있다는 말과도 같다. 이전보다 지금의 나는 내 헤어 스타일과 옷, 신발, 가방까지 전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풍, 그리고 입었을 때 나를 환하게 하고 내게 밝은 에너지를 내뿜어주는 것들로 치장한다. 치장한다는 것이 거창한 의미가 아니고 나만의 스타일로 과하지 않게, 절제하는 듯 자신을 가꾼다는 의미이다. 이 또한 내 사랑의, 자기 사랑의 방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내 하루, 내 일상, 내 삶에 있어서 내 사랑을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나눠준다. 며칠 전 옷을 다시 한번 개어내면서 지난 나를 돌이켜보니, 스무 살 시절부터도 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잇템이라든지 명품이라든지 브랜드의 옷을 일부러 산 적이 없으며 가져본 적도 없었다. 보세 옷을 자주 입었고 길 가다가도 마음 내키는 대로 내 마음에 드는 옷들만 골라 입었다.
지금도 여전하다. 고백하건대 명품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혹은 것으로 로고가 크게 박힌 것을 들고 다니는 것이 내 성미에 편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이로 인해 내가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나를 소유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직장인 월급으로 그 금액을 주고 산다는 것이 내겐 사치스러웠으며 과하다고 생각한 탓이 크다. 지금도 여전히 명품을 소유하지 않아서 내가 초라해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가방을 몇만 원에 사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기쁘다. 몇만 원짜리 가방을 몇십만 원짜리 몇 백만 원짜리 가방을 만드는 건, 나의 겉모습이 아니라 나의 내면이라고 생각하는 탓이 크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같이 일하던 동료 언니가 그때 당시 450만 원짜리 명품백을 구매했다고 했다. 우리들의 가방을 한데 탕비실에 놓고 나왔던 적이 있는데, 다른 언니가 내 가방을 보고선 이게 그 가방이냐고 한 적이 있었다.(검은색 가방에다 로고가 크게 박힌 가방이 아니어서 더욱 못 알아봤던 것 같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몇만 원짜리 가방도, 몇 백만 원짜리 가방도 우리는 생각보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 고로 생각보다 그런 소유가 크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옷을 잘 입는다는 건, 옷의 가격과 로고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듯하다. 나는 지금도 가끔 자신만의 색깔로 개성 있게 입는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보게 되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혹은 갖고 있는 유행이라는 것보다는 기가 막힌 컬러감의 매치와 센스로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진정 힙하다고 생각한다.
패션의 도시라는 파리에서조차도 살면서 내가 경험한 파리지엔, 파리지앵들은 생각보다 개성 있지 않았다. 생각보다 남녀 할 것 없이 현재 유행하고 있는 브랜드를 입고 옷도, 옷 스타일도 다 비슷비슷해 보였다. 사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너무 비슷한 모습에, 개성적이기는 커녕 생각보다 획일화 되었다는 느낌에 놀랐던 적이 있다. 내가 파리의 젊은이들보다도 파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영감을 받고 그들의 스타일에 감탄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파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오랜 세월이 묻어나는 본인들의 옷과 물건과, 신발과 액세서리를 기가 막히게 멋스럽게 우아하게 섹시하게 소화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가끔 파리 살던 시절, 그들의 모습을 떠올려보곤 한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나는 누군가가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스타일을 모를 거라는, 패션 센스가 부족할 거라는 생각은 더욱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참 개성 있는 사람일 거라는, 자신만의 분위기와 아우라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곧잘 한다.
며칠 전 마트에서 세일할 때 당근을 왕창 사다 놨는데 냉장고를 열다 갑자기 당근 피클이 만들고 싶었다. 프랑스의 대표 마트 중에 하나인 모노프리에 가면 항상 얇게 채 썰어 만든 당근 피클, 당근 초절임을 팔았고 파리 사람들이 즐겨 찾는 걸 많이 보았다. 당근 피클 역시도 나는 레시피를 굳이 찾지 않는데, 나만의 감으로 나만의 스타일대로 그때의 기억을 살려 유리통 3곳에다 잘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무슨 일에서인지 파리의 그때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러다 유행과 스타일에 대한 고찰로 이어졌으며 급기야 파리에서 자주 먹던 당근 피클까지 만드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무렴 어떤가. 무튼 오히려 유행을 따르지 않아서, 유행을 몰라서, 유행에 관심이 없어서 선택에 있어서 더 편하고 쉽고 자유롭다. 무엇을 선택하든지 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선택하면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 같은 성미에 유행을 잘 몰라서, 명품에 관심이 없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확실한 건 나라는 사람은,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보다는 시장에서 사는 잠옷에, 빈티지 마켓에서, 플리 마켓에서 사는 옷들에, 또 그런 풍경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설레한다는 점이다. 누가 뭐라 한들, 나는 지금처럼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만의 가치들로 내 외면과 내면을 잘 가꾸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