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옷을 사지 않는 여자

by miu

나름 반짝반짝였던 커리어우먼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땐 진짜 나보다는 보여지는 나에 집중했고 또 그래서인지 나답지 않은 모습일 때가 많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헤어스타일에서부터 의상에서부터 액세서리부터 신발, 가방까지... 그땐 또 무언가 프로페셔널한 느낌이랄까. 각잡힌 정장스커트에 깔끔한 블라우스나 셔츠 차림의 출근이 으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시절, 아니 어쩌면 그렇게 주입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직장에서 튀지 않고 무난하게 지내려면 옷차림이든 액세서리든 단정해야하고 최대한 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나는 아주 자주 그런 말들을 주변으로부터 듣곤했다.


어릴 적부터 무엇이든 새 것 보다는 옛 것이 좋았다. 직장생활을 유지하면서 내가 진짜 나다울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던 유일한 시간은 주말이었다. 나는 주말이면 이태원 앤틱가구점에 들러 유럽이나 미국에서 100년은 족히 넘은 고가구들을 신나게 마음껏 구경하는 일, 빈티지 그릇과 접시들을 구경하는 일이 내겐 소소한 여유이자 취미이기도 했다.


어느 덧 서른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좋은 점은 인생이란, 나를 진짜 알아가는,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생각과 그 믿음이 확고해지면서 20대와는, 30대 초반과는 완전히 다른,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자유로워졌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 그 어느때보다도 소녀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남의 시선 따위에 신경쓰는 일일랑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지 오래고 무엇보다 지금의 나는 진짜 나, 참'나'에 오롯이 온전하게 집중하며 매 순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3년 전부터다. 이 시점은 내가 내 존재 자체만으로도 온전하다. 아름답다. 감사하다.는 마음을 깨닫고 의식하고 늘 깨어있으려 인지한 시점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내가 살고싶은, 가고 싶은 삶의 방향과 삶의 철학과 가치관이 명료해지면서 내 삶은 간결하게, 단출하게, 소박하되 낭만적이게, 깔끔하게 내 스스로의 삶이 이제는 아름답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만큼 변했고 이제는 그 삶의 패턴이 편안하게 자리잡았다.


나는 더 이상 새 옷을 사지 않는다. 옷이든 물건이든 빈티지스러운 옛 물건에 흠뻑 빠지는 개인적 취향과 성미를 가진 나는, 3년 전부터 새 옷을 사지 않는다. 내 스스로도 놀라운 건, 이제는 어느 옷가게 매장을 가도 전혀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점인데, 분명 헌 옷이지만 그렇다고해서 결코 초라하지 않은, 단 한장뿐인,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낭만이 깃들어 있는 빈티지 옷이 주는 매력에 완전히 적응한 탓이 크다.


개인적인 취향과 생각으로는 요즘 옷보다는 옛날 옷들이 훨씬 예쁘고 정교하고 멋지다. 광장시장 빈티지 상가2층에 시간이 날 때면 가끔 출몰하기도 하고 매의 눈으로 옷들을 스캔한 후 나에게 어울릴만한 것들로만 엄선해 애정가득 담아 에코백에 담아온다.


어떤 것들은 퀄리티도 완전 새 것 같은데다 스타일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완전 내스타일의 옷들을 찾기라도하면 마치 보물을 찾았듯 득템했다는 생각에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부르고 뿌듯한지... 오천원이나 만 원에 단 하나뿐인 디자인의 옷을 살 수 있다는 것 역시 빈티지의 매력이다. 똑같거나 비슷한 디자인의 옷과 가방, 신발들에 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나로서는 어딜 가도 찾아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옷이 주는 그 깜찍함이 그저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잘 들여다보면 이따금씩 인터넷 빈티지옷 사이트에서 90%세일을 할 때가 있는데 그럴때 내 스타일의, 내게 가장 잘 어울릴만한, 내 취향의 옷들을 가득 담아 주문한다. 그렇게 주문해도 보통 새 옷 한 장 값보다 더 싸다. 이러니 내 성미상 어찌 새 옷을 사는데 흥미를 느끼겠나. 혼잣 말을 하곤 한다.


올 여름에 입을 옷이 꽤 생겼는데 전부 올해 초 90% 세일 당시 장 당 1200원에 산 아이템들이 대부분이다. 새 것 같으며 멋스러워 애정 가득담아 깨끗이 빨아 탈탈 널은 후 햇볕에 빳빳하게 바삭하게 바짝 말린 후 사랑을 담아 고이 접어 색깔별로 서랍장에 차곡차곡 쌓는다. 이때만큼은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된다. 고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내 옷들을 보고 있노라면 기쁨과 행복감이 일순간 밀려오는 놀라운 경험을 나는 이렇게 아주 자주 한다.


그렇다고 함부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것의 가격이 싸든 비싸든 내 기준은 나름 철저한 편이다. 실용적일 것, 필요한 것일 것, 내가 입고 싶은 것일 것. 내 취향의 것일 것, 내가 60대 70대 할머니가 되어서도 멋스러울 옷일 것.이다. 그렇게 신중하게 생각하다보니 내 옷에 대한 애정이 가득할 수 밖에 없다. 이제 나는 내 옷들에게 말을 걸기도, 나와 늙어서도 함께하자며 사랑을 보내기도, 깨끗하게 정갈하게 살뜰하게 대한다.


끌리셰하지만 명품만 입으면 무엇할까. 우선은 나라는 사람 자체가. 내가 명품이어야지.라는 생각이다. 빈티지 옷을 입고 내가 겪는 재미있는 경험은, 아무도 이 옷이 빈티지인 걸 모를때가 많다는 점이다. 친구들을 만나도 내가 먼저 말하지 않으면 빈티지인지 친구들은 모른다. 그것도 심지어 이 스커트 하나에 1200원, 니트 가디건 하나에 2000원 주고 샀다고 하면 다들 입이 떡 벌어진다. 그럴때면 나는 마치 내가 아주 큰 일을 해낸듯 내 알뜰함과 살뜰함에 뿌듯해하기 일쑤다.


아주 중요한 자리이거나 공식적인 자리가 있을 때도 나는 어김없이 빈티지 옷들을 입고 나가는데 사람들이 나의 옷차림이 세련됐다고 혹은 예쁘다는 말을 할 때면 마치 천원짜리 옷을 십만원 짜리 옷으로 만들어버리는 마법을 부린 듯, 나는 이런 쪽으로 재주가 있는 게 틀림없다며 속으로 자화자찬을 한 적도 여러 번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빈티지 옷이라 하더라도 화려한 꽃무늬나 장식이 달린 혹은 색감이 화려한 옷들은 선호하지 않으며 심플하고 색도 화이트나 베이지류의 내 나이에 맞게 내 취향에 맞게 단조로우면서 멋스러움을 잃지 않은 옷들을 나만의 기준으로 엄격하게 고르고 사다보니 어쩌면 그런 마법의 효과가 일어나는 건지도모르겠다.


살면서 점점 느끼는 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게 되는 그 순간부터 내 스스로의 삶이 보다 선명해지고 내 스스로가 내 삶과 친해지고 가까워지고 자유로워 진다는 생각이다.


지금 내 옷장과 서랍에 있는 옷들은 한 눈에 보아도 몇 장인지 셀 수 있을 만큼의 가짓수인 것은 물론 색깔별로 잘 정리도 되어있다. 이렇게 되면 내게 꼭 필요하고 내가 좋아하는 옷들만 남게 되기 때문에 함부로 옷을 사는 일이 없으며 새 옷을 사는 일이 더더욱 없게 된다.


확실한 건 지금 내 옷장의 옷들은 내가 머리가 하얗게 쇤 할머니가 되어서도 지금과 같이 나를 멋지게, 나만의 색깔과 향기와 취향과 개성을 가진 아름다운 할머니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내 믿음은 확고하다.


어제 광화문에서 혜연언니와 점심을 먹은 후 시간이 좀 생겨 아주 오랜만에 광장시장까지 걸어갔고 빈티지 상가에 다녀왔다. 내 취향의 아주 유니크한 여름 원피스 2벌과 화이트 면소재 상의 하나를 3만 원에 사왔다.


내가 입는 옷이 몇 천원이건 만 원짜리 옷이건 그게 무엇이 중요할까. 내가 입었을 때 그 이상의 옷으로, 명품옷으로 만들면 그게 바로 멋진 사람이 아닐까.하는 내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내면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고 나만의 분위기와 아우라있는 사람이 되자.는 내 삶의 철학이 이렇게 내 일상 곳곳에, 옷에까지도 알뜰 살뜰하게 적용되는 삶을 느끼고 있노라면 이제는 내가 진정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구나.라며 내 스스로에게 무한한 사랑을 가득담아 보낸다.


결국 모든 것은 다 내 마음에 있다.는 말 정말 맞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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