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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u Nov 02. 2022

나의 용도

내 나이 서른여섯. 이제 일곱이 되는구나. 알면서도 신기하게도 매번 깜짝깜짝 놀란다. 나이가 뭐 대수냐.싶지만 서른 중반이 되니 내 바람과는 상관없이 대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 젊음도 확실히 적확한 때가 있긴 있다는 생각이다. 


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를 본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건,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건 스스로에겐 참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알아야 감사할 수 있고 인정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고 포용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험난한 정글 같은 세상에서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란 곧 나를 안다.는 의미와도 같다. 


이제는 나도 나를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것을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삶은 늘 그렇듯, 결코 호락호락하지도 친절하지도 않다. 아직도 대서양이라는 바다 한가운데에 정처 없이 떠있는 배처럼 나는 그리고 내 인생은 여전히 방황 중이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내 자아와 사투를 벌인다. 내 자아란 강력한 것이어서 쉽게 져주거나 물러가지 않는다. 치열한 사투여야만이 결국 그 끝에 내게 깨달음이라는 선물을 주고 쿨하게 떠난다. 나는 이런 흐름이 아직도 적응이 잘 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을 시인한다. 


내 삶의 태도와 가치관이 가끔은 내 행동과 내 이상과 괴리가 벌어질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난 아주 잠시 혹은 꽤 한동안 바다 밑으로 깊숙이 가라앉고 마는데, 돌이켜보면 나의 가치와 나의 용도를 내가 아닌 남과 비교했을 때,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과 기준으로 철저하게 남이 바라보는 나.로 나를 판단할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래도 지금은 이를 바삐 알아차린다는 점에서 이전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다. 


나의 가치. 나의 용도는 나.는 누구인가.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순수하게 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가 핵심이다. 남들에게 하는 친절함과 배려를 내 스스로에게는 과연 얼마만큼 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내 자신에게 친절하고 상냥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나를 한없이 책망하거나 야단한다면 과연 나는 온전할까. 늘 하는 말이라 참 끌리셰하지만,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누가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나.한다. 


오늘 오후 점심시간에 서임 언니(나를 가장 잘 아는 친언니다)와 잠깐 통화하면서, 내 가라앉은 목소리와 고민에 언니는 내게 말했다. 언니의 촌철살인에 나는 충격을 받고야 말았는데 무슨 이야기 끝에 "언니 이야기는 내가 믿는다.라고 했는데 언니는, "초아야, 너는 가끔 너를 못 믿는 것 같아. 아니, 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데 누구를 어떻게 믿겠어.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만 받아들여. 놓을 건 놓아버려. 하나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해. 신중하게 결정하고 내린 선택에 대해서는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네 스스로 책임을 지면 되는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내 마음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듯이 들켜버린 듯했다. 정확했고 언니의 따끔한 객관적인 말 한마디가 날 완전하게 위로했다. 나의 가치는 내가 결정하겠다. 어느 선택이건 그 우선순위는 반드시 내가 될 것. 나다울 것. 나답게 살 수 있는 것일 것.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일일 것일 것. 내 스스로를 속이지 않을 일일 것. 나는 그렇게 나를 자책했다가 다시 달랬다가를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살아내고 있다. 


어쩌면 나는 언니에게 말하기 이전부터 나의 가치와 가치관이 잘 어울릴 수 있는 삶을 나는 선택할 것임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너를 위한 것, 네가 행복해 지기 위해 나는 좋은 선택을 할 것이다. 인생, 늘 이런 거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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