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하는 여자

by miu

보통 자정이 조금 넘어서 잠이 드는 편이긴 한데, 요즘 부쩍 새벽 5시나 늦으면 6시 정도에 절로 눈을 뜬다. 다행인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가뿐 사뿐 개운하다는 것. 더 뭉그적 뭉그적 거릴 것 없이 곧장 침대 밖을 나온다. 청량하게 고양이 세수를 하고 찬 물 한잔으로 정신을 깨운다. 그러곤 명상을 십분에서 십오분 정도 한다. 오늘 아침 명상하면서도 어느 순간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나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 아주 잠시나마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를 경험했다.


명상이라 하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어릴 적 기억나는 아빠의 모습 중에 하나는, 새벽 6시 즈음 홀로 고요히 명상하시던 모습이었다. 그 시절 그때의 아빠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요즘 부쩍 지금의 내 나이였을 그 시절 내 아버지의 삶의 고단함과 삶의 번뇌, 삶의 무게와 책임감이 느껴지고 이해가 되고 공감되는 건 나도 나이가 들어가서일까. 명상은 아버지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의미, 방향을 찾고 아버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자 수행이자 수양이었을 것이다.


그제 아버지와 통화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버지에게 깊이 공감했고 위로했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와 나는 참 통하는 게 많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삶이 풍요롭고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알게 된다고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이 더욱이 와닿는 요즘이다.


나의 요즘의 화두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할 것.이다. '존재'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혔는데, 에크하르트 톨레의 책 영향도 있겠고 지금의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려, 지금이 순간에 내 자체로서 의식하고 존재하고 깨어있으려고 노력한다.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나는 왜 과거에 집착하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실체가 없는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 대해 걱정하며 두려워하며 내 스스로를 한계에 가두고 있는가.라는 물음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내 어둠의 시간 역시 내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는 생각까지. 생각 역시 진짜 내가 아니다. 감정도 내가 아니다.라는 다소 심오하지만 나는 그렇게 내 스스로 묻고 질문하고 답하고 깨닫고 진짜 나로 현존하기 위한 과정에 있다는 설명이 딱 맞겠다.


놀라울 정도로 나는 그 내 깨달음과 긍정의 효과를 경험하고 있다. 이상하리라 만치 나는 불안하거나 걱정이 없어졌는데, 이 모든 게 내가 방심할 때마다 찾아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바로 알아차림으로써 사특한 생각들이 설 자리를 잃게 한다는 것과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데서 온다고 나는 믿게 되었다.


감사일기를 꾸준히 쓰고 있다. 거창한 것은 전혀 아니고 전혀 부담되지 않는, 나만의 가벼운 일기 내지 메모라면 메모일 텐데 소재와 주제는 당연히 내 자유인데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를 반복적으로 써놓기 일쑤다. 의식적으로 그런 감사의 단어와 긍정의 단어들을 쓰고 있다 보면 내 마음 역시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 찬다. 정말 효과 있다. 게다가 꼭 누군가에게 말을 걸듯(누군가는 바로 내 안의 나, 진짜 나, 참 나, 나라는 존재. 일 테다) 나는 다정하고 상냥한 말투로 어조로 나의 하루 일과 내지, 과정, 결과들을 스스럼없이 편하게 적어 내려 간다.


얼마 전, 기대했던 일들이 여러 차례 무산되면서도 내 감사일기에는, 걱정이나 불안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이유는 단순히 정말 불안하거나 걱정하지 않아서 일 텐데, 대신 내 감사일기에는 "오케이. 좋았어. 이게 아니라면 그렇담 도대체 내게 어떤 또 다른 길이 기회가 다가오려고 하는 거지? 아님, 내가 직접 길을 개척해보지 뭐." 등등 긍정적인 에너지로 이뤄진 단어와 문장들이 즐비하다.


오로지 나를 위한 감사일기 이기에 가식은 있을 수 없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다. 6월에는 반드시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질 것이다.등등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까지 나는 적어놓았다. 계속 내가 원하는 대로 그려보았다. 오늘 오전 중 나는 반가운 전화를 받게 되었고 잘 풀리지 않았던 일이 단숨에 해결되었고 곧바로 6월에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기가 막힌 우연이라, 혹은 타이밍이라, 어쩌면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면 그만 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입장에서는 긍정의 효과라는 확신이 든다. 내가 만약 부정적인 결과나 통보 소식에 우울했거나 자책했거나 불안해했거나 그런 류의 실패의 감정들로 며칠을 보냈거나 혹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 과연 지금의 나는 어떤 상태로 머무르고 있었을까. 상황은 나아지지는 않고 나는 진짜 내가 아닌, 생각이 만들어낸 그런 감정들로 날 괴롭히고 있었을 것이다.


부정적인 결과에 나의 반응은 이러했다. 결과에 집중하지도 집착하지도 않았고 그래? 오케이.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렇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지? 지금 현재에 집중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현재 무엇을 해야 하지? 그러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도전했고 연락을 받았다. 길은 달랐지만 내가 그 일을 해야 하는 목적은 같았기에 사실 따지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무엇을 하는지 보다는 어떻게 하는지.가 내게 중요하게 됐다.


나는 나의 이런 알아차림과 지금을 살고 현재에 집중하며 의식하며 깨어있고 살아있으려 하는 내 삶 속 긍정의 태도를, 긍정의 마법이라 칭하고 싶다. 실제로 마법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요즘의 나는 꽤, 자주 내 생각이 현실이 되는, 크고 작은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내가 긍정적으로 직관적으로 나를 관찰하고 내 삶을 관조하니, 또 그렇게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리다 보니 그 상상이 내게 현실로 다가온 순간을 경험하고 있노라면, 이거 뭐지? 와우, 정말 내가 생각한 대로 이뤄진거야? 새롭고 감사의 마음이 절로 생기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 마법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면서 그 마법이 주는 내 삶의 풍요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라도, 절로 습관처럼 자연스레 편안하게 긍정의 에너지를 내 안으로 가득 채우게 된다.


생각과 의식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것과 내 마음과 생각을 늘 의심해 볼 것. 뇌가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우울, 불안, 두려움, 공포, 슬픔, 실망,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의식이라는 진짜 내가. 나타난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나의 내면은 내게 고요와 평온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물론 내 삶에 마법을 가져다준다.


이러니, 이 마법을 알게 된 이상 어찌 마다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침 명상을 하면서도 원하는 바를 그려보고, 감사일기에도 내가 원하는 상상을 글로 적고, 두 손 에너지 가득 모아 소망하면서도 나의 생각이 현실이 된다. 내가 상상한 대로 현실로 창조된다.라고 수시로 의식한다. 어제와 오늘 그 사이. 순식간에 내 상상이 현실이 된 오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기뻐하지도 들뜨지도 않는, 그저 일희일비하지 않고 있다. 지금 내 인생에는, 긍정이라는 마법이 이러한 방식으로 내게 자주 선물을 주고 가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긍정이라는 마법에 대한 내 자신이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훗. 이번엔 나의 어떤 상상이 현실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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