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시장에 갔다가 사온 카레 고로케 5개를 냉동실에 두었는데 오늘 아침, 하나를 꺼내어 실온에 둔 후 가위로 잘라 스테인리스 도시락통에 담았다. 원래는 조금 푸짐하게 이것저것 요리해 도시락을 싸는데 오늘 아침엔 오늘 저녁 거하게 먹을 것을 대비해 간단하게 도시락을 쌌다. 삶은 고구마도 담았다.
요리는 내게 즐거움이자 기쁨이자 행복이고 사랑이다. 요리할 때 가장 기분 좋고 행복하다고 느낀다. 요리를 하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예쁜 접시에 그릇에 담아내는 플레이팅에도 열심히고 그 모든 과정 자체를 즐긴다. 회사원 시절에도 늘 요리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회사를 퇴직하고선 직접 요리하고 스타일링하는 일에 뛰어든 건 어쩌면 참으로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도시락을 싸다 보면 늘 어린 시절 그 새벽 아침, 부엌에서 들리는 도마 소리, 찌개 끓는 소리 등등 엄마가 요리하면서 내는 사부작사부작하는 소리 그 모든 것이 그리워진다. 초등학교 입학한 첫 해에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던 걸로 기억하는데, 보온도시락에 담긴 엄마의 도시락이 왜 그리도 소위 개꿀맛이었는지. 엄마표 수제 동그랑땡, 참치김치 볶음, 계란 옷 입힌 분홍 소시지에, 비엔나 소시지에, 고기볶음, 김, 참치캔, 동그랑땡, 김치, 감자채 볶음, 장조림 고기와 메추리알 몇 개... 그 시절 보온도시락통과 도시락 가방이 새록새록 떠올라 나를 기분 좋게 한다. 무튼 엄마의 도시락과 요리는 내겐 전부 사랑이었다.
본격적으로 도시락을 싸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한 건 스무 살 대학생 때부터이다. 친구들과 학생식당에서도 곧잘 먹었지만, 생각보다 이관 저관 이 강의실 저 강의실 간 이동거리가 꽤 돼서 시간이 타이트하다고 느끼기도 했고 가장 컸던 건 학생식당이 맛이 없어서였다. 그래서 직접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학교 안에 있는 잔디밭에서 산책로 벤치에서 친구들은 김밥 등을 사 올 때 난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도시락통을 달랑달랑 들고 다니는 것도 나는 좋았다. 백팩에 쏙 넣어도 그만이고 대신, 도시락통과 도시락 가방은 늘 예쁜 걸로만 골랐다. 손수건으로 도시락통을 싸서 빈티지하게 연출하기도 하고 음식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직접 담으니 맛도 좋았고 영양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꽤 괜찮은 일이었다.
그 이후에도 도시락을 싸는 건 변함없이 이어졌는데, 분위기가 어느 정도 적응이 될 때쯤이면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도시락을 싸와 즐거운 점심시간을 보냈다. 본점으로 발령이 난 후로는 도시락을 거의 매일같이 싸서 다녔다. 광화문 근처 점심 맛집은 두루 섭렵했을 정도로 바깥 음식도 많이 먹었지만 그래도 내겐 늘 도시락이 먼저였다. 요리를 좋아하는 건 타고나는 건가. 그건 아마도 취향이겠지. 싶지만 내가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즐겁고 말이 잘 통한다.
파리 살 때, 도시락을 싸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이유인즉슨, 돈도 절약할 수 있고 점심은 간단하게 배를 채우는 경우가 많아서 간편한 샌드위치나 바게트에 크림치즈, 버터, 과일 조금만 싸도 충분하다는 설명이었다. 동의했다. 한 번은 친구 제시카가 지난번 내가 요리한 잡채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했다. 외국인 친구들에게 잡채는 정말 맛있나 보다. 친구 파비앙도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이 잡채라니, 오페라역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잡채만 여러 번을 주문한 친구다. 파리 친구들에게 잡채, 불고기, 야채튀김, 김밥을 자세하게 알려줬더니 그 이후로 한동안 한인마트에서 재료를 사서 도시락으로 싸고 다녔다는 후문이다.
아주 간단하지만 김밥과 유부초밥에 정답이 없다 생각하는 바, 김밥과 유부초밥도 내 레시피대로 그날그날 냉장고의 재료에 따라 즉흥적으로 만드는데 맛은 고백하건대 환상적이다. 요리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며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사랑, 맛있으면 그것이 환상의 레시피라고 생각한다.
도시락도 과하게 싸지 않는 편인데, 여러 가지 음식들이 정갈하게 조금씩만 한 곳에 담겨있는 걸 볼 때, 즐거움이 밀려온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방울토마토 몇 개, 바나나 작게 1조각, 블루베리 한 줌이면 충분하며, 김밥이나, 주먹밥, 유부초밥도 몇 개 정도로만 만든다. 샌드위치도 집에 있는 재료들로 탈탈 털어 만드는 게 대부분인데 살림살이와 식비가 굉장히 알뜰해지는 것은 물론 늘 신선한 재료로 냉장고를 채우게 된다는 아주 큰 장점이 있다.
초코 브라우니를 참 좋아하는데 직접 만들기에는 번거롭고 가끔은 인터넷으로 냉동 브라우니를 주문해 냉동실에 두었다가 낱개로 포장해 디저트로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요즘은 납작 한 스테인리스 통을 손수건으로 돌돌 말아 가방에 넣는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도시락을 싸는 일이란, 내겐 번거로운 것이 아니라, 나를 기분 좋게 하는 나를 숨 쉬게 하는, 일이 아니라 꿀맛 같은 휴식과도 같다. 분주하게 몸은 움직이나 내 마음은 충분히 휴식하는 시간이라는 설명이 맞겠다.
잠시 쉬었던 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시 한번 내 안의 나에게 질문해보았다. 너는 간절히 원하는가?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였는가? 간절하고 절박하게 살아본 적이 있던가? 잠시 멈칫했던, 내가 할 때 가장 행복하고 기분 좋은 일, 이란 분명 장보고, 재료를 다듬고 요리하는 일인데, 다시 한번 힘을 내 간절히 원해보자. 고 내 스스로에게 답했다.
잠시 숨을 잘 골랐고 주변에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감을, 그 시작을 알린 차제에 내게 남은 길은 내 길을 성실히 묵묵하게 걷는 일일 지어다. 도행지이성.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이 된다는 장자의 말처럼,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이 될 거라 굳게 믿으며 내 삶을 사랑하며 노래하며 단 한 번뿐인 내 인생, 감사한 마음으로 내 안의 우주를 자유롭게 유영할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