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없이 사는 여자

by miu

최근 이사하면서부터는 TV를 들이지 않았다. 원래부터가 TV를 잘 보지 않기도 하고 TV가 있어도 인간극장, EBS 다큐, 무료 로맨스 영화나 일본의 잔잔한 가족영화를 보는 정도였다. 이사하는 차제에 TV를 정리했고 지금 집에서는 TV 없이 살고 있다. TV가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어색하지 않은 나다.


넷플렉스도 안 본지가 꽤 오래됐고 영상이라고는 구독하는 유튜브 정도이니, 조금은 별 날 수도 있다. TV는 없지만 블루투스로 좋아하는 노래들을 듣고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다. 전혀 심심하지 않다. 집에서는 요리하느라 청소하느라 빨래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데다 내 나름의 살림을 하느라 바쁘다.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곧잘 아무런 계획도 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을지로 같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다소 허름하지만 오랜 전통과 맛을 자랑하는 밥집에 들어가 요기를 하고 이곳저곳 우리네 삶의 흔적들과 풍경을 담으며 걷고 또 걷는다.


이것 자체가 내겐 힐링이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자 기쁨이고 놀이다. 내가 TV 없이 사는 이유는 그저 내 삶의 에너지를 TV라는 곳에 잠시라도 집중하거나 시선을 빼앗기는 것이 여간 미덥지 않아서이다. 원래부터가 TV는 거의 장식용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무의식적으로 TV 리모컨을 들고 전원을 켜는 모습을 보면서 왜 켜는지도 모른 채 하는 행동이라는 생각도 수차례 한 것이 사실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TV를 볼 때면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화면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하는데 꼭 TV라는 것에 홀린 듯한, 의식적이지 않은 내 상태가 나는 괜찮지 않다고 느끼게 됐다.


가령 이런 건데 특히나 TV를 보면서 밥을 먹을 때면,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이 어떤 맛인지, 어떤 식감인지 잘 느끼지 못하면서도, 배가 부름에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더 먹게 될 때가 많았다. TV가 주는 안도와 기쁨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다른 생각으로 나라는 사람은 TV가 없는 편이 더 편하고 안도한다고 생각한 결과다.


눈이 피로해지는 것 역시 이유인데, 시각과 청각을 쉬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 그래야지만이 내 안의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자연스레 주어지고 의식하고 깨어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TV 없이 산다는 게 지금 내 삶의 태도와도 기가 막히게 밸런스가 맞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종일 쉴 때에는 내가 나를 위한 요리를 하면서 사부작사부작 대는 소리, 컴퓨터 키보드를 토닥토닥 치는 소리, 감사일기를 적을 때 종이와 펜의 마찰 소리, 창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짹짹하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빨래 돌아가는 소리, 커피포트의 물이 끓는 소리 등등 내 온몸의 오감 신경과 촉각들이 생생하게 살아나 자기들만의 임무를 다하고 있음을 여실히 오롯이 온전하게 때로는 완전하게 느낄 수 있다. 그 경험과 순간이 내게는 훨씬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느낀다.


개인적으론, TV가 없으니 자리를 차지하지도 않고 그 공간에 내 취향의 인테리어로 지극히 개인적인 나만의 톤으로 나만의 공간을 살필 수 있어서 만들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무엇 무엇은 당연히 있어야 돼. 하는 것들에 대하여, 그것들이 꼭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인가? 없으면 어떤가? 있어야 한다는 기준은 도대체 누가 만드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합리적인 의심이랄까. 밥통 없이 산 지도 꽤 되었는데, 내겐 TV도 밥통과 같은 것이다. 내게 필요하지 않아서 없어도 된다.이고 그 판단을 내리는 기준과 주체는 철저하게 내가 된다.


살림살이가 이리도 단출할 수가 없는 지금 나의 삶은, 내 인생 통틀어 지금이 가장 만족스럽고 좋고 편안하다. 내 삶의 태도와 가치관이 뚜렷해져서이기도 하겠지만 확실하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소유의 가짓수가 적어서, 적어졌다고 해서 내 인생의 행복과 만족감이 줄어드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나는 일상의 행복감과 만족감을 이전과는 다르게 아주 자주 경험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소유하게 된다 혹은 소유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비워내는 편이 훨씬 내 삶을 풍요롭고 윤택하고 정갈하게 만들어준다고 확신하게 됐다. 살림살이가 줄어들자,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필요한 살림만 남겨두자, 내 생각과 마음이 한없이 살뜰해지고 차분해지고 고요해지고 평안해졌다. 진정한 내 삶의 풍요라는 것은 외적인 소유가 아니라 내 안의 나에게서, 알아차림에서, 감사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깨끗하고 군더더기 없는 내 공간을 보는 일이 나를 기분 좋게 한다는 것과 그 속에서 나는 더 깊어지고 성장하고 의식하고 깨어있고 알아차림으로써 지금 이 순간에 나를 있게 한다는 것,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것 자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라는 것 역시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집이라는 공간에 당연히 있어야 된다는 것, 혹은 사야 된다는 것들에 대하여 한 번쯤은 지극히 나의 기준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구 역시 마찬가지인데, 가구의 배치에 있어서도 나는 지극히 내 기준과 취향을 묻고 배치한다. 그러다 보면 개성 있는, 하나뿐인 나만의 공간과 집이 탄생한다. 집도 나다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집은 딱 나답다. 는 생각이다. 전통적인 한국적인 물건을 좋아하는 나는, 요즘 다과상과 개다리소반에 눈독을 들이는 중인데, 신중하게 골라볼 참이다.


TV 없이 사는 나, 충분히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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