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치에 꽂히는 여자

by miu

희한하게 마음에 드는 파우치는 꼭 사야 하는 고약한 성미를 가졌다. 함부로 소비하지 않는 습관을 가진 나로서는 파우치 소비에 있어서만큼은 곧잘 지갑이 무장해제된다.


역시 나도 나인 게, 과감한 파우치 소비라 해봐야 몇만 원도 아니고 내 기준에서는 절대 8천 원을 넘지 않는다. 무튼 내 삶은 쌈빡해졌고 난 확실히 변했다.


내가 발견한 아트박스 한 지점은 2층에 시즌이 한참 지난 파우치들을 한 데 모아 80-90프로 세일을 내내 한다. 원 가격을 보면 너무 비싸 절대 제 가격으로는 구입하지 않을 것이긴 한데, 거기에 세일가를 계산해보면 2천 원, 4천 원, 5천 원 정도이다. 시즌이 좀 지났으면 어떠리. 내 눈에 예쁘고 개성 있고 내 마음에 쏙 들면 그만이지.하며 그렇게 난 몇만 원짜리를 몇 천 원에 행복해하며 종종 사 온다.


파우치의 용도는 순전히 내 마음대로다. 속옷을 담아 두기도 하고 양말을 한데 모아 담아두기도 하고 어떤 것은 필통이 되기도 하고 립스틱을 한데 모아두기도 하고 화장품 파우치로 사용하기도 하고 액세서리를 담아두기도 한다.


내 물건들을 담아 놓는 용도로 쓰기에 무조건 내 마음에 쏙 들어야 하는 것은 물론 실용성도 갖고 있어야 한다. 파우치 그 자체에게도 난 늘 그 쓸모를, 의미를 부여해주는 편이다. 파우치에게도 잘 부탁해.라는 말을 하기도. 요즘 내 물건에 대한 애정이 부쩍 더 늘었으며 물건에도 나와 같은 에너지와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내가. 새삼 따뜻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요즘 하얀 천으로 된 사이즈가 조금은 큰 에코백을 아주 잘 들고 다니는데 오늘 아침, 그 가방 속에 넣을 오늘의 물건 하나하나들을 꺼내보다 각기 다른 의미와 쓰임으로 구별해 놓은 파우치들의 사진이 갑자기 찍고 싶어졌다. 어쩜 파우치마저도 정갈하니. 혼잣 말이 절로 나왔다. 물건이 주인을 닮는 건지 주인이 물건을 닮는 건지. 내겐 모두 결이 같은 말로 읽힌다.


살림살이가 아주 단출해지고 간소해지면서 나는 내 삶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진다. 매일매일이 새롭고 기대되고 즐겁다. 사실이 그러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거울 속 내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따뜻하고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제 혜연언니와 점심 약속 전에 교보에서 사려던 책을 집어 들다 한 시간 남짓 그 자리에 서서 그 책을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그 이야기를 점심을 먹으며 혜연언니에게 들려주자 언니는, 너 참 팔자 좋다.며 애정 섞인 농을 건넸다. 그러면서 언니는, "초아야 요즘의 너는 모든 걸 해탈한 사람 같아." 라는 말을 해주기도.


나이가 들어도 할머니가 되어서도 소녀이고 싶고 또 소녀 같은 마음으로 때로는 천방지축 말괄량이처럼,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내 안을 들여다보고 내 삶을 대하며 상냥하고 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내 마음은 지옥일 때가 많았는데 어쩌면 그 어둠과 우울도 내 에고가 만들어낸 허상과 가짜의 산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이토록 날 변하게 만들었을까. 너무도 감사하게도 나는 어제보다는 나은 나, 성장하는 나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과 용기를 얻게 됐다.


나는 나를 둘러싼 그 모든 것에 정말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러니 내 안에 불만이나 불안, 두려움 등이 오래 머물 자리가 있을 리 없다. 온다한들 나는 이내 곧 내 감정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애써 내쫓지도 않고 그저 그 감정이 잠시 머물다 가도록 내버려 둔다.


내겐 이 또한 엄청난 변화이자 성장인 셈이다. 파우치에 곧잘 꽂히는 나를 이야기하다, 어느새 내 삶의 통찰과 관조로까지 이어지는 나의 알아차림의 무작위함이 오늘 역시 날 비켜가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은 알아차림을 경험하는 나여서, 지금이라도 깨닫게 될 수 있어서 이마저도 감사하다. 내 삶이 이리도 아름답고 깜찍하고 귀여울 수가. 나라는 우주를, 나라는 세계를 어떻게 하면 지금처럼 잘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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