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여자

by miu

완전하게 운전을 하지 않은 지가 1년 반 정도 되었다. 개인적으론 자동차가 지금 내게 불필요한 것이자 과도한 지출을 하게 하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동차로 인해 매 달 지출되는 비용으로 가령 저축이라든지 혹은 무언가를 배우는 데에 자기 계발을 위한 비용으로 쓰는 것이 훨씬 더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되자 과감하게 차를 팔았다.


원래부터도 지하철과 버스를, 이보다도 걷는 걸 더 좋아하는 내게 자동차가 없다고 해서 크게 내 삶이 달라질 것은 없다는 계산이 앞섰다. 차를 당장 팔아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며칠 내에 파를 팔았고 차를 팔고 나니 어찌나 후련하던지, 자동차 역시 물건이라면 물건이 아니던가. 큰 물건 하나가 없으니 내 몸 역시 깃털처럼 가벼워진 듯 나는 그렇게 또 하나의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운전하는 걸 좋아한다. 내가 스스로 핸들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고 차 안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일, 특히나 봄기운이나 가을 기운이 충만할 때 창문을 내리고 좋아하는 음악 플레이 리스트를 들으며 외곽의 조용한 숲길을 지나 혼자 드라이브하는 걸 나는 꽤나 즐겼고 만끽했었다. 그런 부분이 조금 아쉬운 부분이라면 부분이랄까.


그런데 그런 것도 자주 있던 것은 아니었기에 이마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차를 가지고 다니면 늘 주차가 문제였던 지라 이런 작은 생각조차 하지 않아도 되니 이 또한 자유롭다 느꼈다. 친한 친구들 중에서도 지금은 나만 차가 없는데 요즘은, "운전을 안 하다 보니 운전이 이젠 무섭네. 이러다 나 운전 평생 안 하게 될 것 같기도 해."라고 말한다.


걷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내겐 걷는 것이 운동인데 매일 최소 1시간은 꼭 걸으려고 노력한다. 빠짐없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닌다. 그러니 삶이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보통 걸을 때 빠른 걸음으로 걷는 편이고 내가 머물고 싶은 시선과 풍경이 있으면 속도를 줄이고 아주 천천히 호흡하며 의식하며 걷는다. 걸으면서도 그 순간순간을 만끽하려 노력한다.


새들의 지저귐도 수풀의 바람소리 조차도 잔잔하게 춤추는 한강의 물소리조차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길 사이사이 피어난 들꽃들조차도 내겐 친구고 자연 그 자체다. 까치에게, 참새에게 안녕! 좋은 하루! 말을 걸기도 한다. 그렇게 난 모든 생물의 생명력을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느끼며 걷고 또 걷는다. 바람이 내 온 얼굴과 온몸을 감쌀 땐 잠시 길을 멈추고 눈을 지그시 감고 바람과 함께 호흡하며 내가 살아있음을 온전하게 느낀다.


걷는 게 오랜 습관이라면 습관이고 취향이라면 취향이라는 게 맞는 게 아닐까. 변하지 않는 습관과 취향이라면 걷기가 딱 그러하다. 걸으면 잡념이 사라지고 보통의 생각조차 사라진다. 사특한 생각은 사라지고 내가 지금 내딛고 있는 땅의 촉감에 집중하게 된다. 중요한 한 가지는 앞만 보고 걷지는 않는다는 점인데, 걸으면 머무르는 내 시선도 다양해진다.


도심 속을 걸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같은 목적지라 하더라도 흔한, 익숙한 길보다는 새로운 길로 가보는 걸 좋아하고 골목골목을 걷는 것을 좋아하는 데, 그러다 보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골목길 특유의 감성 가득한 빵집을 발견한다거나 작지만 내 감성의 카페를 발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곤 문득 그곳을 방문하곤 한다. 걷지 않았으면 몰랐을 삶 곳곳의 소소한 낭만들을 찾아다니는 것 역시 걷기의 참맛이자 묘미다.


매일같이 최소 1시간 이상은 걷기 때문에 먹는 것에 비해 살이 찌지 않는데, 난 걷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돈 하나 들지 않으면서 군살과 뱃살이 쉽게 빠지는 건 걷기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걷기로 인한 몸의 가벼움과 상쾌함과 건강함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내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기도 하다.


어제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을 타지 말고 걷자고 마음먹고 대강 머릿속으로 집으로 가는 길을 그리며 걷기 시작했는데 딱 2시간이 걸렸다. 지하철이면 정말 가까운 거리인데 광화문에서 집까지 난 이 길로도 갔다가 저 길로도 갔다가 저 골목길 사이로도 갔다가 하면서 그렇게 2시간을 걸려 집에 도착했다. 집에 거의 다 다랐을 무렵엔 갑자기 배가 너무 고파지는 게 아닌가. 허기진 배를 이끌고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배불리 먹은 것은 물론 배불리 먹었음에도 살이 찌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걷느라 애쓴 내 몸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해주고 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걸으면 발이 피곤해지기 때문에 잠도 꿀잠, 꿀 수면을 하게 된다. 조금 더 걷는 날이면 더 이른 시간에 잠이 드는 것은 물론 아침에 아주 가뿐하게 눈이 떠진다. 꿀잠을 잘 수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상쾌하게, 활기차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내 걷기로 인해 떼가 가득 묻어가는 내 운동화들을 보고 있으면 그때의 시간과 공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 같아서, 색도 바래지면서 만들어지는 빈티지한 감성조차 나는 정겹다.


나는 어떨 때 즐거운지, 기쁜지, 행복한지를 알아차리고 집중하게 되면서 그런 알아차림의 하나하나가 한 데 어우러져 내 삶의 방식과 조화를 이뤄나가고 있는 중이다. 몇 년 전부터 조금씩 그러다 이제는 완전히 비워 낸 지난 내 삶의 불필요한 공간들에 다시 하나하나씩 진짜'나'를, 참'나'를 채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 아침 역시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후, 이부자리를 정리한 후 내가 예뻐라 하는 커피잔에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성시경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들으며 감사일기를 쓰고 있는 나는, 오늘은 또 어떤 일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로 오늘 이 아침의 감사일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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