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하는 거라면, 요리도 잘하고 일가견이 있으며, 예쁜 도시락을 만들어 포장한다거나 스타일링하는데에취미가 있으며 무튼 손으로 하는 건 웬만해선 소질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으로 하는 것 중에 내가 취약하다고 느끼는 딱 하나가 있는데... 바느질이다.
어릴 적부터 단추가 떨어졌거나 꿰맬 일이 있으면 곧장 어머니께 부르릉 달려갔고 그러면 어머니는 요술을 부리듯 그 자리에서 뚝딱 고쳐주셨다. 문득 어린 시절 문득 쨍쨍한 비비드 컬러감의 한복 색깔처럼 화려하면서도 예뻤던 크기는 꽤 컸던, 큰 실과 여러 사이즈의 바늘이 들어있었던 우리 집 전용 어머니의 반짇고리가 떠올랐다.
그렇게 바느질은 영 소질이 없다고 느끼던 내가 지난 주말 바늘과 실을 손에 집에 들었다. 여름 치마의 속치마 옆단들이 확 트여 있어서 편하게 입으려면 옆 단을 밑동까지 미리 꿰매 놓아야겠다 마음먹었던 터였다. 세탁소에 맡기려던 찰나, 어려운 것도 아니고 간단한 건데 그냥 직접 하자. 했고 다이소에서 2,000원짜리 바느짇고리를 사 왔다.
소파에 앉아 세상에 이게 얼마만의 바느질이람. 새삼하고도 참으로 낯선 풍경을 내가 마주하고 있자니, 나는 마치 현모양처가 된 듯, 참한 규슈가 된 듯한 착각에 자세도 폼도 굉장히 참해진 모양새였다. 그렇게 바늘구멍에 검은색 실을 꿰는 일부터 해서 나는 초집중 전략을 유지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한 땀 한 땀 본래의 모양이 딱 흐트러질 않을 정도로만, 입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꿰매 내었고 결론은 매듭까지 잘 지었다.
아주 간단한 바느질이었지만, 바느짇고리도 사놓았겠다 이제는 웬만한 바느질은 집에서 직접 해봐도 좋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별 게 아닌 거 일수도 있지만 어릴 적부터 바느질이란, 당최 내가 잘 못하겠는 일이었는데 이번 차제에 간단하게나마 직접 해내고 나니, 사소하지만 작은 또 하나의 내 한계를 넘은 것. 같았다.
바느질을 한 번 해보니 영 시원치 않아서 그 이후로는 아예 시도조차, 손도 안 댔다는 게 사실 맞다. 이번에 해보고 나니,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을, 정말 별 거 아닌 바느질에서 나는 살면서 이 얼마나 작은 일조차 나 스스로의 한계에 나를 가둬둔 적이 많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속치마 밑단을 잘 메꾸고 나니 내 옷장을 절로 들여다보게 됐다. 혹시나 꿰맬 일이 있는 옷들이 있나. 단추가 달랑달랑 거리는 것이 있나. 하고 말이다. 그러다 몇 달 전 빈티지로 구매한 다소 어두운 톤의 천 원단으로 만들어진 치마가 내 눈에 들어왔다. 너무 마음에 드는 치마였는데 사이즈가 내게 꽤 컸다. 흘러내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조금은 불안한, 그렇다고 세탁소에 맡길 정도인가. 잠시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90프로 세일할 때 1,200원 주고 산 빈티지 치마인데 수선을 맡기려면 수선비로 최소 7천 원 이상은 드는데 그 7,000원이 아까워서라기 보다(사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수준이긴 하다)어차피 사이즈가 내게 너무 큰 거 이 원단을 잘라 다른 용도로 활용해보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가위를 집어 들었다. A라인 스커트에 면적도 넓었고 게다가 내가 이 치마를 고른 이유가 패턴과 색감의 밸런스가 기가 막혔기 때문인데 내 키친에서 쓸 천조각을 만들면 좋겠다 싶었다. 그 패턴을 따라 감각적으로 천을 잘라 내기 시작했다.
와우. 잘라내고 나니 생각보다 정말 괜찮았다. 크다고 그냥 버렸으면 널 어쩔뻔했니. 했다. 총 네 번을 잘라냈고 나는 와이파이 공유기 덮개로 다른 하나는 현재 테이블보로 아주 멋들어지게 사용하고 있다. 나머지 하나는 네 번 접어 가로로 된 키친 서랍 손잡이에 걸어놓았다. 마지막 하나는, 과일이나, 삶은 고구마 등을 담아놓는 소쿠리에 까는 천보 자기로 아주 잘 쓰고 있다.
어제 신당 중앙시장에 갔다가 2,000원에 득템 한 고구마 한 봉지(양이 엄청난데 2,000원이어서 냉큼 사 왔고 맛도 좋아 두 번 놀랐다)를 사 왔는데 삶은 후에 천보 자기를 깔아 담아놓으니 미국 포틀랜드 킨포크 잡지에 나올만한 내가 좋아하는 킨포크 감성의 스타일링이 연출돼 만족스러웠다.
정말 나는 이런 사소하고 지극히 소소한 것에 기쁘고 만족하고 행복해한다. 처음엔 가위로 다소 엉성하게 잘라냈던 부분은 바느질로 꿰매어 매끄럽게 만들어줬으며 완벽하지 않게, 빈틈 있게 일부러 삐뚤빼뚤의 선 역시 자연스레 놔두었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해하니 하루하루 매 순간이 아름답고 풍요롭다. 그러다 보니 내 일상, 삶 하나하나 그 모두가 다 의미 있게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은 물론 내 삶 역시 굉장히 담백해지고 단출해지고 쌈빡해졌다. 나는 지금의 내 삶이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조금 전 나를 위한 오늘의 아침 식탁을 차리다, 내가 손수 리사이클링 천 보자기에 놓인 고구마 2개를 집어 들다, 지금의 내 삶의 태도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들을 떠올려 보았고 그러다 그 끝은 내 삶은 아름답다. 가 되었다.
오늘 점심엔 광화문에서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는데 친구 줄 고구마 몇 개를 나만의 스타일링으로 예쁘게 고이 포장해 가져다줘야겠다.
창 밖에 비치는 아침 햇살을 마주해 포옹하며, 그 너머로 이따금씩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들을 듣고 있자니, 난 행복한 사람. 이런 하루가 선사되었음에도 감사함을 전했다. 같은 일상이어도 내 기분은, 늘 새롭고 하루하루가 기대되고 설레다. 오늘은 또 어떤 하루가 내게 펼쳐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