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이 굵고 포인트가 되는 반지에 푹 빠지는 성미와 취향을 갖고 있다. 다른 액세서리는 웬만하면 하지 않는데 빼놓지 않고 챙기는 것이 바로 반지다.
반지는 내겐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고3 수능이 끝난 후 어머니께서는 오닉스 검은색 하트 모양의 금반지와 금목걸이에 의미를 담아 선물해주셨다. 대학교 입학한 이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 어린 사촌동생과 놀아주다 어디론가 휙 빠져 떨어졌는데 찾을 수 없었고 굉장히 슬퍼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도 어머니는 어머니식 의미를 담아 세 차례 금반지와 금목걸이를 선물로 주셨다. 자연스레 그러나 과하지 않게 어머니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듬뿍 주셨던 이런 어머니의 영향 덕분인지 나는 곧잘 내 스스로에게도 크고 작은 이벤트를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가며 해주곤 한다.
파리 살던 시절 집 근처 마켓에서 금요일이면 천막을 치고 아프리카 빈티지 반지와 목걸이, 프렌치 빈티지 반지와 액세서리를 가지런히 정열해 팔던 흑인 마담이 있었다. 자주 들르곤 했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서 고민 고민하다 돌아왔던 적이 여러 번이다. 워낙 빈티지 반지를 좋아하는 나인데, 그곳에서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짙은 파란색의 알이 굵은, 크리스털이 섞인 빈티지 반지가 한국에 돌아와서도 두고두고 생각이 날만큼 그냥 살 걸. 아쉬워했다. 최소 40유로였는데 한국 돈으로 5만 원 이상 정도이지만 그때 당시 내겐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들러야지. 한국 가기 전에 들러 여러 개 사가야지. 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해주신 반지 중에 꼭 예물 반지처럼 조금은 화려하고 크리스털처럼 빛나는 화이트골드 반지가 있었는데,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거의 매일 같이 차고 다녔다. 작지만 색이 있는 큐빅이 들어가 있는 실반지들과 여러 반지들을 레이어드 해가며 끼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늘 내 양 검지에는 반지들이 껴있다. 반지를 꼈을 때 손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그 무게감과 안정감이 좋고 펜을 들 때에도, 책장을 넘길 때에도, 키보드를 두드릴 때에도 요리칼을 잡을 때에도, 포크를 집을 때에도 등등 나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의미가 담긴 내 반지들의 존재를 느끼고 바라보는 게 좋다.
어머니의 오랜 반지 중에서도 내 마음에 찜해 놓은 것이 있는데 몇 해 전부터 어머니께 미리 귀띔해놓았다.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을 그 반지도 내겐 얼마나 소중할까. 기존에 갖고 있는 반지들도 있고 지나가다 이건 꼭 사야겠다. 싶은 빈티지 반지들을 사는 편인데, 싼 것은 3천 원짜리도 있고 비싼 것은 또 꽤 비싸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반지를 고르는 기준은, 우선은 내 눈에, 내 마음에 확 들 것과 껴보았을 때 내 손과 하나 된 듯 꼭 안기는 것이어야 한다. 사이즈도 물론 맞아야 하겠고.
요즘 주말에 거의 집에 있질 않고 있는 나는, 오늘도 기어코 빈티지 마켓으로 마실을 나갔다 오고야 말았다. 내게 빈티지 마켓을 구경하는 일은 재미가 쏠쏠한 정도가 아니며 숨겨진 보물찾기 놀이터와 같다. 퀄리티가 최상인, 우드에다가 취향저격 만 퍼 센트 문양의 메이드 인 잉글랜드 테이블 매트를 3,000원에 사 왔다. 집에 와서 깨끗하게 다 닦아보니 완전 새것 같다. 우연히 지나가다 들른 천막에서 알이 굵고 키티 얼굴이 박힌 반지가 디자인은 물론 사이즈까지 내 손에 꼭 엥겼는데 3,000원이라는 말에 와우 득템.이라며 냉큼 데리고 왔다. 난 이렇게, 우연히 완전 내 취향저격의 물건들을 발견했는데 게다가 가격까지 저렴하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와우 단 돈 6,000원으로 오늘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다.
이런 소소한 일상과 발견이 날 늘 설레게 한다. 삼십 대 중반이 되고서야 거의 완전하게, 거의 완벽하게 내 취향대로 살고 있는데, 자기 취향대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도 행복한 일이었던가. 그 어느 것 부럽지 않을 정도로 그 순간만큼은 나는 나 스스로에게 귀 기울이고 존중한다. 오늘 키티 큐빅 반지 하나에 나는 행복해했고 감사해했고 즐거워했다. 반지함이 따로 있는데 그곳에 넣어놓고는 각각의 의미와 사연이 있는 내 반지들들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반지는 내 삶 어느 순간의 역사이고 추억이고 기억이고 나만의 스토리가 고스란히 담긴 보물인 것이다.
요즘엔 옷을 나름 수수하게 차분한 톤 위주로 입다 보니, 반지는 자칫 단조롭거나, 밋밋하거나, 심심해 보일 수 있는 내 패션 스타일에 빛이고 포인트다. 그래서 그날그날 입을 내 의상과 밸런스가 잘 맞는 반지들을 그날의 기분과 태도에 따라 엄선해 끼는 편이다. 손에 살이 없기도 하고 반지를 끼면 살이 없는 내 손이 조금 통통해 보인달까. 반지는 그것 하나로 그 사람의 무드와 개성과 센스를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이제는 반지 역시 새것에는 관심이 영, 도통 없다. 무조건 특이하고 유니크한, 하나밖에 없을 반지들에 눈길이 간다. 그래서 내겐 빈티지 반지들을 그냥 지나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반지들을 앞으로도 매일같이 레이어드로도 꼈다가 단독으로도 꼈다가 나이가 들어서도 할머니가 되어서도 아주 잘 껴줄 참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반지를 좋아하는 할머니로 기억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빈티지 시장하면 프랑스가 제일 그립고 그때 아주 오래된 빈티지 물건들을 좀 사 올 걸. 그랬으면 지금 집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잘 썼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서울 시내 곳곳도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왜 이리 적은 금액으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는 것에 기분이 좋아지는 걸까. 득템 하는 기분이 왜 이리 좋을까.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고 추구하는 내가 되었고 나라는 사람은 원래부터가 그런 알뜰함과 살뜰함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람마다 다 취향과 생각과 삶의 방식이 다른 것처럼, 나 역시도 내 취향이 확고한 사람인 것이다. 오늘 산 잉글랜드산 테이블 우드 매트와 키티 큐빅 반지 도합 6,000에 나는 찐 신나고 즐거워했다. 네 스스로가 즐거웠고 만족하면 그걸로 되었다. 고 말하며 몸이 노곤해질 때쯤 집으로 돌아왔다.
인생이 뭐 별거이던가. 삶이 뭐 별거이던가. 맛있는 거 먹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이고, 내 삶을 사랑하고 건강하며 되지. 행복은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은 늘 우리 가슴속에 우리 온몸을 감싸고 있을 뿐, 그걸 꺼내어 향유하는 건 언제나 나의 몫이라는 것과 고로 내게 달렸다. 는 당연한 진리를 나는 또 이렇게 오늘 하루를 살며 온전히 느끼고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