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 아침인데 순간 아찔했다. 어제 분명 일찍이 잠들었건만, 아침에 일어나보니 뜨악 아침 10시가 다 되었다. 이럴수가. 왜 이렇게 늦게 일어난거지? 이 소중한 아침 시간을 으아악. 벌떡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세수를 했다. 어제 정말 피곤했나보구나. 잘했어. 시간도 모르고 푹 잘 잤으면 그걸로 됐어. 나를 진정시키곤 얼굴엔 스킨토너를 톡톡톡톡톡 피부결을 정돈해가며 고루 펴발라 줬다.
어김없이 믹스 커피 한 잔을 탔고 곡물 그래놀라 2개를 아그작 아그작 신중히 씹어가며 노트북을 켰다. 온전하게 쉬는 날이니까 달력에다가도 다이어리에다가도 한 해 마무리 겸 새로운 도전 등등을 정리해나가자고 마음먹었은 터였다. 생각만해도 설레는 이 기분은 무엇.
지나간 건 지나간 것. 과거는 다 잊자.는 성미로 바뀐 내 탓이 크고 앞으로 경험할 새로운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할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시간, 내 감정, 내 태도도 쓰는 순간 이미 과거가 돼 버리는 것처럼.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앞에서 무력하기보다는 붙잡느라 애쓰기보다는 충실하게 때로는 아찔하게 후회없이 쓰다 미련없이 보내주기를 선택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지는 조금 되었다.
아침점심겸 오늘의 메뉴는 감자.로 정했다. 며칠 전부터 갑자기 감자가 먹고 싶어졌던 터였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치즈와 감자, 삼겹살인만큼 감자로 만드는 음식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것은 물론 나만의 레시피 역시 기가 막히다. 무튼 오늘은 심플하게 깔끔하게 흰 고봉밥에 감자볶음을 먹기로 한다.
휘뚜루 마뚜루 기름을 두르고 지글지글 자글자글 볶아냈다. 이 순간 만큼은 나는 엄청난 실력을 가진 셰프가 된 마냥 거만해지곤 한다. 예쁜 접시에 감자볶음을 담아냈다. 나를 위한 상을 차렸고 밥 한 스푼에 감자볶음 한 젓가락을 들어올렸다. 입에 넣는 순간, 뭐랄까. 역시 감자.라는 감탄이 멈추질 않았다. 감자 하나에 이럴 일.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러하다.
감자, 너 이렇게 맛있기니? 너는 대체 왜 이렇게 맛있는 거니?... 대답없는 갑자와의 일방적인 대화는 늘 이런식이다. 감자가 무조건 포슬포슬하게 푹 익어야만 하는 나는, 딱 알맞게 감자를 익혔고 후추도 말끔하게 넣었고 다시다도 섭섭하지 않게 넣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포슬포슬한 뜨끈뜨끈한 감자볶음을 입안에 넣는 순간 나는 행복해졌고 아침에 일어난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순간 순간 행복을 이미 몇 차례나 경험하게 됐다.
어제 넉넉하게 감자를 사두길 참 잘했다는 생각까지. 세상엔 너무 맛있어서 어쩔 줄 모를, 큰 일 날 음식들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개개인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제각기이겠지만서도 내게는 그것이 치즈, 감자, 삼겸살.인 것이다.
파리 살 땐 좋아하는 치즈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듬뿍 먹었었다. 지금 파리에 살지 않아서, 한국에서 돌아오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 중 하나에 치즈도 들어간다. 가격도 한국에서의 치즈 가격에 비하면 굉장히 합리적인데다 독특한 치즈들도 너무 다양해, 골라먹는 재미에, 고민 없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게 치즈였다. 한국에선 버터, 치즈도 파리에 비하면 너무 비싸게 느껴져 자중하는 편이다. 수입하는 우리로선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치즈, 요리 덕후로서는 유제품 가격이 참으로 아쉽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감자 하나에 이렇게 행복을 수시로 느껴서야. 나는 이런 사람인게다.라는 인정과 함께 행복이 별건가.싶다. 둘러보면 온통 행복하고 감사한 일들이 가득한데.라는 생각이 앞서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감자를 먹을 수 있어서 또 이하나에 감사하다고 느낄 수 있어서, 이 감사함에 내 삶을 관조하고 통찰하는 내가 될 수 있어서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감자 볶음 하나에 내 삶을 너무도 당연하게 투영하는 내가 어떨땐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가.싶지만 지금의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곤 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 삶과 내 영혼이 이렇게 한결같이 살뜰해서 순박해서 소박해서 단출해서, 나는 이런 내가 참 마음에 든다. 그저 나다워서. 나름 나답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감자야, 넌 왜 이렇게 맛있는거니? 너 하나에 내가 이렇게 행복한데. 넌 그런 사람이구나. 나도 너를 닮아 그런 사람이 되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