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근처에 도착하니 출근 시간까지 삼십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잠시 카페에 들를까. 공원을 한 바퀴 돌까.하다 결국 코 앞 영화관에 갔다(아바타 상영요일과 시간도 체크할 겸)그렇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슬금슬금 영화관에 도착해 빈 자리에 잠시 앉았다.
집 책장에서 꺼내온 지난 다이어리를 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자연스런 흐름이었달까. 어제 물건 정리를 하던 중 2016년부터 써 오던 다이어리 중 뒤에 삼분의 1 정도가 남은 다이어리를 발견했고 오. 새로 사지 말고 여기에다 마저 쓰면 되겠다! 반가워했다.
그렇게 한 십여분 쭉 읽어 내려갔을까. 그때 그날 그 시간 내 감정 내 다짐 내 슬픔 내 상처 내 기쁨 내 환희 그 모든 것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고 눈물이 질끔 나는 사태를 불러 일으키고야 말았다. 그러다 다이어리 가장 맨 앞에 적어 놓은 나에게 쓰는 편지.를 읽게 됐다.
인상적이었던 건, 나는 다이어리를 쓸 때 빠짐없이 년도와 날짜를 적는다. 어떨땐 시간까지도 기억하고 싶어 적어놓곤 한다. 그런데 이 편지에는 이 때가 2021년이라는 것만 명확하게 알 수 있을 뿐 날짜를 확인할 수 있는 단서는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무슨 뜻이 있었던 건 아닐까.했다. 잠시 심호흡을 골랐다.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됐고 그때의 나.로 돌아가볼 준비가 되었다는 내 마음의 신호와 함께 아주 사뿐하게 읽어 내려갔다.
"Dear, 2021년 초아에게.
초아야. 우선 토닥토닥. 너를 꼭 안아주고 싶다. 긴 터널을 지나 어둠을 지나 다시 발돋움을 하기 위해 천천히 한 걸음씩 전진하는 네가 너무 대견해. 이런저런 크고 작은 일들 속에서 넌 분명 성장했을 거라 믿어.
파리에서 돌아온 이후 이렇게 1년 동안 이곳에서 지낸적이 없었는데 참 사람인생은 정말 모르겠구나.싶네. 현재를 살자. 11월부터 해서 4월까지 지금 당장은 눈앞에 계획들이 있으니까 마무리 잘하고 그 다음부터 천천히 생각해보자. 지난 4개월 동안은 정말 열심히 바쁘게 살았다! 대견해. 칭찬해주고 싶어.
지금 현재 2개월은 아마 하늘에서 너에게 쉼을 주셨나 싶어. 희한하게 3,4월은 다시 여유가 생겼네. 다시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고 네가 계획했던 일들 목표 다시 해내자. 요즘 정말 강한 확신이 들어. 너 뭔가 잘 될 것 같아. 느낌이 진짜 그래.(이걸 읽고 긍정의 웃음이 났다)
계획한 거 잘 해내고 건강관리, 체력관리도 잘 해내보자. 어떻게 해서든 해보자. 2022년 분명 다른 일이 펼쳐질거야. 2022년이 기대된다. 2021년 이 해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너의 삶을 재정비하기 위한 디딤돌의 해로 삼자. 할 수 있는 일은, 체력이 할 수 있는 한 해보자. 그리고 생각해내자.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너란다. 네가 존재하지 않으면 네 삶도 존재하지 않아. 앞으로 네가 어디에서 누굴 만날지. 어떤 삶을 살지 아무도 모르는 거란다. 무엇보다 너를 믿어 초아야. 지리한 4-5년의 우울이라는 긴 터널이 있었지만 다시 일어났잖아. 넌 불행하지 않아. 네 생각이 불행한 거지.
2018년 겨울을 기억하니? 늘 잊지마. 너의 그 고통스러웠던 마음 아팠던 기억들과 시간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히는 거. 아주 잘하고 있는거야. 아주 칭찬해. 너는 아름답고 빛나는 사람이라는 거 잊지 말고 매일매일 어제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나.가 되면서 하루하루 현재의 삶을 잘 살아내자. "초아" 넌 이름도 어쩜 이렇게 예쁘다니?."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읽고 난 직후의 내 기분은 사특한 생각이 모조리 내 머릿속과 몸 속에서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랄까.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이렇게 또 한 번 위로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