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커피

by miu

스페인 마드리드의 새벽 공기가 떠오른다. 마드리드, 세비야,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그곳의 공기를 잊지 않으려 여행 중에도 꼭 새벽에 숙소를 나와 카페에서 빵과 오렌지 주스, 카페 콘 레체(지금까지도 가장 사랑하는 커피이자 스페인에 한 달 동안 머무르는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마셨다)로 아침을 맞았다.


새벽 6시가 되기도 무섭게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어두컴컴한 길을 지나 집에서 5분 거리의 맥도널드에 도착했다. 집 근처에 맥도널드가 있다는 건 내겐 치명적이다. 맥도널드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맥도널드의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구수한 카페라떼를 즐겨 찾는다. 토요일임에도 오전 8시 30분에는 집을 나서야 하는 일정인데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생각났다.


사실 아침 8시 즈음 나갈 때 들렀다 가도 될 일이지만, 지금 당장 이 시간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은 걸 어쩌겠는가. 어두컴컴한,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걷는 그 기분과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하며 혹은 책을 읽으며 마시는 그 시간과 낭만이 주는 즐거움을 나는 알기에, 굳이 새벽 6시에 갔다 와야만 했다.


하아. 휴. 밖을 나오니 차가운 공기가 나를 힘껏 반겼고 그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선명했고 상쾌했다.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 그곳으로 가는 2분 정도는 달렸고 나머지 2분 정도는 가빠진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어갔다. 새벽 공기에 나는 흠뻑 취했다. 본래 계획은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었건만, 토요일 아침 에그 맥머핀(그것도 해시브라운이 꼭 있어야하는 세트)의 유혹을 오늘도 나는 뿌리치지 못했다.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온기로 가득찬 내 양손 온도의 대비.


새벽녘 오고 가는 그 짧은 시간에 나는 문득 스페인 마드리드의 새벽 아침 풍경이 떠올랐다.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여행 중 습관처럼 어디든 새벽 공기를 마시는, 그래서 새벽과 아침 딱 그 사이에 일어나 가볍게 숙소 주변을 산책하는 습관이 있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런 날인데, 내 잠을 깨운 건 마드리드 길거리 쓰레기봉투를 수거하는 청소부들의 부산한 움직임 소리와 트럭의 엔진 소리였다. 그마저도 나는 뭐랄까. 낯선 곳에서의 생명력이 느껴졌달까. 반가웠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 사는 곳 같아서 왠지 모를 친근함과 노동의 숭고함... 갖은 생각들이 날 사로잡았던 기억이 있다.


유럽 대부분의 도시풍경들이 그렇지만, 유럽의 건물들은 대부분 층이 낮다. 그것으로 인한 낭만과 아름다움과 멋과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숙소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던 캄캄한 새벽녘 골목길 또 어쩌다 드문 지나가는 행인의 모습, 골목 사이사이로 보이는 세워진 자전거, 화분, 커튼 등등... 사람이 사는 모습은 어디든 다 똑같구나. 다 같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숙소 주변을 산책하면서는 분명 낮과 밤에 지나간 길이었음에도 새벽이라 또 다르게 느껴져 어머 여기가 거기였구나. 하던 나의 모습. 그러다 이름 모를 로컬 카페에 들어가 카페 콘 레체와 초코칩이 가득 들어간 빵을 주문하던 나의 모습. 알아듣지도 못하는 스페인어가 나오는 현지 아침 뉴스를 그저 눈짐작으로 알아들으려 애쓰던 나의 모습. 스페인 현지 사람들의 아침 풍경을 구경하기도 관찰하기도 하던 그 마저도 새롭고 즐거웠던 기억들. 그 모든 것이 지금도 선명하다.


이 아침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하다 내가 머물던 스페인 곳곳의 도시들이 이리도 그리워질 줄이야. 내 첫 유럽 여행지도 스페인이었고 그곳에서 한 달을 여행했고 그곳이 좋아 그 이후로 한 번 더 방문했던 곳도 스페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내 정서와 찰떡이었던 스페인에서 살지 않고 파리에서 살아봤다는 건 조금 아이러니긴 하다. 파리에서 살아보기로 했던 건 다소 즉흥적이었음을 나는 시인한다.


마흔이 넘어서는 언젠가 장담할 수 없지만 스페인에서 1년 정도 살아보고 싶다. 내가 파리에서 살아보게 될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저 즉흥적으로 휘리릭 짐을 싸서 떠났던 것처럼. 분명 나는 스페인에서 살아보게 되리라. 나만의 주문을 외워본다. 요즘 내가 자주 하는 말, "내 상상은 현실이 될 지어니..."


이 새벽에 나가보는 건 최근엔 오랜만이라 혹여 많이 추울까봐 모자까지 달린 두꺼운 후리스를 목까지 채우고 나섰는데 생각보다 그리 춥지 않았다. 몸은 따뜻한데 얼굴은 냉랭한, 차가운 그 온도의 대비를 나는 좋아한다. 오늘이 딱 그러했고 이 새벽 내가 원하는 것까지(맥모닝 세트)손에 들었으니 토요일 이 아침부터 나만의 낭만을 만끽했다. 나만의 낭만 생각해보면 누가 만들어준 게 아니라, 내가 만든 게 아닌가 이 새벽부터 말이다. 그래서 더욱 좋다. 내가 하면 기분 좋아지는 것들을 나는 몸소, 내 몸을 움직여 했으니 만족스럽다.


새벽공기 한 스푼과 커피 한 잔으로 시작된 나의 기분과 나의 감정과 나의 즐거움으로, 오늘 하루 왠지... 하는 일마다 술술 풀릴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벌써 행복해졌다. 아니어도 괜찮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제 웬만한 일에는 무심한 여자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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