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여자

by miu

어제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한 달 동안 제주도로 여행을 갔던 친한 언니가 곧 돌아온다며 안부를 물은 것이다. 전주로 내려왔다는 내 말에 언니는 많이 놀라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나를 야단했다. 언니는 나이가 나보다 한 참 위이기도 하고 늘 내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언니 중 한 명이다.


"어떻게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갑자기 내려갈 수 있어? 어떻게 그래... 왜 내려갔어?... 곧 돌아가면 바로 만나자고 연락했는데!" (전주 온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나는 웃으며 언니한테 아침부터 야단맞는다며 맞장구쳤다. "서울 올라가려면 언제든 올라갈 수 있잖아요. 지금은 우선 이렇게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날 걱정해주고 생각해주는 언니의 연락 덕분에 내 마음은 금세 따뜻해졌다.


그렇게 언니와의 전화통화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오전에 할 일을 마치고 머리를 단발로 자를까 생각하던 차에 그 근처 미용실에 들렀다. 오랜만의 헤어숍 방문이라, 길러보자 마음먹었건만, 그 지루함 그 경계의 머리 길이를 이번에도 견뎌내지 못하고 자르기로 결심한 차제에 긴 머리에서 단발머리로의 변신이라 실력 있는 디자이너가 정해지길 바라며 잠시 앉아있었다.


즉흥적이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깔끔하게 쌈빡하게 시원시원하게 단발머리로 자를까. 를 생각해왔던 터라. 여유 있었다. 헤어스타일 또한 지금의 내 감정과 기분과 태도와도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하는터라, 지금 내게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결국 머리의 자름, 커트로 나를 이끌었다.


나를 안내한 디자이너는 굉장히 젊어 보였는데 이런 헤어스타일로 잘라달라고 이야기한 후 샴푸 먼저 했다. 자리에 앉아 머리를 자르는데 내 담당 디자이너의 방식이 신선했다. 프로페셔널할 것이라 확신했지만(머리를 맡긴 차제에 그렇게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폼은 영 아니었는데 그 순간 난 그녀를 보며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아뿔싸. 오늘 잘 못 온건가. 이 미용실 말고 다른 데 갔었더라면... 등등 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도 이미 머리는 귀 밑 아래로 잘라져 나갔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늘 내 머리의 운명이 그 디자이너에게 달렸다는 생각, 고로 오늘 내가 선택한 그 미용실과 그 디자이너를 만난 것도 오늘의 인연이었을 거라 생각하는 편인데 무튼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 50% 밖에 완성되지 않은 머리일 거야... 주문을 외우듯 나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눈을 떠보니 그녀는 여전히 엉성한 자세와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은 가위 손놀림으로 내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는데 참 희한했던 것은, 그녀의 엉성한 자세와는 다르게 내 머리는 어느덧 나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스타일로 완성돼 가고 있다는 거였다.


그녀와 나는,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다 그녀 왈 "제 장점이자 단점이에요."라고 했다. 처음엔 불안했지만(사실 아주 많이 불안했었다. 오랜만의 단발머리이기도 했고 잘못 잘라놓은 단발머리를 감당하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흡족해했다. 필요한 말만 하는, 고객에게 덤덤하고 무심한 그녀가 나는 괜찮아 보였다. 고객입장으로서도 귀찮지 않았다.


내 이미지에 맞게 잘 완성되었고 무거웠던 머리가 깃털처럼 가벼워져 내 마음도 덩달아 신이 났다. 상쾌했고 또 상쾌했다. 시원시원한 나.로 돌아온 것 같았다. 지난 부정적인 감정들을 포함해 최근까지도 날 괴롭히던 부정적인 감정들까지 모조리 싹둑 잘린 머리와 함께 사라진 것 같은 기분에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았다. 아니 그러기로 생각했다.


짐짓 무거워진 내 몸도 월요일부터는 다시 정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은 내 하루 루틴을 다시 노트에 적어 내려 갔고 최근 추워졌다고 드문드문했던 아침 수영도 다시 매일 가기로 마음먹고, 배우다 만 프랑스어 공부도 다시 시작해볼 참이며, 커피와 요리도 이것저것 열심히 공부해 볼 참이며, 먹고사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등등... 짧아진 내 머리와 함께 나는 새사람이 되고 싶다.


대학시절 내내 단발머리를 계속 유지했었다. 나 때에는 앵커 준비를 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단발머리를 유지했었다. 그게 단정했었고 무튼 그땐 그게 대세였달까. 긴 머리보다는 단발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나로서는 단발머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은 아니다.


나는 달라지고 싶다. 아니 달라져야 한다. 나는 이제야 정말 나 자신의 부족함과 못난 부분을 알게 된 것 같다. 이제는 정면으로 부딪혀야 하고 인정해야 하고 그걸 받아들여야지만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변해야 한다고. 강하게 마음먹었다. 어쩌면 나의 이런 부분들로 인해 내가 내 스스로를 내 인생을 더 힘들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한다. 달리 방도가 없다. 내가 변하지 않는 한, 내 삶도 달라질 수 없다.는 게 큰 이유다.


토요일 오후 단발머리 하나로 서른 여섯의 내 얼굴은 상큼해졌고 깜찍해졌다. 기분까지도 상큼해졌음은 말모다(말해모해). 갈색 레자 빈티지 똑딱핀을 왼쪽에 꽂은 것도 빼놓지 않은 나는야, 촌스러움을 사랑하는 여자다. 무난하고 밋밋한 단발머리에 딱삔을 꽂아주는 건 참 별 거 아닌 나만의 시그니처랄까.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여자인 나는, 앞으로 웬만해선 단발머리가 내 시그니처가 되지 않을까 한다. 긴머리도 좋지만 단발머리를 했을 때 내 이목구비는 더욱 뚜렷해지고 나만의 개성이 발휘된다. 그렇다면야 굳이 긴머리를 고수할 필요가 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나답게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머리인 단발머리를 내 시그니처로 나는 선택하는 바이다.


단발머리와 나, 이제는 단출하고 심플한 내 일상과 닮은 게 하나 더 추가 된 셈인데, 언제부터인가 어쩜 내 삶의 태도와 가치관에 들어맞는 것들로만 내 삶이 가득 채워지는 것인지. 답은 뭐, 네가 그렇게 만든 거 아니겠니? 맞다. 무튼 다름아닌 내 인생, 소풍처럼 여행처럼 잘 살아보자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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