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럴 때가 있다. 내가 조금 전 생각한 글자가, 숫자가, 어떤 문구가, 어떤 물건이 TV에 나온다든지 기가 막힌 타이밍과 우연으로 그 상황을 깊게 통찰하게 될 때가 있다. 어제는 유독 그 횟수가 몇 차례였고 이제는 신기해한다거나 놀라는 것 없이. 훗. 하고 넘기고 만다.
아직은 난방을 켜지 않고 온수매트만 켜고 자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바깥 날씨가 꽤 추워졌는지 살짝 으스스함이 느껴진다. 욕심내지 않고 금요일에 주말에 읽을 책 2권을 빌렸는데 다 읽었겠다. 일하러 가기 전 집 근처 시립도서관에 가서 검색해 둔 책 두 권을 빌리기로 한다.
오늘부터 내 몸을 다시 라이트하게 산뜻하게 만들어볼 참이다. 늘 그랬듯.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그러고 나면 정신이 번쩍 뜨인다. 이건 아마 습관인 탓이 크다. 왼쪽에 꽂고잔 네모난 갈색 레자 딱 핀을 다시 고쳐 차고 고양이 세수를 했다. 그러곤 가만히 한 곳을 응시하며 오늘 할 크고 작은 일을 상기한다.
조촐하다. 나도, 내 아침도 내 점심도 내 저녁도 내 하루도 내 평일도 초졸하다 못해 참으로 조촐하다. 사실 별거 없다. 어디 나만 그러겠는가. 싶다. 우리는 그저 살아가는 것이니까.
정확히 말하면 2년 전,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울고 아파하고 스스로를 괴롭히던 때. 였다. 참 시간이란 게 약이라는 어른들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아니라는 게 맞는 게 지금의 나는 그 2년 전의 내. 가 문득 스치기라도 할 때면, "그때 참 그랬지. 그랬었는데. 결국 잘 견뎌냈고 지금의 내가 되었네."라고 미소 짓게 되니 말이다.
경험적으로 나는, 고통과 고독이 날 성장하게 했다. 고 믿고 있다. 그 이후 나는 일상의 곳곳에서 사방 군데에서 영감을 받기도 삶의 통찰과 지혜를 얻기도 그런 나를 반추하고 내 정신을 다잡는 게 자연스레 몸에 베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절로 내 삶과 태도는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나도 나를 어찌할 바 몰라 제정신이 아니기도, 집 나간 내 정신을 끌고 데려오느라 시름을 하기도 한다.
정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마음이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캄캄한 동굴에 갇혀있는데, 어디 앞을 내다볼 수 있었겠는가. 멀리 내다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나는 꽤(자그마치 5년은 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조금씩 앞을 내다보고 내 삶을 내 인생을 멀리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알면서도 그게 안되던 그 시절의 나. 를 지금은 온전하게 이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단연코 말할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 크게 변한 게 있었던가. 사실 변한 건 없었다. 내 일상도 삶도 크게 소위 드라마틱하게 변한 건 없었고 이제는, 조금은 단단하게 날 지킬 줄 아는 내가 되었다는 것뿐. 이제는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있는 낭만과 숨바꼭질하며 찾아낸 나만의 낭만을 만끽하는 일이 날 설레게 한다. 크게 기뻐하지도 크게 슬퍼하지도 않는 내 모습을 보면 가끔은 움찟 놀랄 때가 있는데, 그 덤덤함이 나는 참 좋아졌다.
변한 거라곤 내 마음이겠지. 내 생각이겠지. 생각이 변하니 잿빛이었던 내 하루가, 일상이 죄다 신나고 즐거운 일로 채색되어 보였다. 색으로 치자면 인디핑크와 스카이 블루와 같다고 할까. 내 생각은 내가 내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나는 어떨 때 기분 좋아지고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지를 명확하게 내 눈앞에 펼쳐 보여줬다. 내 취향이 선명해지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다워지는 자유. 를 알게 되었다. 물론 현재 진행형이다.
요즘 부쩍 젊은 시절, 딱 내 나이 때 엄마 아빠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 시절 우리 엄마 아빠 참으로 젊으셨었구나. 아름다웠구나. 내 부모의 모습에서 어깨에서 뒷모습에서 지나온 그들의 삶의 무게가 느껴져 마음이 저려오는 건 나이를 먹은 탓일까. 그제 쭈글쭈글해진 아빠의 손등을 보며 흐르는 눈물을 나는 속으로 삼켜야 했다. 아빠의 손등을 한참이나 쓰다듬으며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는 한참을 아빠의 촉촉해진 눈망울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나는, 삶이라는 세상을 선물해 준 내 부모님의 삶과 나의 삶을 이해해간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게 그게 삶이라고. 그렇게 삶을 배워가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