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언어

by miu

코비드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이 생활도 익숙해졌는지 일상의 모든 것들이 무뎌진 듯하면서도 하루빨리 마스크를 완전히 벗어던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만큼은 여전히 간절하다. 코비드 전까지만 해도 몇 년 동안 무엇에라도 홀린 듯 그렇게 해외를 돌아다녔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지금, 그래도 그때의 여행과 사람들에 대한 추억으로 마음을 달래며 살고 있다.


여행 중에 만났던 내 소중한 인연들을 떠올리다 문득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낯선 곳에 툭 떨어진 내게 따뜻한 기억을 선물해준 그들이 그저 아무 일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타임머신을 타고서라도 코비드 전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을 만큼 내겐 평생 잊지 못할 기억들이다.


#마르코. 엑스의 절친으로 세르비아 가정에서 기념하는 슬라바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됐다. 마르코의 아내와 자녀들, 다른 가족들은 물론 초대받은 친구들로 집안이 가득 찼다. 그곳에서 전통음식을 모두 맛보았던 것은 물론 내겐 이 모든 것이 문화체험과도 같았다. 잠시 디저트를 먹던 중, 남자 친구가 나이 든 노신사를 소개해줬는데 알고 보니 구 유고슬라비아 BMW사의 전 대표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국제정치와 외교를 전공한 나에게 유고슬라비아.라는 단어가 확 와닿았는데 그마저도 내겐 새로웠던 기억이다.


#알베르토. 스페인 마드리드에 거주하는 친구다. 퇴사를 결정하고 남은 연차로 훌쩍 떠나버린 첫 스페인 여행에서 이틀이나 시간을 내어 마드리드 곳곳을 안내해준 고마운 친구다. 회사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의 캐나다 유학시절 룸메이트였는데, 첫 여정을 마드리드에서 시작한다고 하니 마드리드 토박이 알베르토를 소개해줬다. 회사를 잠시 쉬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구상하고 있다는 알베르토와 막 사직서를 제출하고 떠나 온 나는, 같은 처지에 말이 아주 잘 통했던 기억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알베르토의 모터 바이크를 타고 외곽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던 일이었는데, 헬맷을 쓰고 빽빽한 자동차들 사이에 서 있는 경험에, 해 질 녘 반짝반짝 빛나던 화려한 조명들과 건물 사이를 가로질러가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황홀했던 경험이다. 여행객인 내가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 라고 소리 지르며 모터 바이크 뒤에서 쾌재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엘레나. 엘레나 부부는 내 엑스의 절친이다. 특히 엘레나는 내 엑스와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는데 그녀를 통해 아주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흥분했던 기억이 있다. 엘레나는 나보다 6살 많았고 현직 은행원이었고 남편은 내 엑스의 동료 변호사이자 힙합가수이기도 한, 정치적 발언도 과감하게 하는 유명한 셀럽이었다. 베오그라드에 머무는 동안 엘레나 부부와 자주 모임을 가졌는데 그들과의 대화는 늘 흥미롭고 신선했고 남달랐고 신났었다.


한 번 시작하면 역사이야기에, 정치 이야기에, 영화 이야기에, 학창 시절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저녁식사를 하곤 했는데, 마치 한국 친구들과 대화하고 있는 듯한 그런 친근한 기분에,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고 느끼곤 했다.


유독 엘레나와 친했는데, 성격도 시원시원한 데다가 스타일도 힙하고 아름다웠으며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그녀가 멋져 보였다. 한국이었으면 언니.라고 불렀을 텐데. 참 고마웠던 건 이곳에서 행여 심심할까 자주 날 불러내 주었고 베오그라드에서 힙하다는 카페를 데리고 가기도 얼마 전 새로 생겼다는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보자며. 그렇게 그녀는 내게 좋은 친구이자 언니가 되어주었다.


3이라는 숫자에 1살이 한 해 한 해 더해갈수록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은 편해져 가고 굳이 애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큰데, 그때 그 시간과 장소,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갈수록 짙어지는 건 왜 일까. 그만큼 외롭고 방황하던 시절 떠난 외국에서의 경험이 내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기 때문이겠지?


외국 친구들을 만나고 대화해보면서 느꼈던 건 다름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저마다의 언어로 생각하고 느끼고 소통하고 표현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거였다.


핵심은 내가 그들과 대화했던 방법이란, 그저 나는 나대로의 나만의 언어로 그들과 소통했다는 것인데 그들도 마찬가지였으며 그것은 그야말로,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억지로 맞출 필요도 가식적일 필요도 없는 사람을 대하는 각자의 태도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저마다의 언어로 국경과, 나이와, 언어를 초월한다는 것, 저마다의 언어로 편견 없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대하는 지적이면서도 열린 태도에 있다는 걸 그들을 통해 나 또한 깨닫게 되었다.


그 시절 시공간을 나와 공유했던 그들 모두가 아무 탈 없이 잘 살아가고 있기를. 내가 그들을 기억하고 있음을. 소망 가득 담아 저 하늘에 띄우고 싶은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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